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황 박사의 과거 행적이 궁금했다. 그가 정말 전 세계를 속인 희대의 사기꾼이 맞다면 그건 그게 처음일 리 없기 때문이다. 언론 역시 판세가 황 박사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자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해 보면 그는 대략 이런 사람이다.
복제 소 영롱이부터 가짜였음, 백두산 호랑이 복제는 언플이고, 딱 하나 진짜로 복제한 스너피(복제 개)는 그의 제자가 한 것임, 황 박사는 사실 현미경도 못 보고 오로지 언플의 귀재임, 명절마다 한우 돌리고 줄기세포 연구하려고 종교까지 바꾼 정치적 인물, 참고로 100억대 땅부자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매일 이런 보도가 쏟아져 나오면 어느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기자들도 뭐가 있으니까 저렇게 쓸 테지’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러면 지지자들도 황 박사에 대해 입을 닫게 된다. 비판의 목소리는 더 세지고, 이제 와서 보면 검찰청 입구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일 놈 만들어놓고 시작하는 사냥의 공식이었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만큼 기사가 쏟아졌다. 나도 깜빡하면 젖어들 뻔했다. 그런데 내겐 가랑비와 땡볕을 막아주는 나무그늘 같은 존재가 있었다. P선배, 수의대를 나와 동물병원을 하고 있던 대학선배였다. 그 형을 우연히 만났을 때 내 첫마디는 이랬다.
“아니 딴 사람도 아니고 형이 어떻게 황빠예요? 신기하네.”
“야 누군 태어날 때부터 황까고 황빠냐?”
“아니 그냥 분위기가…. 신기하네^^”
그랬다. 나처럼 데모 나가면 늘 쭈뼛쭈뼛 뒷장서던 아이들의 눈에 P선배는 늘 집회를 기획하고 문건을 쓰고 밤샘회의로 전략전술을 논의하던 소위 ‘배후세력’이었다. 똑똑하고 꼬장꼬장했고 외모는 신경 안 쓰던, 퀭한 눈에 피곤한 얼굴 떡진 머리…. 그랬던 선배가 황우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황우석을 옹호하는 황빠논객이 되어 내 눈앞에 있었으니….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황교수랑 개인적인 친분이라도?”
그러자 P선배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개인적 이해관계 따지면 황까를 하고 있어야지.”
“아니 왜요?”
“그 양반 때문에 졸업 제때 못 했잖아. 졸업학기 실험과목 D주는 사람이 어딨냐?”
선배는 복학 후 고시공부에 전념했단다. 군대 갔다 와서 뒤늦게 고시공부에 뛰어든 복학생들이 그러하듯 선배 역시 하루 15시간 공부하면서 졸업 학점 채우는 게 버거웠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학점을 채워나가다 마지막 남은 학기 전공필수 실험과목의 지도교수가 하필이면 황우석이었다고 한다.
“얄짜리 없더라구.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하고 이거 때문에 졸업 못한다며 한 등급만 올려주십사 부탁해도 안된다는 거야.”
“헐….”
“그런데 참 세상 재밌다. 그렇게 황 교수 때문에 졸업 못한 나는 지금 황빠를 하고 있고, 정작 황교수 덕분에 잘 나가던 교수들은 다 돌아서서 황우석 욕하고 있고, 웃기지?”
더 궁금해졌다. 이해관계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황빠를 하지? P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이지 않잖아. 지금 이 상황이. 빽없이 열심히 연구해서 독보적인 기술 만든 사람은 사기꾼이 돼서 연구도 못할 지경이고, 정작 잘못한 놈들은 이게 다 황우석 탓이라며 쏙쏙 빠져나가고, 이런 게 우리가 꿈꾸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인가?”
원칙과 상식? 그랬다. P선배는 노빠였다. 노무현 지지자, 그러면서도 황우석을 지지하던 노빠황빠, 아니 황빠노빠던가, 그러다 보니 그는 정말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노빠들과는 황우석 문제로, 황빠들과는 노무현에 대한 입장차이로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찾아갈 때마다 그는 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를 쓰고 있었다. 병원은 누가? 착한 간호사님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계셨다. 나중에 형수님한테 혼 좀 많이 났을 거다. 병원 매출이 이게 뭐냐고, 그 매출하락에는 나도 기여한 게 많다. 수시로 찾아가서 물어봤으니까, 줄기세포가 뭐냐고, 복제연구는 또 뭐냐고, 구박도 많이 받았다.
“너 체세포하고 생식세포는 알지?”
“(묵묵)”
“배아는 알지?”
“(멍)”
“이거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거잖아.”
“저 생물 외우기 싫어서 선택 안 했거든요.”
“그래도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은 들었을 거 아녀, 일반 생물학.”
“책은 샀죠. 책만.”
“(묵묵)”
그래도 그때 사둔, 매우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킴볼 생물학과 일반 미생물학이 나중에 취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제서야 알았다. 생물학이 이렇게 재미있고 신비로운 줄, 하지만 그때는 그저 미지의 복잡하기만 한, 나와는 상관없는 무엇이기만 했는데, 그런 와중에 P선배의 해설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영롱이가 어떻고 호랑이가 어떻고 맨날 언론보도에 끌려다니다 보면 그 프레임에 갇히게 돼. 이 사안의 본질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흔들림이 없지.”
“본질이 뭔데요?”
“동업”
“동업?”
“한 마디로 이 연구는 동업을 한 거야.”
