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사)김상진기념사업회는 지난 2월 ‘2024년 정기이사회 및 확대운영위원회’에서 내년(2025년) 김상진 열사 의거 50주년을 맞아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으로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농생물, 79)을 위촉했다. 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연재하며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안병권 위원장의 준비기(準備記)를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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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김상진혁명’을 꿈꾼다.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반기억’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지치지 않는 동력’이다. 김상진 열사는 내게 ‘기반기억’이다.
(사)김상진기념사업회 사무국에서 명함이 날아왔다.
‘김상진열사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안병권’
지난달 ‘2024 정기이사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영화 <1975.김상진> 지역상영회 보고겸 2024년도 계획을 의논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5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요청을 받았다. 그런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고사했지만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이번 내 생(生)은 김상진 형님과 운명적 끈으로 연결된 것이 분명하다.
김상진 열사가 내 삶의 여정에 남은 첫 기록은 강제징집·녹화공작으로 철원 3사단에 영장 없이 끌려가 있던 1985년 4월 11일 군대일기다. 형님의 10주기를 추모한 글이다. 1979년 서울농대 입학, 그해 여름에 4년 전 할복 의거한 열사 이야기를 들었다. 40여 년이 흘러 2019년부터 4년간 장편다큐멘터리 영화 <1975.김상진>을 감독·제작했다. 거기다 더하여 형님의 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 2025년 50주년을 정립해야 할 일들이 많다. 무도한 역사 앞에 흔쾌했던 한 젊은 청년, 그가 남긴 ‘지향’에 다양한 상상과 이야기 옷을 입히려고 한다.
요즘은 지역을 돌면서 동문 선·후배들과 ‘무엇을, 어떻게, 왜 준비할 것인가’ 의견을 공유하는 중이다. 18일엔 부산 영광도서에서 영남동문들을 만난다.
검찰쿠데타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대한 기억’은 필수적이다. 김상진 역사는 한국인들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열사의 지향이 옹글어져 맺힌 민주주의.
‘김상진혁명’이다. 50주년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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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소녀상 앞을 지나며
서울 출장길. 어머니 댁에서 하룻밤 자고 금천구청 앞을 지나다 ‘소녀상’에 발걸음이 멈춘다. 내가 아니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이 그리한 것이다. 같은 그리움으로 물든 적이 있다. 작년 어느 날인가 종각역 옛 전옥서 입구에 세워진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앞에서.
사방을 요리조리 돌며 무한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정읍에서 백산, 김제원평, 전주 선화당에서 전봉준 장군과 김덕명, 김개남…. 동학농민혁명군들의 ‘뜨거운 열망’이 불합리한 시대를 뚫고 하늘을 향해 분출했던 장면들로 순간 뜨거워지곤 했다.
옹글어져 맺힌 정신은 사람의 입체적인 모습에 그대로 나타난다. 형상은 기억을 낳고 그 기억은 상상으로 확장된다. ‘확장된 상상’은 또 다른 기억으로 달려간다. 지치지 않는 무한동력으로 진화한다. ‘기반기억’의 탄생과정이다.
김상진 열사 50주년. 2025년.
수원 상상캠퍼스(옛 서울농대) 할복의거 현장, 지금은 덩그마니 표지석 하나 낮게.
열사와 300여 학우들이 함께했던 저 뜨거운 공간에 상진형님을 우뚝.
다양한 가능성으로 날아다니는 중이다.
오늘 저녁 몇 년 전, 김상진 기억동산을 제안한 이창현 교수(농생물 82)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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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김상진 새겨넣기
“서울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가 있죠? 서울대 정문 말고요.”
“서울농대 이미지로는 뭐가 있을까요?”
국민대 이창현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다. “에이! 그래도 하나쯤은 있겠지” 했지만 우리는 서로 간에 답을 구하지 못했다. 농대 79학번인 나, 82학번인 이 교수 둘 다 나름대로 생을 꾸려왔지만 답을 못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두고두고 누리고 싶은 ‘심상 이미지’도 안 보인다.
순간, 김상진 열사는?
나름대로 자료 모으고 인터뷰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었지만 그 부분을 놓친 자책감이 엄습한다. 씁쓸하고 아프다. 왜 진작 열사의 이미지를 상정하지 않았을까? 역사와 공동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나 조직의 숨결이 오롯이 옹글어져 맺힌 시대정신, 그 지향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지는 유·무형의 이미지.
체 게바라 초상, 안중근 의사 손가락, 전태일의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2025년, 김상진열사 50주년 기념사업은 ‘사람을 남기는 것’에 우리 국민 마음에 ‘김상진 새겨넣기’를 추가목표로 삼는다. 칼로 자신의 몸을 찔러 26살 생애를 바쳐가며 지향한 숨 가쁜 역사와 시간과 공간, 그 의미를 하나에 담은 유기체적 이미지.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난다”
상진형! ‘뜨거운 울림’으로 모습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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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매듭이면서 출발_김상진열사 50주년 준비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김상진 열사는 이 양심선언문을 비장함으로 토해내고 칼로 할복·자결했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수원캠퍼스)에서의 일이다.
내일은 흔들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 혁명투표일. 부디 열사의 뜻대로 민주주의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길….
4월 7일,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 묘역에서 김상진 열사 49주기 추모제와 이어 내년 2025년 김상진 열사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족식. 나는 추진위 위원장으로 위촉받았다. 참석한 선후배들로부터 내년 형님의 50주년을 의미 있게 설계·추진하라는 명을 받은 것이다.
위촉장을 받고, 준비해 간 생각을 PPT와 동영상 스토리(얀팔라흐 & 김상진)를 통해 설명했고 참석한 분들의 의견도 함께 공유했다.
“김상진 형님과 함께한 내 인생이 의미롭고 즐겁고 유쾌하다.”
“불의하고 쪼잔한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무릎 꿇고 살지 말라는 형님의 말씀이 바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기억이 역사를 만들고, 상상을 낳고 그 상상은 다시 기반기억이 되면서 미래를 만드는 동력이 된다.”
“김상진 열사에 대하여 지금까지 안 해본 상상들을 과감하게 펼치고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위촉장을 받아 든 순간 울컥, 뭔지 모를 뜨거움으로 먹먹했다.
하지만 열사를 정치적으로 신화화하거나 특정화시켜 보편적 우리네 삶결로부터 먼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세대가 열사와 함께한 50년을 역사적으로 잘 마무리해서 향후 100주년을 맞이할 세대에게 온전하게 넘겨주는 ‘매듭이면서 새로운 출발’.
김상진 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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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