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사회복무요원, 환경재료과학 08)
#19. 투표사무원 시작
집합시간인 05시 정각이 다 되어도 몇몇의 투표사무원은 도착하지 않았다. 코리안타임이라더니 20분씩 지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무원이 다 모이고 선서를 했다. 공정한 관리업무를 다짐했다.
투표는 06시부터 시작인데, 05시 30분부터 일찌감치 나와서들 줄을 길게 서 계신다. 해방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도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던 역사서의 기록이 허언이 아니었겠다.
다행히 오픈 시간은 진상도 거의 없이 지나갔다. 옛날처럼 투표용지를 집으로 다 보내줘야지 왜 여기서 일일이 교부하냐고, 시스템을 개같이 바꿨다고 항의하던 한 분의 진상은 십여 분 더 혼자서 큰소리로 투덜대다 돌아가셨다.
남은 시간도 부디 평화롭기를.
#20. 투표날 오전 다섯 시간의 감상평
1. 진상은 대부분 70대 이상 남성
1.1. 진상은 저 멀리서 오는 걸음걸이부터 티가 남
1.2. 당연히 다짜고짜 반말
1.3. 왜 굳이 다른 동에서 이 산동네까지 올라와서 진상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음
2. 왼쪽 오른쪽 알려드려도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사람은 나이와 무관 / 성별도 무관
3. 60대까지는 주로 정정 / 70대 정도 되면 아이고 기본 장착 / 90대인데도 꼿꼿하신 분들도 존재
4. 남편 없이 혼자 오는 부인은 많은데 부인 없이 혼자 오는 남편은 무엇 때문인지 잘 없음
5. 명부 확인 때 일단 도장부터 찍으려고 하시는 걸로 보아 옛날에는 투표할 때 도장이 꼭 필요했나 봄
#21. 투표용지 촬영범
오전 6시간 동안 걸린 투표용지 촬영범 6명은 전부 50대였다. 투표소 곳곳에 투표용지 촬영 금지 안내를 붙여 놓았으나, 기표소 가림막 안쪽이면 괜찮을 것 같았나? 그 안에도 분명 큼지막한 금지 사인이 있는데. 그 세대에 인증샷 붐이 이는 걸까. 찰칵 소리 나고 사진첩에 뻔히 사진이 있는데도 왜 계속 안 했다고 그러는 걸까?
#22. 멱살잡이
설마 설마 했던, 드디어 그,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투표용지 촬영범이 또 적발되었다. 소리와 사진 증거물이 다 현장에서 걸렸다. 직원이 사실확인서를 적고 가시라고 안내했다. 이 50대 아주머니는 갑자기 드러누워 고성을 질러댔다.
“난 그저 국민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다.”
“하도 못 믿을 세상이라 그랬다.”
“지금 대법원에 12개의 소송이 진행중인데 하나도 국민의 편이 아니다.”
직원은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고, 사진 찍으신 것 걸리셨으니 사실확인서 서명하시고 가시라고 안내했다.
“날 왜 범법자로 모느냐?”
“난 그저 몰라서 그랬다.”
기어코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멱살을 잡힌 직원은 그저 원칙을 주장할 뿐이었다. 당연히 주변 선거권자들도 직원 편이었다. 그녀의 당당함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결국 멱살을 풀고, 사인하고 집에 갔다. 나가며 당연히 ‘내가 누군데’를 외쳤다.
#23. 아동수당
자유한국당의 훼방으로 아동수당이 전원 지급에서 상위 10% 제외 지급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소득증명, 재산증명 등을 위해 받아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늘었다. 하지만 아동수당 업무에서 어려운 점은 늘어난 서류와 업무량이 아니었다. 아동 그 자체였다. 대충 40여명 정도밖에 왔다 가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주민센터는 혼돈 그 자체.
그 나이의 아동들은 다 부모와 함께 다닌다. 아동들은 당연하다는 듯 주민센터 전체를 자기 앞마당처럼 뛰어다닌다. 아직 몸이 덜 자랐기에 머리가 더 큰 그들은 보통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다. 당연히 넘어진다. 넘어지면 아프니까 운다. 옆에 친구가 우니까 자기도 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아동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뛰어다니며 발생하는 먼지는 덤.
귀엽긴 귀엽지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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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nature@academicoop.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