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승용(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화학 87)
텃밭 농사를 처음 해본 것은 2010년 쯤 경기도 남양주에 살 때이다. 집에서 차타고 2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1년 씩 임차할 수 있는 텃밭 농장이 있어서 큰맘 먹고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10평 단위로 텃밭을 분양했기 때문에 10평을 얻었는데 텃밭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었다. 처음에는 잘 자라던 상추는 6월이 지나자 주체할 수 없이 많아 나와서 나중에는 이웃에 나눠주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차로 20분이니 자주 가 볼 것 같았지만 주말에도 가지 못할 때가 많았고, 농장주가 물을 줘서 말라 죽지는 않았지만 장마가 지나고 나자 잡초를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재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갈 때마다 잡초와 전쟁을 치르다 보니 큰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텃밭에 가기도 힘들었다. 장인・장모가 평일에 버스를 타고 농장을 찾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건질 게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텃밭 상자도 해 본 것 같고, 감나무가 심겨진 조그만 마당이 있는 집 화단에 이것저것 심어도 보았지만 남들에게 텃밭 농사 짓노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나주로 이사한 첫 해, 우리 동네는 우리 사는 아파트를 빼고는 온통 공사판이었으니까 텃밭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배 농장에서 배나무를 분양한다기에 한해 분양받긴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꽃가루 찍을 때 한 번가고, 배 딸 때 한번 가고. 그나마 배를 수확하는 날 나는 워크숍 때문에 속초에 있었기 때문에 아내하고 아이들이 따낸 배 옮기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수확한 배가 하도 많아서 이집 저집 나누어주고, 회사에서도 함께 먹고, 그리고도 남아서 겨우내 먹었다.
2016년 봄, 나주시에서 빛가람 텃밭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보고 분양을 신청했다. 우리 가족이 사는 혁신도시의 공원부지 네 곳에 텃밭을 만들어서 직장과 개인에게 1년씩 분양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200m 남짓한 거리에 공원 텃밭이 있어서 분양을 받았다. 면적은 10㎡ 내외라고 했는데 밭과 밭의 경계까지 포함해서 그 정도인지 눈으로 보기에는 두 평 남짓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농장에 10평의 텃밭을 분양받아 허덕댔던 남양주의 전철은 밟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텃밭을 분양받은 주말, 근처 남평농협 농자재 센터를 찾았다. 2평이면 퇴비 반포면 충분하다 해서 20kg 퇴비 한포를 사서 반을 넣고 밭을 갈았다. 고랑을 타고는 남평농협에서 파는 모종을 심었다. 상추는 3포기, 토마토는 방울과 일반 토마토를 섞어서 20 포기 정도, 오이, 고추, 가지도 심었다. 아차. 멀칭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잡초를 감당하지 못한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토마토・오이・고추는 지주를 세워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멀칭용 부직포를 사고 지주대도 샀다. 모종을 다 심은 다음 주에 부직포로 멀칭하고 지주를 세웠다. 순서는 뒤죽박죽이었지만 지주를 세우고 멀칭을 하니 그럴 듯해 보였다. 텃밭 주변에는 봉숭아, 목화, 키 작은 해바라기를 심었다.
남양주 텃밭에서는 상추는 잘 자랐지만 토마토는 키우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주는 그 반대였다. 토마토는 쑥쑥 자랐는데 상추는 한 달이 지나도록 모종 상태 그대로였다. 남평농협에 가서 20kg짜리 원예용 비료를 사서 주어도 상추는 그대로였다. 가지와 토마토는 더위가 시작되자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곁순 따는 것을 몰라 토마토는 가지가 여기저기 뻗어 나갔고, 지주대에 묶은 오이는 열매가 조금만 커지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에 뒹굴기 일쑤였다. 텃밭 바깥쪽에 씨앗을 심은 키 작은 해바라기는 줄지어 예쁘게 싹이 텄는데 누군가 밟아 모두 죽어버렸다. 모종을 키워서 옮겨 심은 목화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상추는 끝내 한 잎도 수확하지 못했지만, 여름 내 토마토 따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2017년 텃밭 농사 두 해째. 초기 생육이 부진했던 작년의 경험이 있어, 두 평짜리 텃밭에 20kg짜리 퇴비 2포를 섞었다. 고랑을 타고는 지난 가을에 걷어 둔 멀칭 부직포를 덮었다. 첫 해에는 넓은 부직포를 씌우고 중간에 구멍을 내 모종을 심었는데, 둘째 해에는 좁은 부직포 2면으로 이랑의 한쪽씩 각각 덮었다. 그리고 부직포가 맞물리는 이랑 가운데에 모종을 심었다. 구멍을 뚫지 않으니 부직포를 재활용하기 쉬워졌다. 지주를 세우고 모종을 심었다. 일단 밑거름도 두둑이 주었고 멀칭, 지주, 정식의 순서도 제대로 지켰다. 상추는 심지 않았고, 대추 토마토와 일반 토마토만 심었다. 그리고 지주대와 지주대 사이에 키 작은 해바라기와 목화 씨앗을 심었다. 텃밭의 바깥 쪽 고랑에는 채송화, 봉선화, 루드베키아 씨앗을 뿌렸다.
