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2:56 오후 137호(2024.07)

[김상진 열사 50주년 준비기]
오랫동안, 김상진

안병권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농생물 79

소재선 선배님이 써주신 글씨

[5월 23일] 다시 민주주의, 다시 김상진

“한 가지 양해 말씀 드릴게요.

“원래 강의가 5시 반까지인데 제가 서울 안국동에 피치 못할 약속이 있어 5시에 마무리해도 될까요?”

“예, 물론이죠” 이구동성 대답하는 강원도분들.

강원도농업기술원 가공창업대학 제5차 특강에서 일이다. 0

강사 소개를 3분짜리 영상으로 보여드리고 이어서 <1975.김상진> 예고편을 보여드렸다. 1970년대의 엄중한 정치 상황과 열사의 할복자결을 소재로 했음을 설명했다. 농촌스토리로 평생 살다 보니 다큐영화까지 제작, 감독했음을 이야기하고 영화 찍으면서 ‘기록이 우리 농업에 얼마나 중요한 태도인지 새삼스럽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5월 22일 바로 오늘이 오둘둘 당사자들 49주년 모임이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선생님, 4시 반에 마치시고 얼른 올라가셔요. 그런 뜻깊은 날 위원장께서 올라가셔야죠.”

순간 교육생들의 마음 씀씀이에 뭉클했다. 4시 50분쯤 강의를 마무리하고 서울 안국동으로 향했다. 오둘둘 선배들과 내년도 50주년 사업도 이야기 나누고 격의 없이 지난 50년과 살아온 일들을 공유했다.

선배들의 요청으로 50주년 준비상황 말씀드리고 건배 잔 높이 올렸다.

다시~ 민주주의, 다시~ 김상진!

.

무사히 여러 일정 마치고 새벽 2시 반에 김제집에 도착했다.

시인 신경림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부음도 들린다.

선생이 김상진열사에게 온 마음을 바친 ‘시’로 영전에 명복을 빈다.

이 시는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오둘둘 장례추모집회 때 뿌려졌다.

‘곡 김상진’

신경림

네 목소리는 바람이 되었다.

어둠으로 덮인 온 나라의 강과 산과 마을을 누비며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고 있다

네가 흘린 피는 꽃이 되었다

말라 죽은 나뭇가지 위에 골목 진흙탕에 숨죽인 우리들의 팔뚝 위에

불뚝 불뚝 일어나는 숨결이 되었다

친구여 이 어두운 땅에도 봄이 왔구나

네 시체를 밟고 사월이 왔구나

네가 뿌린 피를 밟고 다시 사월이 왔구나

민주주의여, 아아, 자유여 정의여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사월이 왔구나 친구여 너의 죽음으로 잘린 우리들의 혀가 되살아나리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로

막힌 우리들의 두 귀가 뚫리리라

눈 앞을 막은 안개가 걷히리라

이제 우리들의 목소리도 바람이 되었다

어둠을 뚫는 우렁찬 아우성이 되었다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노랫 소리가 되었다

친구여 잘 가거라 너는 외롭지 않다

네 뒤를 따르는 피의 노랫소리가 들리리라

(1975.5.22.)

<

[6월 9일] 윤석열 퇴진을 위해 민주열사와 함께 걷는다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제단에 김상진열사 영정을 올리는데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주변으로 또 수많은 젊음들. 끝없이 이어지는 의로운 현대사.

내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할 무렵부터 온전하게 내 인생을 채워준, 아프고 슬프지만 끝내 ‘희망’으로 조국의 ‘민주주의’가 되어버린 분들.

33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했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김제에서 출발했는데 차가 밀려 안국동 송현광장에서 열린 출발 시점을 놓쳤다. 광화문 앞에서 대열에 합류, 김원봉 운영위원장으로부터 김상진열사 영정을 모셔 받았다. 서울대 민주동문회원들과 김상진기념사업회 동료들과 내 눈앞에 장대하게 모셔진 ‘현대사의 희망’들을 만나 뵙고 돌아왔다.

늦은 밤 김제로 돌아오는 차 안

아내 : “여보! 뭔가 묵직한 게 상징적이고 의미 있네”

나 : “저분들 덕분에 우린 희망을 그리고 그 꿈을 실행할 수 있는 역사가 되었지요.”

내년 2025년, 김상진열사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 온 마음을 담아 집에 들어와 스토리 작업실 입구에 그 ‘희망’을 걸었다.

윤석열 퇴진을 위해 민주열사와 함께 걷는다.

.
.

