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7:58 오후 135호(2024.01)

[초보정책가 일기]
수능 심화수학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지난호에서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에 대해 팩트체크를 진행해 보며, 대통령은 학생들이 많이 배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후 발표된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그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대규모 범위 축소가 확정되었다. 사회와 과학은 1학년 과목만 수능에서 다루고, 수학은 2학년 과목까지만 수능에서 다루기로 했다.

이 개편안에 대해 이공계 교수들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공대 수업을 들을 수 없는, 미적도 안 배운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다며, 한국이 망할 거라며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뒤이어 고등학교 교사들이 반박을 시작했다. 수능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대학에서 가르치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교수들은 대학에서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박하는 등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먼저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고 시작해야 한다.

Q. 수능에서 평가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가?

A. 학교에서는 다 가르치게 되어 있다. 교육과정이 고3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고, 다 이수해야 졸업 가능하다. 잘 배웠는지 학교에서 내신시험도 치른다.

Q. 수능 범위가 대부분 고1~고2 과목까지 밖에 없는데? 고3 때는 복습만 하는 것 아니냐?

A. 아니다. 내신도 치러야 하고, 내신을 반영하는 수시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내신을 위해서라도 다 배우게 된다.

Q. 그래도 심화수학은 선택과목이라 수능과목도 아닌데, 선택 안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아니겠나?

A. 내신에서 이수하게끔 만들면 된다. 대학에서 내신 필수 이수 교과로 지정하면 된다. 다만, 대학들이 여러 사정(상위권 대학으로의 이탈 방지 등)으로 인해 고난이도 교과 필수과목 지정을 꺼리고 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Q. 자꾸 내신, 내신 하는데 정시에는 내신이 안 들어가지 않나?

A. 이게 가장 큰 오해인데, 2028학년도 입시부터는 정시에서도 내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 때문이기도 하고, 수능 범위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써 서울대는 정시에서 내신 반영을 시작했다.

이같은 공통의 기본 지식없이 논쟁이 진행되다 보니 결론은 산으로 흐르고 있다. 다들 생업이 바빠 논쟁 자체는 곧 종식될 것이다. 오히려, 이 논쟁이 놓치고 있는 더 중요한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논쟁을 촉발시킨 국가교육위원회의 의사결정 보도에 따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과목선택에서 사교육비를 가장 큰 고려사항으로 삼았다고 한다. 나는 이 지점이 훨씬 더 우려된다. 과연 그게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 무엇을 평가받을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현대 한국은 역사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론화, 숙의, 논의과정을 통해 나라를 바꿔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회적 변화는 독재자의 결단에 의해 추진되거나, 문제가 발생하여 그에 대한 미봉책을 마련하면서 진행되었다.

백년지대계라 불리는 교육도 그러했다. 특히, 공교육의 최종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입시는 더더욱 그 경향이 심했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입시가 요동치듯이 변화했고, 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은 언제나 사교육이었다. 사교육 대책을 위해 입시에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교육이 진흥되는 방식으로 공진화해왔다. 변화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낳았고, 이는 수험생 학부모에게 공포를 선사하였으며, 공포를 자양분 삼은 사교육은 다채롭게 성장했다.

지난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교육계는 백년지대계라는 이름이 그 의미를 다하도록, 교육정책을 숙의해서 합의하기 위한 기관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출범부터 국가교육위원회는 실패를 예비한 채로 태어났다. 정치권에서 위원을 추천하도록 만들어 합의보다는 갈등이 쉽도록 구성되었고, 중요한 결정권은 교육부로부터 하나도 넘겨받지 못했기에 속 빈 강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독립된 의사결정기관을 만들면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될 것이 뻔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들 하나, 그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다.

교육과정에 대한 숙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성취를 이뤄, 어떤 역량을 갖추게 할 것이냐를 두고 격론을 펼쳐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무엇을 평가할지를 논의했어야 한다. 단지 사교육비가 늘 것이냐, 줄어들 것이냐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공염불만 외운 것을 숙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번 심화수학 배제 결정에 주도적 의견을 낸 단체는 전국수학교사모임이 유일해 보인다. 아쉽게도 교수들의 모임인 대한수학회는 공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의견을 제출하여 제대로 된 의견반영을 이루지 못했다. 전국수학교사모임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주도하여 만들어진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오랫동안 학습량이 많아서 사교육비가 늘었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고, 수능 범위를 줄여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수능이 줄 세우기 변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제 범위가 줄어드니 그 귀결은 킬러문항의 등장이었다. 킬러문항의 주범이 또 한 번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을 줄여냈다.

아이들이 덜 배우게 되면, 더 배울 기회를 사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부자들과, 그렇지 못한 서민들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공교육은 그 격차를 메워 사회의 최소치를 높여내야 한다. 때문에 나는 공교육이 민주시민 양성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넓게, 더 깊게, 더 많이 배우고 익힌 학생이 사회로 진출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학교가 더 많은 시간을 학생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진보가 가져야 할 교육적 지향이라 감히 말해본다.

학교에서 덜 배우고 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혹시 자신들은 학원에서 더 배우면 되니까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아닐까 한 번씩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심화수학 논쟁이 놓친 진정한 함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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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