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추도식 인사말
고.김준기 선생 막내 김승택
막내 김승택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지 못해서 아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신 자리에서 발언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멋진 발언을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오늘 무척 기쁘실 것 같습니다. 병상에서도 늘 보고 싶어 하셨던 분들이 모두 모이셨으니까요. 아버지 약력을 정리하다 보니, 너무 많고 너무 다채로운 단체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근거 자료가 부족하고, 공식 직책이 없어서 제한된 분량의 약력에 넣지 못한 단체들의 이름이 무수히 많습니다.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돈이나 권력과는 무관해서 자식 입장에서는 아쉽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 함께하기 불가해 보이는 단체들도 많았습니다. 한 사람의 활동 영역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물어볼 때마다 아버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은 물론 개인사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농민 노동자 빈민이 모두 단결해서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진보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연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많은데 병이 생겨서 어쩌냐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 역시 그 목표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게 조만간에 가능하겠냐고 이제 쉬셔도 되지 않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틀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과 수많은 다양한 단체들이 태풍을 뚫고 한 자리에 모이신걸 보니, 아버지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의 자녀와 손자손녀까지 가족 17명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참 많다,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 하시고 가족사진을 ‘가보’라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선물 받으신 술들을 몇 병 남겨두셨는데, 아마도 그것이 아버지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본인 재산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남겨 놓으신 작은 선산과 고향집이 있는데, 그마저도 끝까지 자신의 것이 아닌 할아버지의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가족들 간에 나누고 다툴 것 없이 가족단체를 만들어서 공유하고 보존하고 가족묘를 만들 것을 희망하셨습니다. 아무튼 사유재산은 싫어하고, 그저 사람들이 모이고 화합하고, 단체를 만드는 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12살 무렵에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마지막 만나는 자리에서, 가난하고 힘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70여 년 동안 아버지는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으십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내가 병으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처럼 싸우다 죽을 거라고만 생각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이라도 용산으로 모셔다 드릴까요?”라고 하자 허허 웃으시며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아버지와는 다른 공부를 했고,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활동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동지분들을 많이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히 돌아다니실 때 좀 따라다닐걸 하는 것이 지금에 와서 가장 큰 후회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결국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셨던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운동, 탈자본운동, 공유지운동, 지역운동 비슷한 것들을 약간 다르게 분명 더 못하겠지만 반복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약속의 말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하셨던 것들 저와 동지들이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보시기에 시원찮아도 이제 하는 수 없으니, 그만 맡기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싸움은 꼭 비장하고 힘든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갖고 싶은 것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아버지는 늘 즐겁게 운동을 하셨고, 여러분들과 즐겁게 함께 하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본인이 만든 농민가의 가사대로 춤추며 싸우는 자매형제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한 명이 다른 곳으로 갔지만, 우리 남은 사람들은 계속 춤추며 싸우는 동지들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선창에 따라 농민가를 함께 부르면 좋겠습니다.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Last modified: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