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1) 박사와 나
며칠 전 두 분의 작가님들께 내 묵은 고민을 털어놨다. 한 분은 소설을 쓰시고 한 분은 방송작가이시다.
“제가 사실 황우석 박사에 관해 조금 오래 취재를 했는데요. 황 박사나 황박사 지지하는 분들께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거든요.”
“부채의식이 있다고요?”
“예. 10년 취재기를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서 내면서 이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났는데도 영화는커녕 시놉시스도 못쓰고 있네요.”
“영화요?”
“요즘도 그 뭐냐 최민식 씨 나오는… ‘카지노’ 그거 보면서 ‘아 저렇게 쓸 수 있는데…. 이야기는 진짜 많은데….’ 하면서도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한 줄도 못쓰겠어요. 썼다 지웠다하기만 몇 년짼줄 모르겠네요. 사람의 기억이란 게 한계가 있는데…. 혹시 주변에 시나리오 쓰는 작가님 계실까요?”
그러자 강 작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 박사님은 요즘 뭐 하세요?”
뜬금없는 질문, 하지만 심심치 않게 들어온 질문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연구하고 계시죠. 뭐. 중동에서.”
그 말에 강 작가는 ‘그렇구나’ 하더니 입을 닫았다. 옆에 있던 현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싶어 그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다음다음날이던가, 그날도 일이 있어 함께 밥을 먹고 커피까지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또 그 이야기가 나왔다. 황우석….
“사실 그날 피디님이 황박사 연구하고 있다고 할 때 조금 놀랐어요. 저는 그분이 지금도 감옥에 있거나 쫄딱 망해있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하시니까 ‘그럼 그때 기술이 진짜였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셨구나.”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럼 진짜였어?’ 이러더라구요.”
그러면서 강 작가는 소설가로서 팁을 하나 건네줬다.
“피디님이 만약 황우석 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면 사람들은 잘 안 볼 거예요.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은, 실제로는 저처럼 잘 모르고 있는데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쓰지?’하며 난감해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현 작가가 입을 열었다.
“그냥 피디님의 이야기를 쓰세요.”
“저? 저를요?”
“예. 전 말씀하실 때부터 피디님과 황우석 박사의 이야기가 되겠구나 짐작했어요. 인터넷 보니까 피디님에 대한 악플도 심하던데….”
“맞아요. 악질황빠”
“^^ 그러면서도 계속 황 박사에 대해 쓰려고 할 때에는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전 오히려 그게 궁금한 거죠.”
“근데 제 이야기가 재미있을까요? 제가 뭐 유명한 스타 피디도 아니고 큰 방송국 피디도 아니고 제가 겪은 일이란 게 그저 찾아보고 만나보고 들어본 거밖에 없는데….”
그때 강 작가가 다시 등장해 한 권의 책을 추천했다.
“피디님 혹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읽어보셨나요?”
“아뇨.”
“그럼 제가 빌려드릴게요. 드리진 못해요. 빌려드리는건데, 뭐냐면 요즘에는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가 무너졌어요. 한 과학저널리스트가 그냥 자기 이야기를 쓴 건데 이게 소설인지 뭔지 애매한데도 대박이 났어요. 독자와 함께 비밀을 캐내고 변해가는 재미랄까…. 저는 그거 보면서 이런 게 저널리스트만이 쓸 수 있는 글이구나 하면서 부러웠는데 피디님 이야기도 왠지 미스터리 소설처럼 나갈 것 같아요. 처음엔 황우석 박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읽는 이한테는 자기 일처럼 다가올 수 있죠.”
쿵,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 나 원래 그랬었다. 황우석 대 노성일, 그 격한 진실게임을 보면서 둘 다 나쁜 놈인데 누가 더 나쁜 놈일까 내기하던…, 그랬던 내가 지금 나무위키에서는 제작팀장이란 직위를 악용해서 황우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여러 권의 냄비받침(책)을 찍어낸 언론계 악질황빠 5호가 되어있으니…. (2호는 김어준^^)
두 작가님과의 대화 속에서 불현듯 내가 쓸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박사와 나’. 철저히 내 시선에서 바라본 황 박사 이야기이다. 아마 언론에 나온 내용과는 상당 부분 다를 것이다. 그걸 확신하는 이유는 ‘기계적 중립성’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나는 봤다. 논란 이후 황 박사의 행적을 추적하던 공중파 탐사취재팀의 순수한 의도가 제작 과정에서 자체 심의와 내부검열을 통해 어떤 식으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희석되고 여과되는지.
