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7:24 오후 135호(2024.01)

[청년 미래를 꿈꾸다]
풍요의 시작, 소담이와 함께한 나날들

김수현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농경제사회학부 08

나는 최근에 한 변화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경험했다. 몇 달 전, 나와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던 길고양이에게 간택을 당해 식구로 맞이한 것이다. 9월 말,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만난 작고 귀여운 이 아이에게 ‘소담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냥 우리 동네가 소담동이니까 소담동 고양이라서 소담이였다. 처음에는 낯을 조금 가렸지만 몇 번 마주치니 금세 가까워졌다. 소담이는 친화력 있는 ‘개냥이’였다.

어느 날, 나는 옥천군에서 늦게까지 모임이 있어서 외박을 했다. 그날 아내는 동네 독서모임에서 《죽은 자로 하여금》이라는 장편소설을 토론했다. 아내는 그날 저녁 그 책을 통해 구조적 불합리함, 그럼에도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생명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아내는 늘 그랬듯 집 앞 쓰레기장에서 소담이와 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곧 겨울인데 안 데려갈 거냐고 몇 마디 했나 보다. 처음 보는 행인의 말은 소담이의 간택을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하는 운명적인 순간으로 변했다. 그래서 그 길로 안고 집에 들어왔고 소담이도 순순히 입성했다고 한다. 다음날 나는 반차를 쓰고 집에 와서 소담이를 가족으로 맞이할 것인지 가족회의를 했고, 회의 결과에 따라 소담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간 우리 부부는 길고양이를 너무 좋아했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다른 생명체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담이는 예상치 못한 집안일과 행복을 동시에 선사해 줬다. 무엇보다도 변화한 것은 평온했던 나와 아내의 관계이다. 그간 나와 아내의 관계란 부부인 듯, 친구인 듯, 개인과 개인의 연결이었다. 그런데 작고 꼬물거리는 존재가 추가되면서 두 명의 인간에서 플러스 알파로, 그리하여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질적으로 변화했다.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소담이에 관한 대화로 바뀌었다. ‘딸’ 바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소담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가 생각이 안 날 지경이니까. 내 삶은 물결치듯 변화하고, 일상은 특별하고 풍요로워졌다.

.

우리 가족에 새로 합류한 이 작은 생명체는 집 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뛰어다니다가 관절이 아플까봐 집 전체에 매트를 깔고, 하나 둘 고양이 가구를 구입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고양이 집에 얹혀사는 꼴이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은 발자국이 내 마음에 깊게 스며들었다. 소담이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부터 큰 행복까지, 고양이와의 시간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바쁜 일상에 지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고양이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 주었다. 그 작은 존재가 주는 위로와 공감은 마치 마음의 오아시스 같다.

물론,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는 책임과 헌신이 필요하다. 고양이가 무심한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똑똑한지 경탄하게 된다. 돌아보면 이제껏 나는 그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나누어줄 수 있는 깊은 사람이었을까, 누군가에게 삶에 새로운 의미나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는 사람이었을까. 소담이와 함께한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소담이의 귀여움 속에 숨겨진 깊은 우정과 이해를 발견했다.

작은 가족인 고양이와 함께한 이 특별한 여정은 나에게 큰 기쁨과 풍요를 안겨주었다. 일상에서 한 번쯤, 작은 변화로 인해 찾아온 풍요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갑작스런 행운과 지금의 행복함에 감사하는 한 해를 만들어가야겠다.

.

김수현 _ 농경제사회학부 08학번.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뭘 하면 좋을까 새로운 꿍꿍이에 골몰하며 내성적인 주제에 계속 사람들을 모으고 커뮤니티, 공동체를 꿈꿉니다. 청년, 사회적 경제, 지역, 마을자치 오만가지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soohyun8288@gmail.com)

Last modified: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