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39 오전 113호(2018.07)

[살아가는 이야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 『청와대 정부』를 추천하며

황종섭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지역시스템공학 03)

『진보의 미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낸 책입니다. 임기를 마치고 “대중적 교양서가 될 만한 책을 만들어 보자”며 노력을 쏟은 결과물입니다. 비록 모두가 아시는 비극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출간되긴 했으나, 이 책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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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에 관한 문제는 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문제이자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의제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 의제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바로 국가의 역할과 통치의 문제입니다. 『진보의 미래』는 전자에 집중합니다. 진보적인 정부는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수단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진보와 보수가 실질적으로 가장 타협 없이 싸우는 쟁점은 ‘국가가 분배에 얼마나 깊이 개입할 것인가?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서 복지 지출을 얼마나 하고, 사회적 보장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분배와 세금, 복지와 사회 보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합니다. 물론 시장이냐 국가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등의 기준과 대비시키기 위해 이를 더욱 강조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 진보와 보수를 설명하는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는 이렇게 쉽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김해 사람은 손님 아니야?’ 이렇게 하고 막 밀고 가는 게 진보죠. 우리 진보. 요새 진보는 그 정도 얘기거든요. ‘나도 좀 타고 가자’ 이거죠. 그럼 나중에 뭐 운전평의회 할 때 ‘나도 운전평의회에 한 자리 끼자, 왜 니들끼리 코스를 마음대로 정하고 그래?’ 이 얘기거든. 진보는 그거고, 보수는 ‘야 비좁다 태우지 마라, 늦는다, 태우지 마라’ 이거죠. 내가 어릴 때 부산서 출발해서 김해에 오면 김해 정류장에서 늘 요 싸움하거든요.”

문정부 수석보좌관 회의
박정부 수석보좌관 회의

전통적인 빈부 격차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젠더나 난민 이슈 등에 대해서도 일정한 진보적 지침이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진보의 내용은 더 다양할 수 있고,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말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는 의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 글의 논점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어쨌든 참여정부를 계승한 정부가 탄생했고, 정부의 방향도 이와 크게 벗어나지 않게 설정됐다고 한다면, 남은 질문은 ‘어떻게’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노 전 대통령이 얘기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두 번째 핵심 의제를 살펴보려 합니다. 즉 “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는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진보의 미래』는 통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육성 기록으로 남긴 가장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생각의 단초만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사실은 통치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최근에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서두를 길게 썼습니다. 바로 제가 일하는 정치발전소의 학교장인 박상훈 박사의 신간, 『청와대 정부』입니다. 이 책이 밝히고 있는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에서 정부란 어떤 존재이고 왜 필요하며, 또 어떻게 통치될 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의 ‘청와대 정부’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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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부』는 기존의 상식을 배반합니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통치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입니다.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을 ‘촛불 시민’으로 바꾸면 더 현실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상식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최고 통치자를 국민과 일치시키고 의회를 국민과 대립시키는 정치 언어는 입헌군주가 전제군주로 퇴락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 역시 의회를 정치가들의 사익 추구를 위한 장으로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해 왔다. 그때마다 앞세운 것은 ‘국민 여러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청와대를 이렇게 비대하게, 왕국처럼 운영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세련되게 말하자면, ‘책임 정부’ 대신 ‘청와대 정부’를 만들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열렬 지지자들에게만 불평등한 발언권이 주어지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략)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는 체제는 전제정이라 한다. 그렇게 하면 앞선 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정의롭기에 예외라 여기거나, 설령 전제정이라 해도 ‘선한 전제정’은 괜찮다고 본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아무리 서로 설득하고 협상하고 양보하더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 위에 서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필요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 통치를 한다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는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명령’이나 ‘청와대의 의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결사체 간에 타협과 협상을 통해 통치를 해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이 아무리 싫다 해도 그렇습니다.

여로 모로 굉장히 논쟁적인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지 않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유난히 본문을 길게 인용한 이유도 이 책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또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책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이 비판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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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 _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2006년 농대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TV토론팀에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