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변호사, 조경 04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만큼 당사자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고도 흔치 않습니다. 이번 화에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있을 수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응, 특히 대인 사고에서의 ‘형사 합의금’에 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1. 피해자의 블랙박스, CCTV 영상 확보
교통사고 피해자의 경우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차 대 차’의 사고에서는 우리 측의 블랙박스 및 상대방의 블랙박스를 확보하여 경찰에 전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람 대 차’의 사고에서는 현장에 있는 CCTV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고, 만약 적절한 위치에 CCTV가 없으면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주변 차량의 번호 및 연락처를 기록해 두고 해당 차량의 주인에게 블랙박스를 달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찰 역시 나름의 절차를 통하여 CCTV 영상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복잡하여 어느 한 당사자가 까다로운 논리를 펼쳐야 하는 경우 경찰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모든 증거를 파악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건 발생 직후부터 피해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추후 과실 판정 및 손해 액수를 산정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이미 CCTV 영상을 확보했다면 피해자는 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사 절차가 진행될수록 경찰은 피해자에게 CCTV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수사 초기에 즉시 경찰에게 “변호사와의 상담을 위하여 CCTV 영상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등으로 양해를 구하고 CCTV 재생 화면을 휴대폰으로 녹화하거나 CCTV 영상 파일을 전달받는 것이 좋습니다.
2. 가해자의 대응 – 일반적인 상해(傷害) 사고인 경우
일반적인 상해 사고인 경우에는, 가해자가 법이 정하는 수준의 종합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형사 처벌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치료비 전액, 그 밖의 손해에 관하여는 보험약관이나 공제약관으로 정한 지급기준금액을, 종국적으로는 확정판결로 인한 손해배상금 전액을 보상하는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해 있으면 가해자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 제1항, 제2항). 일반적으로는 ‘종합 보험’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경우에도 민사적으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위에 언급한 종합 보험의 보험사를 통하여 손해배상이 처리될 것입니다.
3. 가해자의 대응 – 12대 중과실 위반, 중상해, 사망 사고인 경우
그러나 가해자가 12대 중과실을 위반하였거나, 피해자가 중상해 혹은 사망에 이른 경우 문제가 어려워집니다. 우선 많은 경우 가해자는 벌금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게 됩니다. 결과가 사망 등으로 중한 경우에는 가해자는 징역형의 실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와의 합의’가 형량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 여부는 양형 기준에 제시되어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도 이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결과가 중한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안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징역형의 실형을 내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찾아가 용서를 받고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가해자는 이를 위하여 형사 합의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형사 합의금에 만족한다면, 형사 합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합의가 이뤄진 경우 피해자는 ‘형사 절차에 한하여 더 이상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탄원서를 작성하게 되고, 이를 전달받은 법원은 한층 완화된 형량의 처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해자가 전달받은 형사 합의금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추후 가해자에 대하여 제기할 민사소송의 손해배상액에서 이미 형사 절차에서 받은 합의금이 공제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형사 절차에서 가해자로부터 형사 합의금으로 2천만 원을 받은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하여 추후 민사 재판을 제기하고 그 결과 법원이 정당한 손해배상금으로 1억 원을 계산하였더라도 법원은 피해자가 이미 받은 2천만 원의 형사 합의금에 관하여 ‘이미 2천만 원만큼 피해의 회복이 이루어졌다’라고 판단하여 8천만 원의 손해배상금만을 인정해 버리곤 합니다. 결국 형사 합의금을 받든 받지 않든, 어차피 1억 원의 총금액만을 배상받는 것인데 가해자에 대한 용서의 의사만을 표시해 준 결과가 되는 셈입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형사 합의 당시 ‘채권양도통지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채권양도’는 ‘가해자가 추후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는 형사 합의금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을 피해자가 양도받고 피해자가 직접 보험사에 대하여 형사 합의금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채권양도’를 한 경우, 보험사가 민사소송 과정에서 ‘이미 있었던 형사 합의금이 손해배상액에서의 공제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더라도 피해자는 해당 금액만큼을 다시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으니 이로서 온전히 형사 합의금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즉, 위 사례에서 1억 2천만 원을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채권양도 통지서는 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서류이니, 피해자는 형사 합의 당시에 채권양도 통지서를 받아 놓아야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피해자는 위와 같은 형사 합의 당시에 실수로 ‘민사 손해배상’까지를 합의한다고 섣부르게 합의하지 않아야 합니다. 민사 손해배상에 관하여도 합의한다고 문서에 기재하는 경우 이는 강력한 ‘부제소 합의’의 의사표시로 인정되기 때문에 추후 민사소송을 전혀 진행할 수 없습니다. 법원으로서도 ‘부제소 합의’가 있는 이상 재판 자체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조기에 ‘각하’하게 됩니다.
4. 가해자가 보험사에 청구할 ‘형사합의금 보험금’이 없는 경우
그러나 위와 같은 ‘채권양도통지서’를 통한 형사 합의금의 보전은 가해자가 보험을 가입하고 있지 않은 등의 이유로 ‘가해자가 보험사에 대하여 청구할 형사합의금 명목의 보험금’ 자체가 없는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일부의 가해자의 경우에는 보험을 제 때 갱신하지 않거나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아 아무런 보험도 유지되고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는 ‘채권양도통지서’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형사합의금을 보전받는 방법을 쓸 수도 없으므로 가해자로부터 형사 합의금을 받더라도 민사 절차에서 그 합의금 전액이 공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형사 합의의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 측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그중 하나로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하여 ‘민사와 형사 절차 전체를 아우르는 합의를 하자’라고 제안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해자가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알고 ‘민사 손해배상금까지를 고려하여 금액을 제안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가해자 자신의 형량을 줄이는 것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위 언급된 사례의 경우를 다시 빌려온다면 ‘1억 2천만 원’이 민사와 형사를 모두 합친 합의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타 사례와 달리 합의서에 ‘이는 민사와 형사의 배상금을 모두 합친 것이다’라는 기재를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새롭게 잎과 꽃이 피는 계절에, 모든 동문 여러분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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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_ 농대 조경학과 04학번으로 전자상거래 기업에서 6년간 근무 후, 202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 기재된 사례는 법령과 판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가상의 사례임을 밝혀드립니다. (jongmin04@gmail.com)
Last modified: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