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16 오전 113호(2018.07)

[꽃송이 라디오]
‘수행’ 속에 해탈의 꽃 피는 우리 아이들

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농화학 88)

1. 수행은 수행이다.

어느 큰 스님이 말씀하셨다. 고행과 ‘수행’ 속에 해탈의 꽃이 핀다고. 꽃송이는 내게 말한다. 내일도 ‘수행’ 폭탄임. 오늘도 밤 새워야 할 듯.

닦을 수에 행할 행. 수행. 몸소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불교에서 쓰는 ‘수행’과 학교에서 ‘수행평가’할 때 쓰는 ‘수행’은 한자어로 똑.같.다. 헐. 우리 아이들을 해탈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하려는 깊은 뜻일까.

의도 자체는 너무 근사하다. 학교수업만 딸딸 외워 시험보고 끝이 아니라 직접 찾아보고 써보고 발표하게 한다는 것이니. ‘대통령의 말하기’를 집필한 강원국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는 글쓰기와 말하기가 듣기나 보기보다 더 중요한 시대라고. 그러면서 ‘하루 세 줄씩 무엇이든 써보자’고 권한다. 그런 판에 학교에서 전 과목에 걸쳐 뭔가를 쓰고 말해야하는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너무 많아서 탈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옆에서 봐도 안쓰러울 정도로.

책 읽고 서평 쓰기, 연극대본 쓰기, 연기하기, 신문기사 비교, 공익광고 만들기, 시 쓰기, 등장인물 분석하기… 꽃송이가 제출한 국어 1학기 수행과제였다. 국어만 이랬다. 저 많은 과제물을 언제 다 읽고 평가하실까 의아할 정도다. 다른 과목은 과목당 2-3개 밖에 안 돼 약소(?)했지만, 여기에 수많은 대회 참가와 동아리 활동까지 더하면,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준비할라치면 거의 밤잠을 설쳐가며 ‘수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정 고행과 수행 속에 해탈의 꽃이 피는 걸까?

2. 손흥민이 어디 갔어?

멕시코에 1대2로 패한 직후, 대통령이 우리 팀 라커룸을 찾아온다. 가장 먼저 신태용 감독을 껴안았고 선수 한 명 한 명과 악수했다. 영부인은 수비실수로 비난받던 장현수 선수를 각별히 챙겼다. 손흥민 선수는 웃통을 벗은 채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대통령은 ‘괜찮아 잘했어’라며 아빠미소로 껴안아주고 있었다. 그 때 주 러시아 대사가 대통령에게 짧게 격려의 말을 부탁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많이들 아쉬울 텐데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고, 국민들도 아쉬울 텐데 그래도 여러분이 최선을 다했다고 아주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다들 파이팅하자고. 파이팅! 기성용 선수, 파이팅! 손흥민, 어디 갔어. (손흥민 손 붙잡고) 손흥민, 파이팅!

누가 봐도 훈훈하고 인간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유튜브 검색 한두 번이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조선일보 기사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입장하자 신태용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과 선수단이 일렬로 도열했다.(중략) 경기 종료 직전 추격골을 넣은 손흥민은 ‘일렬횡대’ 대열에 서지 못했다. 상의를 벗은 채 라커룸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손흥민이 어디 갔어?” 문 대통령이 그를 찾았다. 이후 문 대통령은 손흥민 손을 잡아끌어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오른팔을 세워 올리는 ‘파이팅’을 시켰다. ‘파이팅’ 하면서도 손흥민은 계속 울었다.(중략)

“선수들도 감정이 있을 텐데, 패배한 직후에 일렬로 서고 싶었을까요. 대통령이면 우는 사람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 찍어도 됩니까.” 직장인 전모(31)씨 얘기다.]

– 조선일보, “손흥민이 어디 갔어?” 문 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방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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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기자의 놀라운 상상력과 마술 같은 문장력에 무릎을 탁 치며 스크랩을 했다. 그리고는 꽃송이에게 이를 그대로 전송했다. 영상 먼저 보고 기사를 평가해보라고. 그것은 살아있는 글쓰기 공부이자 미디어 교육이었다. 저렇게 쓰면 안 된다는.

외국에서는 기자를 ‘Writer’라고 부른다. 글 쓰는 사람. 그래서일까. 기자 관두고 소설가로 데뷔해 성공한 이들이 제법 많다. 대표적으로 헤밍웨이와 알베르 카뮈. 둘 다 기자 출신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짧은 단문으로 군더더기 없이 구체적인 현실을 전하는 뉴스 글쓰기는 분명 좋은 재능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기자들 중에도 이들 뺨치는 문장가들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소설을 써놓고 뉴스라고 우긴다는 데 있다. 그 좋은 재능, 노벨문학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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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별명 ‘노진구’. 도라에몽에게 늘 민폐만 끼쳐 만화사상 최악의 캐릭터로 손꼽힐 만큼 띨띨하고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우연히 라디오 피디가 되어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 양과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음. FM 99.9MHz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언젠가 농촌에 살고픈 닉네임 ‘시골피디’.(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