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12 오전 113호(2018.07)

[제주살이 이야기]
여름 감귤 과수원에서의 하루

이종욱(건풍바이오 부장, 농화학 89)

꼬물꼬물하던 날씨에 기어코 빗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약을 치려고 준비했는데 오늘은 틀린 것 같다. 초여름 장마철이라 습하고 더운 날씨 탓에 어린 감귤 과실에 병반이 많이 보였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다. 창고에서 예초기를 꺼냈다. 과수원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의 기세를 한풀 꺾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감귤 나무를 올라타 덮어버리기 일쑤다. 여름철 풀이 자라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풀 베고 돌아서면 다시 올라온다’는 옛날 어르신들 얘기를 실감한다. 애초에 계획했던 농약치기는 어려워졌지만 선선한 날씨 덕분에 예초 작업은 훨씬 수월하다.

웽~~~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무성한 잡풀들이 잘려나가고 감귤나무의 밑동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감귤원 담벼락의 잡초가 제거되어 숨어 있던 돌담이 제 모습을 드러내면 답답했던 마음도 한결 상쾌해진다. 감귤원 한쪽에 다섯 그루의 블루베리가 심어져 있다. 며칠 전 수확기 조류 피해가 예상되어 방충망 설치 작업을 했는데 그 주위에도 잡초가 무성하다. 예초기로 먼저 대강 쳐주고 나무 주위는 호미로 잡풀을 제거했다.

검푸르게 잘 익은 블루베리 열매가 눈에 띤다. 하던 일을 멈추고 블루베리를 수확한다. 한 접시밖에 안 되는 양이지만 올해 첫 수확이라 감개가 무량하고 기분이 좋다. 여름 날씨인지라 반나절 작업에 땀범벅이 되었지만 얼추 계획했던 예초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무 밑동 예초기가 닿지 않는 부분에 손제초 작업이 남아 있지만 차차 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액비를 살포할 계획이다.

점심식사와 한낮의 휴식을 마치고 액비 살포를 준비한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지만 내리는 양이 많지 않아 작업은 가능할 것 같다. 친환경 재배에서는 화학합성농약뿐만 아니라 화학비료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품질 인증된 유기질비료와 자체 제조한 생선 액비를 사용한다. 생선 액비는 고등어 등 수산물 가공 과정에서 남은 부산물에 설탕과 미생물을 접종하여 장시간 발효시킨 질소 및 미량원소가 풍부한 친환경 비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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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감귤 수확량은 재작년 수확량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작년의 처참한 경험 후 올해는 시비량을 좀 더 늘리려고 계획하였다. 감귤 나무의 해거리 특징도 있었지만 다수확 후 급격히 떨어지는 나무의 수세를 회복하기 위한 영양 보충이 적절치 못했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다수확이 예상되는 올해 액비 살포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살포이다.

액비 살포를 위한 설비가 따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농약 살포하는 기구를 이용한다. 발효가 잘 되어 냄새가 구수한 액비를 덜어 거름망으로 건더기를 걸러내고 농약통에서 물에 희석한 후 동력분무기와 농약줄을 이용해 뿌리 주변에 골고루 뿌려준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면 액비성분이 뿌리 쪽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1000여 평 과수원에 액비를 살포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어느덧 비가 완전히 그쳤다. 여름인지라 해는 남아있지만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 농약통을 깨끗이 씻고 농약줄도 정리한다. 사용했던 예초기도 씻고 남아 있는 연료는 완전히 연소시킨다. 땀범벅이 된 작업복과 우비 등을 빨고 몸을 씻는다. 오늘 다 못한 농약치기가 내일은 가능한 지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 보이는 비양도 근처 서쪽하늘에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다. 신선한 바람 한 자락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면 고단했던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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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_ ‘제주도에 사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주중에는 건강기능식품을 연구개발하고 주말에는 친환경감귤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chitoboy@hanmail.net)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