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35 오후 136호(2024.04)

[음식의 힘1]
상생식당을 시작하며

김원일 내일의식탁 이사장, 농학 84

김원일(농학 84) 내일의식탁 이사장은 내일의식탁을 통해 2017년부터 ‘맛동’과 ‘상생상회’, ‘전통주 갤러리’ 등 식문화공간을 운영하면서 청년, 소비자와 농부, 가공생산자, 조리사, 식생활교육강사를 연결하였다. 2019년부터는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을 운영하면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였고, ‘참발효어워즈’를 통해 고품질 식품장인과 식품 소매점을 연결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와 함께 진행한 음식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음식의 가치와 힘에 대한 경험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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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피츠버그 도시 한복판에 <대립 주방(conflict kitchen)2>이라는 게 열렸었다.

<대립 주방>에서는 일정기간 미국과 대립하고 있던 나라들, 이란, 아프가니스탄,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 그리고 북미 원주민들의 음식을 판매하였다.

<대립 주방>을 기획한 사람은 미국 카네기멜론대 사회학과 교수 존 루빈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하였다. “음식은 지성을 뛰어넘어 바로 본능과 연결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나누면서 평소 나누기 어려운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미국과 분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쟁과 핵 문제, 테러 소식 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해당 나라를 나쁜 국가로만 여기고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고유한 문화와 삶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다. 미디어가 전하는 단편적인 정보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고 생각한 존 루빈 교수는 미술작가 돈 월레스키와 함께 대립 주방을 만들어 음식을 통해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이들은 이들 나라를 소개할 때 해당 나라의 출신자를 직접 만나 이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듣고 연구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 사회를 조사할 때는 한국을 방문해 새터민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매번 한 나라만을 위한 식당 간판, 메뉴 그리고 포장지가 탄생하며 포장지에는 각 나라의 음식 이야기부터 그곳 사람들의 삶 등을 주제로 해당 국가 출신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 간의 유대감이나 친분을 쌓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따뜻한 밥이 허기진 배는 물론 우리의 마음을 채워줘 여유를 갖고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수단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장소, 대립 식당. 이들의 활동은 건너기 힘들 것 같은 갈등 관계에 놓인 두 진영 사이의 깊은 편견을 해소하는데 음식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잘 보여주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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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말에 서울시로부터 서울시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옛 질병관리본부의 2층짜리 구내식당을 서울시가 리모델링해서 <맛동>이라는 이름의 음식체험장을 조성하였는데, 이곳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피츠버그에서 열렸던 컨플릭트 키친 같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가나다밥상이라는 활동이다. 가나다밥상은 ‘치를 누는 양한 밥상’의 줄임말이다. 음식에는 영양과 건강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에는 농업 농촌의 가치가 담겨있고, 농부와 요리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역과 역사, 전통과 다문화, 땅과 자연, 계절과 기후, 경제와 문화 등 음식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치가 담겨있고 나는 이것을 2017년~2018년에 100여 차례의 가나다밥상에 담아 차렸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2019년~2023년에 서울시 종로구 상생상회에서 서로맛남이라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서로맛남은 ‘울과 컬의 있는 만’을 줄인 이름이다. 이곳에서 지역의 향토음식과 식문화 이야기를 서울시민과 함께 나누기를 5년. <대립 주방>에서 시작된 활동이 ‘도농상생’까지 이어졌다. 음식으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 상생과 협력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렇게 서울시와 함께 음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니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그동안 해왔던 프로젝트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코너를 빌려서 음식의 가치와 힘에 대한 나의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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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가치와 힘은 활자로 느낄 수 없는 것이 많다.

음식은 직접 오감으로 체험할 때 온전히 그 맛과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매회 한 곳의 음식 정보를 전하고 함께 그곳을 찾아 직접 맛보는 체험까지 마칠 수 있도록 연재물을 구성하려고 한다.

첫 번째 정보는 충북 음성의 작은 양조장, <하나도가>이다.

<하나도가>는 북한의 전통주를 빚어내는 ‘술도가’이다. 지난 2008년 3세의 어린 딸과 함께 탈북한 김성희 씨가 만든 양조장이다. 그녀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군이다. 북한 사회에 물자가 부족해서 집집마다 술을 직접 제조해서 먹는 가양주 문화가 퍼져 있다고 한다. 그녀는 집안에서 술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농태기’와 ‘태좌주’를 2018년부터 생산, 시판하고 있다.

‘농태기’는 알코올도수 25%의 소주이고, ‘태좌주’는 도수 45%로 귀한 손님이나 가문의 어른들이 모였을 때 대접하던 술이었다고 한다. ‘클 태(太)’, ‘앉을 좌(坐)’ 크게 앉아 마신다는 뜻으로, 진심 어린 존경을 담은 고급술이라고 한다.

<하나도가> 김성희 대표는 남한에 정착해서 딸을 잘 키우게 된 것에 보답하는 뜻으로 음성에서 매달 어르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태좌주’ 통일의 날, ‘통일의 술’로 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하나도가>의 술은 인터넷으로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구매해서 혼자 마시면 무슨 재미인가? 벗들과 함께 모여 마셔야 제 맛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 양조장에 가서 함경도 회령의 음식 한상차림과 함께 곁들여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5월에 <하나도가> 주안상 미식회를 개최하니 직접 체험해 보기 바란다.

(신청 : 010-8732-9380)

1) 음식은 힘이 세다. 내 인생의 순간순간을 함께했던 음식과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내가 음식을 만든 게 아니라 음식이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2) Conflict Kitchen was a take-out restaurant in Pittsburgh that served only cuisine from countries with which the United States was in conflict. https://www.conflictkitchen.org/past/north-korea/

3) ZUM 허브, https://m.hub.zum.com/benefit/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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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_내일의식탁 이사장. 도농상생, 남북상생, 동북아상생을 꿈꾸는 사람.(kma411@hanmail.net)

Last modified: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