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2:09 오후 137호(2024.07)

[나 이렇게 산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권투선수 홍수환 님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돼야 하지 않을까요?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대사를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께 승리의 메시지를 전하는 권투선수 홍수환 님의 환희에 찬 대사를!

홍 선수가 그 메시지를 외친 해는 1974년이었다. 2024년 올해는 그로부터 꼭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막연히 한창 선배로 생각했던 그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다.

2024년 6월 25일 6시 종각역에 있는 한정식집 ‘진진수라’에서는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7전 8기의 불굴의 정신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이 된 류수노 총장이 초대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삼성 장군이 있었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의 현직 잘 나가는 경영인이 있었으며 4전 5기의 권투선수 홍수환 님이 함께했다.

“안녕하세요! 하나도 늙지 않으셨네요!”

반가워서 이렇게 인사하는 내게 홍 선수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얼굴이 엄청나게 맞아서 부어서 그래요!”

이 말을 시작으로 홍 선수는 우리들을 몇 번이고 빵빵 터트렸다. 어찌나 순발력 있고 재미있는지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파안대소했다.

빈원영 대표, 홍수환 선수, 류수노 총장, 이창효 장군과 함께하다.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며 모범생을 좋아하던 나는 운동 잘하는 애들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멀리하고 매일 운동에만 빠져 살아서 머리에 든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선입견을 멋지게 깨부숴버린 분이 홍수환 선수였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내면이 단단하고 든 게 많아야 가능하다. 언어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는 얘기이다. 그에게 50년 전의 숨겨진 비밀 얘기를 듣는 것은 완전 흥미진진했다. 권투를 좋아하시던 박 대통령은 파나마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돌아온 그에게 금일봉을 전하셨다. 봉투 안에는 2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다 한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일반직으로 근무하는 내 한 달 봉급이 일만 삼천 원 할 때였다.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고 금의환향하는 그는 김포공항에서부터 카퍼레이드했다고 한다. 그의 옆자리에는 그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계셨다. 이는 그의 제안 덕분이었다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비어있는 앞자리에는 그의 형을 태우도록 제안했고 담당자들은 그 제안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삼모자가 함께 카퍼레이드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했다.

1979년 교사 자격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는데 다음 해부터는 교사 자격시험이 없어졌다. 하마터면 그렇게 되고 싶었던 교사가 될 기회가 영영 사라질 뻔했기에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나는 후유!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로 관운이 있었던 나처럼 홍수환 선수도 운이 좋은 경우였다 한다. 3라운드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판정승으로 파나마 선수가 이길 수 있었다. 하나 때마침 룰이 바뀌어서 4라운드까지 갈 수 있었고 그 라운드에서 파나마 선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홍수환 선수가 KO 승을 할 수 있었다 했다. 홍 선수를 키운 코치도 어머니도 3라운드까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홍 선수에게 그만할 것을 권유했다 한다. 애처로워서 보기가 어려웠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홍 선수는 승부 근성을 가지고 끝까지 싸워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극적인 내 스토리가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거 아니야!”

홍 선수는 못내 아쉬워했다. 그건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의 화려한 권투 인생이 아직도 영화로 제작되지 않았는지 심히 궁금하다. 그러자 류 총장님은 홍 선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공언하셨다. 그다음에는 서둔 야학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만시지탄이라고. 아마도 당신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재직시에 내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읽었다면 영화로 만들도록 했을 거라고 류 총장님은 말하셨다. 그만큼 내 책이 감동적이었다고 얘기하셨다. 내가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다양한 학과 중 미디어영상학과를 택한 이유가 서둔 야학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임을 아시고 하는 얘기였다. 하나 류 총장님 삶의 희로애락도 나와 홍수환 선수 못지않아서 총장님의 스토리부터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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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aeraniris@naver.com)

Last modified: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