“우리 어머니가 동업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빚보증과 동업은 하는 게 아니라고”
“누군 하고 싶어서 하냐, 니가 핵심기술이 있어. 근데 그걸로 완제품까지는 못 만들어. 그래서 서울대 의대 교수가 완제품 만드는 팀을 소개시켜줬고 그게 미즈메디야. ”
“아, 그런 거구나.”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제품이 가짜네.”
“당연히 큰 싸움 나죠. 동업이라는 게 잘 나가면 지분 싸움, 문제 생기면 책임 공방.”
“이건 좀 아네.”
“알죠. 우리한테 중소기업들이 제보 많이 하거든요. 대기업하고 동업했다가 특허 뺏기고 책임만 지고 다 털렸다고.”
이랬다. 동업 이야기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P선배는 요즘 과학연구가 워낙 고도화돼서 한 팀만으로는 안된다고, 학제 간의 벽을 뛰어넘은 공동연구가 요즘 연구의 대세라고 했다. 즉, 누구도 동업하지 않고는 벽을 넘어설 수 없는 건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는 거다.
“가만히 봐봐라. 황 교수는 자기들은 어디까지 해서 넘겼는데 미즈메디 배양라인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정확히 짚잖아. 노성일 이사장도 미즈메디 라인에서 문제 있었다는 걸 부정 안 해. 그러면서도 문제가 있으면 그건 총괄책임자 황우석이 책임져야 한다며 자꾸 황우석 쪽으로 몰잖아. 물 타기 하는 거지. 동업인데 동업이 아니라 황우석 개인작품인 것처럼. 그래야 빠져나가니까.”
동업인데 동업이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그럴듯했다. 그러면서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왜 책임자가 황우석이었어요? 의사들이 아니고”
“핵심기술은 황교수팀한테 있었거든. 거기까지 못 만들어서 그렇지, 거기까지만 만들면 외국에도 그다음 공정으로 완제품까지 만들 기술 있는 팀은 많았거든.”
“에헤, 그럼 차라리 외국팀하고 했어야지..”
“특허 때문에. 주도권이 빠져나가잖아. 그래서 황 교수가 말끝마다 이건 대한민국의 기술이라고 강조한 게 국뽕이 아니야, 특허, 주도권을 갖겠다는 거지.”
“헐….”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동업에 특허, 결국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까지 나왔다.
“노통이…. 의전 때문에 오히려 현장방해한다며 현장방문 잘 안 하는 노통이 몇 번이나 서울대 실험실을 찾아갔어. 그게 찌라시들 말처럼 황우석한테 속아서 그런 걸까? 아니거든. 줄기세포 허브, 재생의료 주도권을 우리가 갖는다는 거거든. 그런 국책연구가 통째로 빠그러질 판이여, 지금 이 판이.”
“진실이 중요하대매. 피디수첩은”
“중요하지. 진실. 근데 그걸 피디수첩이 검증할 수 있나?”
“그럼 누가 해”
“과학검증을 해야지.”
“에이 과학자들도 그놈이 그놈 아닌가?”
“아니지. 외국에선 재연실험을 시켜.”
“재연실험?”
“간단해, 다시 만들어보라고 하는 거야. 황우석 너네 여기서 여기까지 만들었대매. 그럼 다시 해봐. 노성일 너네 여기서 여기까지 했다며. 다시 해봐. 우리가 볼게.”
“오호.”
“이렇게 하면 기술이 있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소재도 깔끔하게 나오잖아.”
“깔끔하네. 그럼 재연실험 하면 되겠네.”
“할까?”
“?”
선배는 검증을 맡은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재연실험을 할지 의심하고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황 교수는 서울대잖아요. 노성일 이사장은 연대고.”
“의사잖아. 황 교수는 수의사고. 수의대 교수가 서울대 안에서 어떨까?”
“그래도 황 교수에겐 노통이 있잖아요. 노통이 몇 번씩 찾아갔다며….”
“글쎄.…. 내가 아는 노통이라면 이 사안에 개입 않고 과학적 중립적 검증만 주문할 거고, 그런데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정말로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검증을 할 수 있을지는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P선배의 예측은 사실로 드러났다. 노통은 정말 침묵만 지켰고,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재연실험은커녕 조사 한 달 만에 황우석의 거의 모든 걸 부정하는 결론을 도출했다. 언론은 본격적인 사냥모드로 들어갔고 P선배는 거의 생업을 제쳐둔 채 글을 쓰며 저항했다. 나는 P선배한테 맞은 예방백신의 힘으로 언론프레임에 감염되지 않은 채 하나하나 황 박사의 과거행적을 체크해 나갔다. 연구원들을 만났고 논문과 기록을 뒤지며 팩트체크를 했다. 이미 버스는 떠났고 막차도 아닌 뒷북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결과가 놀라웠으니까. 영롱이부터 백억 대 땅부자까지 저 언론보도들은 대부분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소-돼지-호랑이 복제시도에서 개 복제 성과로, 줄기세포 핵심기술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흘려온 땀방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다 식의 팩트체크 형식으로 쓰려하지 않는다. 그때 P선배가 내게 전해주려 했던 것처럼, 아니 P선배뿐 아니라 자신의 생업이나 일생의 한 번뿐인 해외유학마저 반납하고 황우석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을 전하려 했던 필부필녀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 이 연구가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까지 갔으며 어디에서 사달이 났는지, 한국 사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풀어나갔어야 했는지 그 이야기들을 시간순서대로 담담하게 쓰려고 한다. 몇 개의 사건은 조작될 수 있지만 숱한 사건들이 모이고 모여 구성하는 맥락까지 조작할 수는 없다. 맥락과 본질, P선배들을 생각하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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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에서 2023년 상반기 개국예정인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전문 프로그램 준비중,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