Written by 2:13 오후 112호(2018.04)

[마을을 꿈꾸다]
우리나라에서 자치 분권이 가능할까?

국승용(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화학 87)

서울에서 느끼는 정치와 이곳 나주에서 느끼는 정치는 사뭇 다르다. 서울에서 정치는 청와대이고, 여의도이고, 아주 가끔 서울시청이다. 구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을 끄는 일도 별로 없고, 알려주는 이도 별로 없다. 그런데 나주에서는 청와대와 여의도가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어떤 화제보다 나주와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서울에 살 때 집은 광진구였고 회사는 동대문구였다. 동네 이웃들은 광진구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회사 동료들은 동대문구 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서울시청이 하는 일이나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에서 ‘구’라는 단위는 내 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누가 구청장이 되건 달라질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서울시민이기는 했지만 광진구민이라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나주에서 나는 광역인 전남도보다는 기초인 나주시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전남도지사는 도지사를 하겠다고 농림부장관을 때려치우고 온 김영록, 같은 이유로 청와대 농림 비서관을 때려치우고 온 신정훈, 또 같은 이유로 전남도 교육감을 때려치운 장만채, 이 세 사람이 민주당 후보 경선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들 중 누가 될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런데 누가 되건 내 삶에 별다른 변화가 올 것 같지 않다.

나주 시장 선거도 민주당내 경선이 지역의 관심사다.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기 전부터 후보자로 어떤 사람이 뛰는지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관심이 간다. 누구와 누가 후보 단일화를 하고, 앞으로 시장 선거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간다. 왜 그럴까? 누가 시장이 되냐에 따라 고형쓰레기연로를 태우는 열병합발전소, 로컬푸드, 텃밭, 농업회의소,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 등 내 생활과 맞닿은 일들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나주에서는 지역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원들을 만나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 텃밭 개장 행사나, 시민 걷기대회,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지역 정치인들을 만나는 일이 잦다. 내가 나주에 와서 가장 먼저 사귄 친구가 이번에 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지역정치와 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엮여서 지역 정치가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정치 체제는 효율성과 반대 방향으로 발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에 지방자치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시·군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관련 논의의 수준을 보면서 그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시·군 공무원들의 자질이나 전문성을 보면 그들이 과연 시·군의 살림을 책임질 수 있을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지방자치를 한다 해도 광역 단위까지면 충분하지, 시·군까지 확대하는 것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게 지역을 과도하게 잘게 쪼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지방자치가 발전한 나라들은 우리와는 다른 역사적 과정을 겪었다. 유럽은 중세 시절 성을 중심으로 정치와 경제가 발달했으며, 자본주의가 성숙되기 이전에는 국가 수준의 정치・경제가 성숙되지 않았다. 일본의 중세도 성을 중심으로 경제권이 형성되었지 그들이 천황이라고 부르는 덴노는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했나?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치 구조를 구축했고, 경제 통합의 수준도 유럽 국가나 일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국토도 좁아 전국이 1일 생활권, 고속철이 개통된 이후에는 반나절 생활권이 형성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굳이 지방자치를 한다고 이렇게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근 10년에 걸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내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5년마다 있는 선거에서 고작 투표 한번 한 것인데, 그 결과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컸다. 여의도의 국회도 대의 정치로서 자기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지방자치단체도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2년마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선거를 했지만 무소불위 청와대의 권력 앞에서 양대 선거는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다. 서울시같은 광역단위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막강한 중앙정부의 권한 앞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시도는 빛을 발하기 어려웠다. 처음 5년을 지나면서 중앙 정부는 청와대에서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고, 그 다음 4년간은 청와대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가진 가장 큰 맹점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 또는 집단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 체제는 ‘효율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민주주의가 효율성에서는 전제 또는 독재에 미치지 못한다. 최고 권력자가 결단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체제가 여기저기 단계적으로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것보다 신속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어도 민주적 체제를 세우는 것이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 믿는다. 중앙집권에서 지치분권으로 전환하는 것이 민주주의 본연의 지향이다. 우리는 가끔, 어떤 이들은 자주, 시장과 민주주의를 혼동한다. 시장은 돈의 논리로 작동되는 체제이고 민주주의는 사람의 논리로 작동되는 체제인데도 말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중학교에 진학하나

내가 서울에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서울 중심의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서울이 우리나라 정치와 문화의 중심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지방 분권이 가지는 정치・사회・문화적 의미를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나주로 이사하고 나서야 지역 정치가 중앙과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고 한다. 권력을 가진 이가 가지지 못한 이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하니 지방 분권에는 분명히 진전이 있을 것 같다. 관건은 그 과정을 얼마나 매끄럽게 관리하면서 빠른 기간 내에 정착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많은 중앙 부처 관리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중앙 주도의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의 능력을 갖추어야 중학교에 진학하는가? 6년간 최소한의 출석일수를 채우면 누구든 중학생이 될 수 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각종 과목의 문제를 풀 수 있어야 중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량이 뛰어난 학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중학생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학생이 되면 중학생이 배워야 할 것들을 익히면서 성장해 간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 관료들이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가. 지방자치의 역사가 20년이 넘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경험을 축적해야 권한을 이양할 수 있는가?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이양해야 하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워 단기적으로 권한을 이행하면 된다. 물론 권한을 잘 행사하는 지자체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개헌 여부를 떠나, 오는 6월 지방자치 선거는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권한 이양을 공언했기 때문에 새롭게 출범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과거보다 많은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유능한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일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에 이양된 권한이 소수의 지방 권력 집단이 아닌 다수 시민에게 기여하도록 감시와 참여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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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 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 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gouksy@daum.net)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