넉넉한 밑거름의 힘은 대단했다. 이웃 텃밭의 토마토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줄기가 굵었고, 자라는 속도도 빨랐다. 곁순도 부지런히 따주니 토마토 줄기가 자라는 모양도 그럴 듯 했다. 파란 토마토 열매 수백 개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지나가는 이웃들은 기술이 좋다며 이것저것 묻곤 했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기 전, 출장 차 토마토 농장에 간 일이 있다. 내가 텃밭에 토마토를 심었다고 하니 대뜸 배꼽 썩음이 올 거라고, 칼슘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니 계란 껍질을 주면 괜찮을 것이라 했다. 계란 껍질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고, 토마토가 워낙 예쁘게 자라고 있어 그냥 원예용 비료를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장마가 시작하고 토마토가 하나둘 붉은 빛을 띨 무렵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멀쩡하게 자라던 토마토의 끝 부분이 검게 변하는 것이었다. 배꼽 썩음이 오고야 만 것이다. 달린 토마토의 절반 이상은 배꼽 썩음이 왔고, 멀쩡한 녀석들도 열매가 터지는 열과에 시달렸다. 열과야 집에서 먹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따다 먹었다. 비록 절반을 배꼽 썩음으로 버렸지만 우리 네 가족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넘쳐나는 토마토를 처치할 방법을 찾다가 믹서에 갈아서 직접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스파게티를 해 먹기도 했다. 슈퍼에서 파는 소스와는 격이 다른, 셰프가 만들어주는 토마토 스파게티 맛과 비슷했다.
장마 전에는 토마토 사이에 심었던 키 작은 해바라기가 쑥쑥 자라 꽃을 피우더니, 장마가 끝나니 목화가 싹을 틔웠다. 토마토 그늘에 가려 잘 자라지는 못했지만 대여섯 포기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드디어 목화솜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붉은 꽃이 지고 매실만한 열매가 맺혔다. 이 열매가 터지면 목화솜이 튀어나온다고들 하는데 열매가 맺은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목화솜은 터지지 않았다. 토마토 순을 지르고, 열린 토마토를 모두 따먹고 토마토 줄기를 모두 캐낼 때까지도 목화솜은 터지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어느 날 드디어 목화가 솜을 터뜨렸다. 그리고 씨앗 한 봉지를 다 뿌린 데서 역시 찬바람이 불 무렵 루드베키아 하나가 뒤늦은 꽃을 피웠다.
텃밭 농사 삼 년차인 2018년. 올 해는 오이와 애호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밑거름을 넉넉히 준 뒤, 텃밭이 좁고 긴 모양이어서 이랑을 2개 만들지 않고, 넓게 만들어 2줄 심기를 시도했다. 텃밭을 관리하는 나주 4H에서 나누어준 씨감자 2개도 심고, 방풍 나물과 신선초, 상추도 심었다. 작황이 시원치 않은 일반 토마토는 심지 않고 대추 토마토 20 포기, 오이고추와 애호박, 오이를 각각 4포기씩 심었다. 지주대 사이에는 목화씨앗을 심었고, 바깥쪽 고랑에는 봉숭아, 채송화, 루드베키야, 금계국, 사루비아, 꽃양귀비 씨앗을 뿌렸다.
토마토는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곁순은 보이는 대로 따주고, 튼튼해 보이는 줄기 하나만 남기고 모두 잘라 모양을 관리하고 있다. 줄기가 시원찮아 보이면 곁순을 키워 새 줄기로 삼는 고난도(?) 기술도 구사하고 있다. 작년의 경험에 비추어 굴 껍데기를 갈아 만든 칼슘 비료를 구입해서 토마토와 그 친구들에게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덕에 매일 밭에 나갈 때마다 한 바구니씩 따는 토마토에 배꼽 썩음은 가물에 콩 나듯 있을 뿐이다. 몇몇은 너무 자라서 장마가 끝나기도 전에 순을 질렀다. 오이는 노끈으로, 애호박은 그물로 넝쿨을 유인하고 있는데 그럭저럭 키우고는 있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다. 키우는 법을 공부해서 내년에는 좀 더 멋지게 키워볼 생각이다. 서너 포기 심은 상추는 다 죽고 하나가 남았지만 우리 가족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지주대 사아에 아내가 좋아하는 고수(코리앤더)를 심어서 싹이 트고 있다. 감자는 장마 전에 수확을 했고, 오이 고추는 끊임없이 달린다.
삼십 알정도 목화씨를 심었건만 올해는 단 한 줄기를 건졌다. 잘 키워서 가을에 목화솜을 틔워 볼 생각이다. 봉숭아는 많이 폈건만 다른 꽃들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있다. 잎만 보아서는 어떤 꽃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루드베키아하고 금계국은 여러 포기 자라고 있다. 뜨거운 여름 볕 아래에서 작년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기를 기대해 본다.
집에서 걸어서 갈 만한 곳에 텃밭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텃밭에 가는 것이 부담도 없고 적어도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아 말려 죽일 염려도 없다. 멀칭 부직포에, 지주대, 원예용 비료와 칼슘 비료 등 텃밭 농사에 필요한 농자재도 갖추고 있으니 마음도 든든하다.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이 정도 면적은 충분히 관리할 노하우도 얻었다. 전원생활이라 할 수도 없고 전업 농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텃밭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했다던가? 인생을(Life)을 농사(Farming)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농사가 고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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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 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gouksy@daum.net)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