그런 과정 없이 오로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야기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 순으로 펼쳐지지 않을 것 같다. 요즘 황 박사 이야기와 옛날 황 박사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올 거다. 요즘 황 박사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옛날 황 박사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고, 옛날 황 박사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요즘 황 박사 근황만큼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이 논쟁의 소재로 쓰여지는 걸 원치 않는다. 네가 맞냐 내가 맞냐 논쟁은 지겹기도 하고 부질없는 일이라고도 느껴진다.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우리의 미래이다. 나는 관리를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당뇨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불의의 사고로 신체 한 부분을 다친 뒤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게 그게 인생의 끝은 아닐 거라고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고 응답해 줄 수 있는 그런 미래였으면 좋겠다.
과연 이 줄기세포 기술이 인류의 ‘난치병 치유’라는 과제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거대한 과학사의 여정에 한 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과학은 실존하며,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확증된 사실관계들에 기반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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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즘 황 박사 근황
2023년,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
메마른 모래사막이 마치 망망대해처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곳, 아라비아 사막, 그 사막의 한가운데로 한 대의 SUV 차량이 질주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새벽의 태양이 사막의 열기를 지펴대는 가운데 자동차 안에서는 우리 귀에 익은 우리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양희은 님이 부른 ‘아침이슬’. 72학번인 황 박사는 지금도 매일 아침 연구소로 향하는 출근길 위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6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King of Clones, 복제의 제왕)의 한 장면이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싱가포르 영화제작자 아디티야 타이(Aditya Thayi)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에서 황 박사는 출근길에 ‘아침이슬’을 듣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사막 가운데에서의 생활과 하루하루가,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저의 지나온 삶의 발자취에 참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황우석, 2023년 6월)
황 박사는 운전대를 부여잡고 사막 저 너머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한층 높여갔다. 때마침 <아침이슬>의 노래가사는, 마치 이러한 사막 풍경과 황 박사 삶의 여정을 꿰뚤어보기라도 했다는 듯 이런 소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잠시 후 사막 한가운데 웅장하게 솟아있는 모래 산이 나온다. 모든 국토가 왕실의 소유인 이 나라에서는 이 거대한 산 이름도 왕실 주요 지도자 한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산 밑으로 국가보안시설로 분류되는 연구단지가 나온다. 아랍에미리트 생명공학연구소(UAE Biotech Research Center), 바로 황 박사의 일터이다. 황 박사는 연구소 메인건물의 로비로 취재진을 안내한다.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면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이 나라 주요 지도자 4명의 사진들.
“제일 왼 편부터 셰이크 자이드(국왕), 현 대통령인 셰이크 할리파, 왕세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그리고 우리(연구소)의 보스인 셰이크 만수르.”
잠깐, 만수르, 만수르라고? 그렇다. 내가 알고 우리 집 애들이 아는 그 만수르 맞다. 맨시티 구단주, 아랍에미리트 부총리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가족의 개인재산만 1천조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아랍왕자가 황 박사의 연구를 후원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 것은 황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꾸준히 발표해 온 국제학술논문을 통해서다.
지난 2020년, 황 박사가 연구팀 본진을 완전히 아부다비로 옮기기로 결정한 뒤 출국을 앞둔 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서울대 교수 시절에도 늘 연구비 확보 때문에 못 먹는 술까지 먹어가면서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돈 걱정 없이 저희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의미 있는 성과로서 믿음에 보답해야겠지만,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저는 너무 홀가분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69세, 동년배 학자들은 벌써 명예롭게 은퇴한 뒤 연구현장에서 물러나 평화로운 여생을 고민할 나이에, 그는 여전히 연구진의 최일선에 서서 소똥, 돼지똥 냄새 맡아가며 소의 항문 속 깊숙이 자신의 손을 집어넣어 생식기 위치를 확인하며 시작하는 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아랍으로 떠난 뒤 1년 만에 그와 그의 연구팀은 낙타복제에 성공했다. ‘마브로칸’이라고 왕실낙타경연에서 최초로 만점 우승한 시가 260억 원 대 국보급 낙타였는데, 10년 전 돌연사를 하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이 비운의 낙타를 냉동보관되고 있던 피부세포 한 조각을 갖고 복제해 낸 거다. 그것도 11마리나. 학술적으로는 10년 전 사망한 개체의 피부세포를 통해 유산율이 유난히 높은 낙타 종에서 11마리의 건강한 개체복제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그들의 논문에는 만수르의 이름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하얀(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UAE 부총리 겸 대통령 비서실 장관의 후원으로 지원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 준 지원과 멘토링에 감사드린다.’
