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2:37 오후 137호(2024.07)

[오정삼의 人in人]
나는 오늘도 실패하고 있다

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집 옆 마당에서 간단한 푸성귀나 얻고자 수년간 텃밭을 만들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 텃밭이라 해봤자 반 평 밖에 안되는 면적이다. 그동안은 봄에 텃밭 갈고, 초비 뿌리고 여름 내내 물만 주었는데도 여름이 다 갈 때까지 고추, 오이를 밥상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유튜브뿐만 아니라 숏츠나 릴스 등 숏폼이 범람하는 세상에 소위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농부들의 가르침에 귀가 솔깃해졌다.

“고추는 방아다리에서 처음 나는 꽃은 잘라버리세요.”

“오이는 처음 다섯마디 정도에 나는 순은 잘라버리세요.”
“오이를 따고 나서 아래쪽의 이파리들은 떼어내세요.”
“오이넝쿨을 집게로 유도하면서 넝쿨손은 양분만 먹어치우니까 다 잘라버리세요.”

“이런 식으로 하면 오이를 여름 내내 한 넝쿨에서 100개는 따먹을 수 있어요.”

“대파는 다 잘라먹고 아랫부분 버리지 말고 싹뚝 잘라서 다시 심으면 또 나와요.”

“가지도 곁순 잘 잘라주고 통풍 잘해주면 주렁주렁 열립니다.” 등등

나의 반 평짜리 텃밭

정보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올해는 작물을 고추와 오이에서 가지, 상추, 대파까지 늘려보았다. 심지어 오이는 세 그루를 키우면서 지주대와 오이망까지 사서 멋지게 오이농장(?)을 연출했다. 이처럼 봄철 내내 매일 물주고, 곁순이나 필요 없어 보이는 이파리들 떼어내고, 웃거름 주고 하면서 ‘올해는 이웃들에게도 수확한 오이나 고추 등을 넉넉히 나눠주리라!’고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추는 잎사귀가 쪼글쪼글해지고, 오이는 그루 당 5~6개씩 따먹고 나니까 넝쿨이 한 바퀴 두 바퀴째 도는 데도 더 이상 열매가 안 열리고, 가지는 한그루에 아직까지 딱 2개밖에 따먹지 못하고 물만 주고 있다. 이 정도 되니까 아내는 “가뜩이나 집 옆이라서 햇빛이 부족한데 이파리를 마구 따버리니 광합성이 부족해서 열리던 열매도 안 열린다.”, “잘 자라던 고추도 오이한테 햇빛을 뺏겨서 제대로 크지를 못한다.”고 구박이다.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올해 농사는 실패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영재들이 다닌다는 카이스트(KAIST)에는 『실패연구소』가 있다. 수업료가 전액 무료인 카이스트는 상대평가로 학점을 부여하는 학사경영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학점이 낮은 하위 30%의 학생들이 과태료 성격의 징벌적 수업료를 내게 했고, 이것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게 되어, 급기야 2011년에는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자살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2021년 카이스트에는 『실패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그 인사말에서

연구소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과감한 도전정신 함양을 목표로 합니다. 성공한 리더들도 실패를 경험한 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또한, 더 커다란 성공으로 귀결된 실패한 시도들도 많습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의한 실패한 결과나 과정은 귀중한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연구소는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카이스트 내외의 여러 구성원들과 그 결과를 공유할 것입니다.

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에는 「실패학회」를 개최하고, 실패 주간 동안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발표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자랑하며 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연구소는 또한 ‘실패의 의미’를 묻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설문 참여자들의 48.4%가 실패를 결과로 받아들이며 성공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참여자는 33.9%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패자랑대회에서 자신의 실패의 경험을 밝은 표정으로 자랑하는 발표자

우리 사회처럼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내모는 사회에서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실패는 ‘삶의 끝’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연구개발(R&D) 성공률은 99%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창의력이 그만큼 완벽에 가까워서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 때문에 애초에 성공할 수 있는 연구만 시도하기 때문이란다.

마이클 조던은 “나는 9,000개 이상의 골을 넣지 못했고,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라고 했고, 조앤 K. 롤링은 “실패하지 않은 삶은 실패한 삶이다.”라고 단언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감과 수용의 능력이 갖추어진 사회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독자들과 성공을 나누기보다 실패를 나누고자 한다.

나의 올해 농사는 망했다!

그러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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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