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13 오후 133호(2023.07)

[초보 정책가 일기]
수능 관련 대통령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교육계 전체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맨스플레인 방식 국정운영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쓴소리 할 수 있는 참모 하나 없이 소위 말하는 ‘개저씨’의 ‘뇌피셜’ 잡담이 국정운영의 주요 지표가 된다는 측면에서 나라의 운명이 걱정되는 상황이 교육계까지 덮쳤다. 굳건한 현대 한국의 시스템이 제왕적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어떻게 망가지는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참모로서, 전문가로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할 경력직 교육부 장관은 “나도 대통령에게 배운다”며 납작 엎드린 상황이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일단, 무슨 말을 했는지부터 살펴보자. 6월 15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했다는 말은 다음과 같다.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교육당국과 사교육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하나씩 따져보자.

①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윤 대통령이 수능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수능은 윤 대통령이 치른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달리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예비고사와 그 이후 학력고사는 추론 없이 암기만으로 시험을 대비해야 했다. 그 폐단을 극복하여 논리적 사고를 시험에 녹여내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수능이다. 지식 그 자체보다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설계되었고, 30년의 역사 동안 고도화되었다. 그 정수가 윤 대통령이 지적한 ‘킬러문항’에 녹아있다. 때문에 수능 문제는 배경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더 잘 풀 가능성이 있겠으나, 배경지식이 없다고 못 풀 문제들은 아니다. 대학 전공 수준의 지문이더라도, 지문에서 주어진 내용을 기반하여 풀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부가 공개한 킬러문항 목록을 보면, 21세기 역량이라고 여겨지는 간학문적 접근, 융합적 사고, 논리적 추론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②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

수능의 발전 역사에서, 공교육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무수히 경주되어 왔다. 다만, 교육과정도 현대화되면서 내용요소 그 자체를 가르치도록 특정하지 않고 점점 더 ‘대강화’되어 왔다. 2015개정 교육과정 국어과 화법과 작문 성취기준을 예로 들어보자.

[12화작01-01] 사회적 의사소통 행위로써 화법과 작문의 특성을 이해한다.

[12화작01-02] 화법과 작문 활동이 자아 성장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함을 이해한다.

[12화작01-03] 화법과 작문 활동에서 맥락을 고려하는 일이 중요함을 이해한다.

이러한 성취기준에 맞추어 15종의 화법과 작문 검정교과서가 시중에 출판되어 있다. 이번에 교육부가 예시로 지적한 문제도, 이 성취기준에서 벗어난 것인지 하나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차라리 고교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구면좌표계 개념이 수학 시험에 요구되었다고 한다면 공교육 범위 밖이라고 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③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

검사 출신 대통령을 두고 있는 행정부인 만큼, 열심히 ‘나쁜’ 사람들을 때려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미 종로학원, 메가스터디, 시대인재 등의 유명 학원이 특별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어쩌면 일타강사 한 명의 구속으로 정국을 마무리하려는 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고, 시장의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 우파 진영에서 능력기반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예시로 언급되는 일타강사들을 적폐로 몰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윤 대통령 내외인 만큼, 속내는 좌파에 속해 있어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살찐 고양이법1을 응원하고 있는 건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④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이 진짜 그냥 장삼이사 개저씨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수능이 이런 유형을 출제한 지 오래된 만큼, 학교에서도 과목 융합형 대비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국어 시간에 비문학 문제 해설을 위해 경제, 수학, 과학 등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옛날 사람인 윤 대통령에게만 낯설 뿐이다. 물론, 킬러문항 자체가 학교에서 대비할 성격의 문항은 아니다. 보편공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학교는 0.1%, 1%를 변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킬러문항을 대비하는데 노력을 쏟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교육과정에서 기르고자 하는 핵심 역량으로 ‘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이 선언되어 있고, 그에 맞추어 학교가 변화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2022년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통계 작성 이후로 최고치를 달성했다. 때문에 사교육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대의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왜’ 사교육비가 증가하는지, 어떤 양상으로 증가하는지, 학교급별, 지역별, 계급별 양상은 어떠한지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개별 문제에 맞춤형 대안을 제시해야 함이 마땅하다. 단적으로 사교육비 총액 26조 원 중 고등학교 사교육은 7조 원에 불과하고 초등학교 사교육이 11.9조 원으로 가장 크고 증가율도 가장 높다는 점도 세간의 편견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 요소별 문제를 분석하여 보다 종합적인 대책이 제시되길 바랐으나, 교육부가 그 직후에 내놓은 대책은 기존 정책의 되새김질에 불과해 여러모로 아쉬움만 남겼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통령의 말의 무게가 가벼우니 대책 또한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저렇게 헛발질을 계속하며 좌충우돌할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로 정정하며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 다시 우리가 정권을 운영하게 되었을 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타산지석을 삼아 반추해 보는 시간으로 여기는 수밖에 없는지 남은 4년이 너무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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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찐 고양이법은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소득 재분배를 개선하기위해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 임원의 보수 상한액을 정한 법령이나 조례를 가리킨다. 요컨대 최고임금제(maximum wage)를 반영한 법으로, 최고임금제란 소수에게만 과도하게 높은 임금이 지불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이다.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살찐 고양이법을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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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