논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연구에 소요되는 모든 인력과 기자재뿐 아니라 연구진실성에 대한 분자 유전학적 검증과 생명윤리 검증까지도 모두 대통령실의 일관된 지원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절차는 과학 센터 및 대통령 낙타 관리 윤리위원회에서 승인한 동물 연구 지침(수탁 번호: PC4.1.5)에 따라 수행되었다.’
실제로 논문저자에는 왕실 낙타를 관리하고 있는 호주 출신 수의학자, 그리고 분자 유전체 분석을 위해 영입된 중국 출신 과학자의 이름이 눈에 띈다. 모두 UAE의 바이오 연구를 위해 꾸준히 영입되어 온 외국인 과학자들이다. 황 박사는 지난해(2022년) 완공된 국가 바이오 연구센터를 총괄하며 복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UAE 당국은 그의 안정적인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2021년 ‘골든비자’를 발급했다. 해외 석학들에게 내국인과 똑같은 주거, 생활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UAE 정부가 발급하는 일종의 10년 영주권으로 황 박사는 UAE 거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골든비자’를 발급 받았다.
이 정도 팩트가 확인되었다면, 넷플릭스 다큐는 다음과 같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만수르는 왜, 그리고 어떤 근거로 논란의 과학자를 영입해 지원하고 있을까?
앞으로 UAE는 이 과학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과학자는 지금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처럼 상식적인 질문에 충실했더라면 넷플릭스 다큐는 흥행면이나 별점면에서 지금보다 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은 핵심적인 질문을 건너뛴 채 17년 전 그들의 생명윤리 논란, 옛날이야기로 넘어가버렸다. 물론 모든 영화나 방송은 결국 만드는 사람 마음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내가 만일 촬영현장에서 왕실 사람들한테 ‘황 박사를 어떻게 영입하게 되었냐’고 물어봤다면, 그들은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우린 그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살펴본 뒤 결단을 내렸다고.
어떤 기록을 살펴봤을까?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부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논문과 사법리스크…. 내가 만수르의 부관이라면 그들의 연구실적에 대해 이렇게 보고했을 것이다.
– 미 국립의학도서관 검색엔진으로 찾은 황우석 박사의 SCI급 국제학술논문은 사건 이후인 2007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58편에 달함.
– 서울대에서 파면된 뒤 농기구 창고를 개조해 실험실을 꾸린 이후 1년에 평균 3.4개의 논문을 발표해온 셈.
– 내용면에서는 세계 최초의 이종교배 복제인 코요테 복제 성과부터 10년 전 죽은 개 ‘미씨’ 복제, 개와 돼지, 소의 복제효율 향상, 낙타 복제, 그리고 시베리아 고대 생물 복제 관련 기초연구 등이 주를 이룸.
– 개와 돼지 배아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 기초 연구도 눈에 띔.
다음으로 그에 관한 사법리스크,
– 그에 관한 핵심사안이던 ‘특가법상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 미즈메디 배양책임자가 가짜 줄기세포를 조작하고 DNA 검증결과까지 조작해 황 박사 등 다른 연구자들의 눈을 속였다는 사유로 황우석 팀에 대한 ‘업무방해 유죄’가 확정된 것이 사기 무죄의 가장 큰 사유로 보임.
사실 사기무죄를 비롯한 줄기세포 논문조작의 실체적 진실은 공판만 무려 3년 4개월간 진행된 1심 선고에서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2009년 10월 26일이었다. 417호 대법정.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내 눈앞에서 펼쳐진 진풍경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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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프로그램 연출중, 프로그램명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