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7:05 오후 135호(2024.01)

[생활과 법]
사인 하나, 약속 하나

이종민 변호사, 조경 04

약속과 서명(Sign)의 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이는 법대나 로스쿨을 입학하면 처음으로 배우는 계약법 입문 시간에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법언입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이 말이 주는 무게는 만만치 않습니다.

모호한 약속의 대가 – 내 사업인데 내 사업이 아닌 사업

경기도 인근에서 특정한 중국산 제품 수입 사업을 진행하는 20대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 년도 더 전의 일이라, 해당 제품이 아직 생소하던 때였고, 언론이나 인터넷 기사에 간혹 관련 사업이 유망하다는 정도의 말이 나오던 때였습니다.

친구는 사업을 하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금은 부족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지인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법인을 운영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친구는 자금을 조달받는 대가로 지인에게 회사의 49%의 지분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해당 사업이 곧 크게 번창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정도 규모의 지분을 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작은 규모로 중국산 상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곧장 많은 수익을 거두기 시작했고 결국 자신만의 브랜드로 해당 상품을 리브랜딩하여 판매하고 AS를 진행하며 콘텐츠 업무를 추가로 진행하여 사업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른 이후, 친구는 사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정관을 바꾸거나 인수, 합병, 신규 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항은 상법이 정한 주주총회 특별결의의 사항으로 친구만의 지분으로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결국 회사의 중대한 의사결정은 모두 자금을 조달한 지인의 의사에 맞추어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자금을 조달한 지인은 위와 같은 인수, 합병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고,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것에 대하여도 부정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까지 자신이 일궈놓은 법인을 무위로 돌리고 새로운 법인을 시작하는 것도 난감할뿐더러, 배임 우려로 인해 기존의 법인의 자산을 함부로 다른 곳으로 반출하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결국 친구는 자신이 애써 만든 사업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금을 조달한 지인은 처음에는 ‘회사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겠다’, ‘회사는 당신이 모두 운영한 것이고 나는 지분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친구를 안심시켰지만, 지금에 와서 지인이 이러한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계약서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서명 하나가 주는 힘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우나 자금을 조달한 지인에 대하여 협상을 통해 원만한 합의를 하거나 제3의 우호적인 투자자를 찾아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의 발언을 찾아내어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급속도로 번창하고 있는 사업을 내버려 두고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소송을 진행하라고 선뜻 권유하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친구가 처음 법인으로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 해당 법인의 미래 가치가 얼마가 될지를 가늠하지 못하였고 ‘약속’에 대한 특별한 증거를 남기지도 않은 채 49%나 되는 지분을 지인에게 부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신규로 시작하는 과정에서 투자를 받고 상대방에게 지분을 부여하는 경우 ‘주주간 계약서’의 작성을 통하여 향후 회사에 대한 각자의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규모의 법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상호 간의 약속이 없거나 모호한 상태에서 지분을 부여하고 나중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설령 ‘주주간 계약서’와 같은 형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분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회사에서의 역할을 서로 논의하고 합의한 내용이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시지, 전화 통화 녹음으로 명백히 증거로 남아 있다면 이러한 점을 들어 향후 회사의 운영에 있어서 상대방의 접근을 차단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서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 간의 의사표시를 사후적으로 발견해 내는 작업은 여러 가지 종류의 소송에서도 매우 난이도가 높고 소송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소송입니다. 소송을 진행한다면 당사자 역시 1~2년이 넘는 소송의 기간 동안 심적으로 지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상호 간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확정 지은 ‘주주간 계약서’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특정인에게 지분을 부여하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지분만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만약 지분 가치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시리즈 A 투자 이후에 지분을 다시 확정하는 SAFE 투자 등의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판례의 동향

최근 고등법원 판례 등은 주주간 계약서로 권리의무를 확정 지은 상태에서도 그것이 지나치게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면 그러한 권리의무의 제한은 무효라는 취지로 판단한 바가 있습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단계인데, 최근 회사법에서 매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이뤄진다면 향후 ‘주주간 계약서’ 작성에 있어서 참고하여야 하는 매우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회사라는 법인격을 만드는 과정은 상호 간의 첨예한 대립과 분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 당사자들 간의 약속을 확실히 기록해 놓은 문서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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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_ 농대 조경학과 04학번으로 전자상거래 기업에서 6년간 근무 후, 202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 기재된 사례는 법령과 판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가상의 사례임을 밝혀드립니다. (jongmin04@gmail.com)

Last modified: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