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53 오전 113호(2018.07)

[나 이렇게 산다]
‘자연의 소리’에서 그리운 이들과 1박 2일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50여 년 전의 인연으로 언제 봐도 반가운 서둔야학인들이 다시 모였다. 충남 서산 해미의 가야산 자락에 있는 ‘자연의 소리’ 휴양림에서였다. 이곳의 대장님인 황건식 선생님의 초대가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소리는 휴식하며 힐링하고, 힐링하며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림이다. 지난 5월 18일에 20여명의 야학인들이 만나서 1박2일의 시간을 같이 보냈다.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황 선생님의 시계는 청년시절에 머물러 있다. 늘 꿈을 꾸는 청년이고 그 꿈을 우직하게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분이다. 1960년대 서울대 농대 재학시절에는 서둔야학 교사를 짓느라 F학점 받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누군가는 건축현장을 책임져야 했기에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실하기 짝이 없는 황 선생님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지금도 야학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가던 길에 듣던 황 선생님의 ‘수선화’와 ‘바위고개’, ‘달밤’ 등의 노래를 잊을 수가 없다. 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노래 부르기를 즐기던 황 선생님은 성악가의 꿈을 가지고 이태리에서 오랜 기간 성악 공부를 하기도 하셨다. 인천에서 사실 때는 인천 오페라단을 창단하여 운영하며 ‘오델로’와 ‘리골렛토’ 등 수많은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동하셨다. 대학원에서 지역개발학을 공부하는 등 오랜 세월의 노력을 통해 인천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하셨다.

황 선생님의 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다.

휴양림 ‘자연의 소리’에서도 황 선생님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었다. 15만평이나 되는 넓은 산에는 이미 완성된 야외 음악당이 있었고, 건축 중인 세미나실과 여러 동의 펜션이 있었다. 배경에 커다란 바위들을 세워서 만든 음악당을 보고 나는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음악을 너무 사랑하시니 음악당부터 지으셨구나!’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수목원에는 아로니아 열매가 자라고 있었다. 단풍나무와 수형을 잡기 위해 엄청 공을 들였을 아름다운 적송과 이미 고목이 되어버린 배롱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수목원 중앙에는 보라색 아이리스가 고고하게 피어있었다.

황 선생님은 계곡물이 좋아서 그곳을 선택했다고 하셨다. 산이 깊어서 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는 계곡물이 펜션 앞으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렀다. 우리나라의 전통 소나무인 적송으로 이루어진 가야산은 소나무 숲 특유의 운치가 있었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수종이 소나무라고들 하는데 과연 쾌적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서울의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가 오랜만에 맛있는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이곳에 살면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건강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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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발코니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저마다 서둔야학 시절의 추억들을 불러와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2000년에 발간된 『서둔야학사』에 이어 2차 서둔야학사를 발간하기 위한 회의를 하였다. 야학인들 모두가 서둔야학에 얽힌 에피소드 또는 현재 살아가는 이야기 한 편씩을 써서 내기로 하였다.

스토리텔링 작가인 안병권 선생님의 역작 “서둔야학 스토리”를 빔 프로젝터를 통해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목장길 따라’ ‘에델바이스’ 등 야학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같이 부르기도 했다. 무거운 기타를 가지고 와서 반주를 해주신 분은 김기옥 회장님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사제 간에 정담을 나눴다. 그리움 끝에 있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노라니 서둔야학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가슴이 따스해졌다.

좋은 자재로 튼튼하게 지어진 펜션은 전체적으로 베이지 톤과 브라운 톤이 어우러져서 색감이 고급스러웠다. 펜션 천장의 샹들리에는 모양이 아기자기했고 은은한 불빛이 좋은 분위기를 내는데 한 몫 했다. 낯선 곳에서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해서 걱정했는데 대체로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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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이었다. 일행은 아침 7시부터 산책길에 나섰다. 산속의 공기가 달콤 상큼해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니 크고 작은 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높고 물줄기가 세찬 폭포 밑에는 선녀탕이라는 용소도 있었다. 아치형의 작은 돌다리도 건너고 바위틈새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잔디를 바라보면서 산길을 걸었다. 때마침 놀러온 구름이 하늘에다 그려놓은 멋진 작품을 감상하며 걷는 산길엔 행복이 다복다복 쌓여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야학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를 제창하였다. 물질도 사랑도 궁핍했던 시절 관심과 사랑으로 가르쳐주신 은사님들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담아서 불렀다. 바닷가에서 회식이 끝난 후였다.

“나는 많은 서둔야학 선생님들 중에 하나일 뿐이야. 모두들 열심히 했는데 나를 ‘서둔야학의 대부’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요.”

황 선생님이 내가 붙인 명칭을 불편해하시자 『서둔야학사』 편집장인 김영호 교수님이 제안하셨다.

“그럼 ‘서둔야학 섬김이’가 어때요?”

오늘부터 황 선생님은 ‘서둔야학 대부’가 아니라 ‘서둔야학 섬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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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