[6월 15일]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 근교 밀레가 살던 마을(바르비종)에 갔는데 집은 밭 한가운데 있었어. 그런데 더 인상적인 것은 건너편 마을 어귀에 글귀가 새겨진 표지석(비석)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항상 생화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게 인상적이었거든. 2차 대전 때 이 마을 출신 레지스탕스를 기리는 비석인데 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은 이곳에 꽃을 바치고, 마음을 놓고, 추모한다는 거야. 아주 오랫동안….”

김상진열사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 양평에 사는 박석두 선배(72학번)를 만나러 갔다. 75년 열사 할복의거 당시 상황 인터뷰와 50주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조언을 들을 겸 겸사겸사였다. 김상진백서를 염두에 두고 석두형을 1시간가량 인터뷰 촬영했다.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요즘 내 관심사는 ‘남다른’, ‘역사 속 열사의 위치’, ‘좋은 추모’, ‘기억하기’ 같은 카테고리와 관련된 유·무형의 상상들이다. 이유는 김상진의 짧은 삶과 지금까지 50년 그리고 이후 50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어떤 개념’, ‘실제적인 슬로건’과 연결되기 때문일 게다.

양평 지평면 깊은 숲 속 전원주택에서 70년대 팝송도 빽판으로 듣고 술도 한잔 하며 ‘열사에 관해’, ‘역사서에 대해’, ‘기억하는 일’에 대하여 자정을 넘겨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형이 농경원 재직시절 프랑스 출장길에 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마을 이야기를 마치며 선배가 “아주 오랫동안”이란 단어로 매듭을 짓는다.

순간, 갑자기 무엇이 지역사람들로 하여금 그 작은 비석에 지난 80년간 마음을 주고, 이어가고, 서로를 보태도록 하였을까? 짐작과 동시에 ‘오랫동안’이라는 네 글자가 뇌리에 박힌다.

오랫동안.

뜻은 아주 긴 세월 동안인데 내게 느껴지는 감동은 더 깊고 넓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지속’, ‘실행’의 의미도 포함되어서다.

다시 민주주의, 다시 김상진

그리고 위대한 조국의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날, 그 이후에도 김상진.

그렇게 김상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살아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박석두 선배

[7월 1일] 오랫동안, 김상진

For a long time.

‘오랫동안’은 현재진행형.

‘실천’이자 ‘결과’이기도 한.

지난 50년간.

지금도…. 그리고 열사의 뜻대로 ‘조국의 위대한 민주주의 승리가 도래하는 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김상진열사 50주년 기념사업 기본 슬로건이다.

역사가 된 김상진.

한국민주주의와 시민들이 그를 야물게 추모하는 지혜

‘오랫동안’

.

[7월 5일] 뜨거운 ‘울림’으로 형을 맞이합니다.

길 건너 왼편 큰 건물 2층에 김상진홀(가칭)이 세팅 중이다.

52석 규모 계단식 세미나실

후배들은 이곳을 들고나며 김상진열사를 만나게 된다.

박창권 기획팀장의 안내로 내부공사가 한창 중인 현장을 돌아보았다.

특별한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가다 세미나실 입구로 훅 빨려 들어간다. 순간 신세계가 펼쳐진다.

미완성 공간이지만 그곳은 내게 ‘멋지다’, ‘설렌다’, ‘무궁무진하네’를 되뇌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참을 서서 생각에 잠긴다.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형은 흰 티셔츠에 검은색바지. 생글생글한 얼굴로 양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다. “형님 접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열사와 주고받았다. 50주년 기념준비상황도 넌지시 말씀드렸다. 완공 이후(금년 10월 초) 이 공간에서 만들어질 수많은 이야기들을 미루어 짐작했다.

학교 안에 ‘김상진’ 이름이 붙은 다목적세미나실이 생기다니…. 즐겁고 유쾌하다.

.

[7월 18일] 작은 상영회

“열사의 육성을 듣는 순간 울컥했어요”

“지금 제 나이 또래이신데 어떻게 그런….”

“우리 대학의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자랑스러워졌어요.”

“이 분을 기리는 메모리얼사업에 참여하게 되어 기뻐요. 정성을 다할 거예요.”

2025 김상진 50주기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수원캠퍼스(옛 서울농대)에 김상진열사 기억공간(김상진메모리얼) 설계 작업중이다.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정욱주교수팀과 사업준비단계.

설계팀에게 김상진열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 그가 지향했던 속마음, 시대 상황 등을 공감·공유하는 첫 이벤트로 작은 영화관을 빌렸다. 7월 16일, 서울대 근처 낙성대인근 ‘자체휴강시네마’

정욱주 교수와 연구원들. 열사 100주년을 살아가면서 준비할 친구들. 막내가 2016학번이다.

김상진메모리얼에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놓을지 그들의 발칙한 상상을 기대한다.

오랫동안, 김상진

.
.

*

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