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우리 참 힘든 세월 열심히 살았어! 이젠 좀 편안해져도 괜찮아! 그렇지!
2023년 12월 1일 7시에는 옛골토성에서 김상진기념사업회 송년회가 열렸다. 특히 이날은 서둔 야학의 이호선 선생님과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김 교수님이 참석하셔서 뜻깊은 자리가 됐다. 이호선 선생님을 몇 년 전 ‘김상진 열사 추모제’에서 만났을 때 내가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김기사 정근우 회장님이 들려주셨다. 이 선생님은 축산과 69학번이기에 서둔 야학 후배들의 선생님이었다. 졸업 후에도 서둔 야학을 수시로 드나들던 나였기에 이 선생님과 교감을 나눴었다. 나의 정서는 여전히 그리움이었다.
이호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다닌 것보다 서둔 야학 선생님이었던 것이 더 보람 있고 뿌듯하다!”라고.
그 말씀에 문득 서둔 야학 재학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 서둔 야학 선생님들은 번번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다닌 것이 아니라 서둔 야학을 다닌 것이다.”라고.
서둔 야학 선생님들은 야학생들에게 시간과 열정을 모두 바치셨다. 그런 야학 선생님들께 야학생들은 마음을 뺏기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을 송두리째 털렸다.
그날의 송년회 비용은 모두 이호선 선생님이 내주셨다. 송년회가 끝난 후였다. 옛골토성 정원에서 이호선 선생님이 나를 힘껏 안아주셨고 나도 그 품에 기꺼이 안겼다. 힘든 세월을 견뎌낸 두 영혼이 서로의 영혼을 보듬어주는 느낌이었다.
“우리 참 힘든 세월 열심히 살았어! 이젠 좀 편안해져도 괜찮아! 그치!”
서로의 심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분에게는 행운이 될 수도 있다.
뜻밖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신 분은 농생명과학대학 김 교수님이었다. 농학과 박순직 선생님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발령받지 못한 것은 여기에는 밝힐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이 일로 엄청나게 상심한 박순직 선생님은 산을 다니시며 그 억울함을 애써 삭히셨다고 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박순직 선생님과 몇 년간 같이 근무했던 김 교수는 지금 이따금 만나서 같이 등산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자격이 넘치는데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울대학교에 임용이 되지 않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근무하게 된 박순직 선생님이었다. 류수노 방송대 총장님은 박순직 선생님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근무하셨기에 사제의 좋은 인연을 맺어서 출세의 지름길을 밟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서울대학교에 임용되지 않은 것이 박순직 선생님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류수노 총장님께는 행운이 됐다.
서로의 피부에 감탄하고 있었다.
농화학과 80학번인 염태영 경기 부지사님도 송년회에 참석하셨다. 공무로 바쁜 일정 중에도 참석해 주신 염 부지사님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피부가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
염 부지사님이 내 얼굴을 보고 감탄하셨다.
“저도 염 부지사님 피부를 보고 ‘피부가 참 좋으시구나!’라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어요.”
긍정적인 의미로 ‘사돈 남 말 하고 있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내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이 나온 것은 2019년이었다. 염 부지사님의 수원 시장 시절이었다. 염 시장님 또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학 시절 수원 시내에 있던 화홍 야학의 선생님이었다. 염 시장님은 기꺼이 내 책의 추천사를 써주셨고 수원 시청으로 나와 야학 선생님들을 초청해 주셨다. 지금 서둔 야학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시는 분도 염 부지사님이다. 서둔 야학사와 야학 건물이 우리나라 교육사에 길이 빛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의 역사에 서둔 야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생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몇십 년에 걸쳐서 순수하게 봉사한 뜻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식층이 민중의 어려움에 나 몰라라 하고 혼자만 잘살면 그 배움이 과연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을까?
말이 없고 목에 깁스한 남자가 좋다!
특별히 서민동 장원택 회장님과 이은정 사무총장도 자리를 함께해 주셨다.
바로 앞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던 나는 장 회장님께 고백했다.
“저는 말이 없고 목에 깁스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장 회장님이 딱 제 스타일이에요!”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한창 연장자인 내게 회장님은 싱긋이 웃었다. 회장님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 웃음. 내가 좋아하는 그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음식을 먹는 거보다 장 회장님 쳐다보는 게 더 좋았고 김기사 회원들의 얘기에 집중하느라 거의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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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