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7:54 오후 135호(2024.01)

[오정삼의 人in人]
9.09 센티미터의 죄를 참회합니다

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9.09 센티미터는 무엇일까?

예부터 쓰던 길이의 단위인 척(尺)의 십 분의 일을 치(寸)라고 하고 1치 = 3.03 센티미터이니 9.09 센티미터는 ‘세 치’가 된다. 즉, 사람의 혀의 길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여기서 떠오르는 속담이 바로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웃음거리 한 가지를 소개한다.

지난해 9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유엔 총회에 참석해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했던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발언에 대한 MBC 보도에 대해서 법원은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에서 외교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과연 후대의 역사가들 가운데 어떤 이가 『남북사기(南北史記』를 서술한다면 그 「列傳 : 尹錫悅 編」에서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인 尹錫悅事大를 다하여 大國인 미국을 방문했을 때 拜登論爭(바이든날리면 논쟁)’이 있었는데, 검찰독재국가의 하수인을 자임한 사법부는 집권 여당의 손을 들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 하였다.

라고 쓸지도 모른다.

이번에 들 또 다른 예는 세 치 혀에 의한 ‘말의 상처’에 관한 얘기이다.

#Episode 1.

(상사에게 직장을 방문한 결혼할 여자 친구를 소개하는 자리)

상사 :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자 : 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직원 : 제 여자 친구가 결혼하기 전 꼭 센터장님을 찾아뵙겠다고 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상사 : 고맙습니다. 편히 있다 가세요.

(상사와 직원, 잠시 여자 친구를 자리에 남겨두고 자리를 뜨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사 : (여자의 꾸미지 않은 모습에 흐뭇한 마음으로) 화장도 안하고 오셨네?

직원 :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한다.) 뭐야! 아무리 윗사람이라지만 ‘감히 윗사람을 만나러 오면서 화장도 안하고 와?’라니 이건 완전 성희롱이네. 내가 이런 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돼?

#Episode 2.

(사장이 오랜 친구를 고용해서 일하는 중소 식품회사. 최근 위생 점검에서 다수의 지적 사항이 발생한 후 후속 공정 작업의 팀장을 불러놓고 별도의 업무 지시를 내린다.)

사장 :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죠? 팀장님이 가공부 위생 문제도 관리·감독해 주세요.

포장부 팀장 : 가공부 팀장님은 사장님 친구분이시라서 제가 지시를 하기는 좀 불편합니다.

사장 : 아녜요. 가공부 팀장은 친구라서 그런지 내 말을 잘 안 들어서요. 부탁합니다.

포장부 팀장 : 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가공부 팀장이 얼굴을 붉히며 사장실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가공부 팀장 : 야! 너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사장 : 화내지 말고 앉아봐. 우리 회사가 한 번만 더 위생점검에 지적 사항이 발생하면 문 닫아야 돼서 그래.

가공부 팀장 : 너, 내가 가진 게 없다고 깔보는 거냐? 너는 히틀러보다 더한 자본가야!

출처 : 『영남일보』, 2010-03-25 제27면, [자유성] 舌禍

위의 두 가지 장면 모두 ‘말의 상처’에 관한 예이다. 몽고의 속담 가운데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화의 상대는 상대의 의도와 전혀 반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처를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기억할 수도 있다. 문제는 말을 내뱉은 사람은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을 무례하거나 공격적이라고 이해한 상대가 삭히기 힘든 분노와 감정의 앙금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막말과 조롱, 그리고 나아가 의도적인 편 가르기와 왜곡이 매우 유용한 경쟁과 생존의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사리판의 최전선을 당당히 담당하고 있는 곳은 바로 정치권이고, 마침내는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칼부림을 하거나, 인격적 모멸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상대방의 말로 상처를 받게 되면 처음에는 감정적인 아픔을 느끼지만, 이는 곧 분노와 자신에 대한 무력감으로 발전하여 심할 경우 부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기까지 한다. 화자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데도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아픔이 될 수 있을진대, 자신의 세를 불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상대를 폄하하고 왜곡하기를 일삼는 정치권이 시민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이 글을 마치며 그동안 무심코 던진 저의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분들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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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