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모당모당(고흥 로컬 매거진 : 고흥, 어찌 흥나지 않겄소)] 2024 여름호, Vol 06에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이정양 (사)농업조사전문가협회 대표, 농학 86
2024년 5월 10일, 오후 5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스승의날이 다음 주여서 대학과 대학원 시절 지도해주신 교수님을 모시고 사은행사를 위하여 아내와 함께 충남 예산의 예당저수지에 있는 펜션에 있을 때였습니다.
고흥군문화도시센터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모당모당》 여름호에 작년에 갑계(甲契) 활동한 이야기를 글로 써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오메, 웬 떡이다냐!” 하고 반가웠습니다. 작년 10월 21일에도 교수님과 함께 예당저수지 근처에서 기러기칼국수를 먹으면서 고흥에서 문화갑계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였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교수님뿐만 아니라 선배님, 친구, 후배들 모두 제가 인생을 가장 즐기면서 산다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활동에 대하여 글을 써달라고 하니 어찌 아니 기쁘겠습니까?
별자리 여행을 위한 인연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2023년도에 ‘별자리 여행’이라는 문화갑계 활동을 할지는…. 더구나 제가 갑장이라는 중책을 맡을지는 더더욱 몰랐습니다. 당뇨병 때문에 2012년 3월 31일자로 명퇴를 했다가 다시 공무원이 되어 고흥군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던 중 무료로 천문지도사 3급 연수를 시켜준다는 공문을 보았을 때만 해도 전혀 몰랐습니다.
공문을 보는 순간, 별이 반짝하고 떠오르면서 뭔지 모를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30명을 모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공문을 늦게 보고 접수하였던지라 간신히 27번째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전남지부도 있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서 광주지부에서 연수를 운영했습니다. 5주 연속 광주에서 고흥까지 큰 망원경을 가지고 와서 강의하시고 직접 시연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받고 천문지도사 3급 응시자격을 얻어 2016년 11월 어느 날 경남 거창에서 있었던 ‘천문인의 밤’ 행사에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20여 명 정도가 버스를 임대해서 같이 다녀온 것 같습니다. 결과는 그날 바로 나왔습니다. 천문지도사 3급을 딴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다음 해 바로 천문지도사 2급 연수를 받게 될 줄은!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홈페이지를 둘러보는데, 2017년에 2급 연수를 한다는 공지가 보였습니다. 한창 재미를 붙인 때라 망설이지 않고 접수하였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한 짐이었습니다. 일정이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매달 한 번씩, 총 다섯 번에 걸쳐서 전국을 돌면서 1박 2일의 연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강원도 양구 정중앙천문대, 경북 영양 반딧불이천문대, 대전 천문연구원, 경남 산청 별아띠천문대, 전남 보성 청소년천문과학관 등에서 별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다닌 덕에 즐겁게 연수를 마치고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 자격증들은 책상 서랍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작년에 고흥군문화도시센터가 추진한 ‘문화갑계’라는 인연을 만나 멋지게 쓰일 줄 몰랐습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별 관측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닌 덕에, 인연이 이어져 김성현님, 황수연님, 박범진님과 ‘별자리 여행’이라는 문화갑계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천문지도사 2급 연수를 항상 따라다녔던 제 아내 최부영 씨도 함께요!
별 덕분에, 문화갑계 덕분(德分)에
문화갑계 활동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게 진행하였습니다. 한 달에 세 번씩 만나서 식사하고 별이 보이면 별을 보고, 별이 보이지 않으면 차를 마시면서 별자리 공부를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진행할 때에는 아지트가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여행자카페 ‘고흥을담다’가 아지트였습니다. 덥거나 추우면 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별 이야기를 하고, 별이 보고 싶으면 존심당 앞으로 가서 별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참고로, 별을 보다 보면 목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눕는 게 제일 편합니다. 우리 갑계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낚시 의자와 알루미늄 돗자리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별 보기 좋은 곳이면 곧바로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아, 그러다가 깜박 잠들어 밤이슬 맞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값진 경험을 저 혼자만의 이야기로 품고 다닐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을 모시는 행사에서도 자랑하고, 선배의 상갓집에 가서도 자랑하고, 청남대에서 친구들을 만나서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압권은 아마도 한국아마추어천문학 전국대회에서 자랑한 것입니다. 2023년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인제군에서 진행된 전국대회 행사에 가서 고흥군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랑하였습니다. 많이들 부러워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다음에는 더 잘하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고, 고흥에서 별 관련 행사를 치르면 도와주시겠다며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과 유대관계를 잘 맺을 수 있었습니다. 별 덕분에! 문화갑계 덕분에!
문화갑계, 사람과 사람을 잇다
갑계활동에 재미를 들여 고흥군문화도시센터에서 무슨 일들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가 ‘노마드 고흥’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고 잽싸게 섬 여행에 지원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선착순으로 5명 안에 들어서 멋진 섬 여행을 즐겼습니다. 이것도 문화갑계를 진행하면서 문화도시센터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덕이었으니 ‘별자리 여행’ 문화갑계 덕분입니다.
인연이란 사람과의 관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지도에는 10여 년 전에 볼링동호회 회원들과 처음 갔고, 이후에는 온마을학교 회원들과 갔지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마드 고흥 섬 여행반원들과 가고 나서는 저에게 ‘별들의 고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딱 하나의 장소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위가 지붕으로 가려지지 않고 탁 트인 전망대였습니다. 별을 좋아하다가, 섬을 여행하다가, 불현듯 발견한 전망대! 그곳에 누워 별을 보면 정말로 황홀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저의 넘버원 버킷 리스트로 그곳에서 별을 보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이후, 별자리 여행과 노마드 고흥을 재미있게 즐겼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제일 한가해 보여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문화도시센터의 부탁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김의성 배우와 최갑수 작가님 안내도 맡게 되었습니다. 배우 김의성님의 유튜브 채널 ‘김의성의 아모르겠다’ 촬영을 위하여 작가님과 PD님 등 네 분을 안내하는 것이었는데,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내의 새로운 도전과 다짐
저는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던 아내 최부영 씨도 문화갑계 활동 이후 우주항공해설사에 관심을 보여 함께 연수를 받고 15명의 우주항공해설사 일원이 되었습니다. 2024년도 제14회 <고흥우주항공축제>에서 5월 4일 첫날은 실물체 전시관 안에서 KSR1, KSR2, KSR3, KSLV1(나로호), KSLV2(누리호) 등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을 했습니다. 5월 5일과 5월 6일에는 발사대와 발사체 보관동을 투어하는 버스에 탑승하여 안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지금까지도 그때만 생각하면 제법 우쭐해하기도 한답니다. 아내 최부영 씨도 최근에 기(氣)가 산 것 같습니다.
그런 멋진 아내와 함께 갈 만한 아름다운 곳이 고흥에는 참 많습니다. 그래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말해 조금 낯 간지러운 느낌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고흥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고흥을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원래 고흥에서 사신 분들도 많지만, 저처럼 고흥에서 태어나지 않고 다른 이유로 고흥으로 살러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저의 소망은 각각 별처럼 아름다운 분들을 많이 만나고 알아가고, 또 다른 분들께도 소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별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되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별처럼 빛나는 분들을 찾아 고흥을 헤집고 다니려 합니다. 내일도 그럴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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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였고 중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