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농사교94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가 임박했다는 언론보도가 연일 나오면서 시민들의 집회와 거리 캠페인이 이어지고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농민들이 스스로 돈 모아 칸쿤 홍콩 갔듯이, 민주당이 일본 원정투쟁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의원님, 우리 농민들은 WTO 체제에 항의하기 위해 없는 돈 모아서 멕시코 칸쿤도 가고 홍콩도 가서 항의했습니다. 국민들의 걱정이 이렇게 큰데 민주당에서 일본 원정투쟁이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민들은 민주당이 제대로 싸워주기 바랍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 이원택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농어민위원회가 선봉에서 일본 원정투쟁을 가자고 제안했다.
내 제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틀 뒤 이원택 의원실의 이창무 보좌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영수 위원장님 농해수위 의원단 중심으로 일본 원정투쟁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셔야죠?”
그렇게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일본 원정 투쟁이 시작되었다.
민주당 소속 8명(박범계, 위성곤, 양이원영, 김승남, 윤재갑, 주철현, 이용빈, 유정주)과 무소속 2명(윤미향, 양정숙) 총 10명의 국회의원이 동참했다. 안민석 의원은 출국 전날 갑자기 다쳐 합류하지 못했다. 김, 전복 양식을 하는 어민대표 4명을 포함해 농어민대표 7인이 함께했다.
뜨거운 일본의 날씨
첫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이동하는 버스에서 도시락을 먹고 첫 일정으로 일본 총리대신 관저 앞 기자회견을 했다.
7, 8월의 일본 날씨가 후텁지근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예상을 넘어섰다.
1시간여의 기자회견과 집회를 하는데 땀이 물 흐르듯 났다. 복숭아 농사를 짓다 보니 한여름에 일 하는 게 익숙한데도 그날의 날씨는 겪어보지 못한 더위였다. 몇몇은 더위를 먹었고 나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언론사가 뜨거운 취재를 벌이고 있었고, 우리와 연대하기 위해 오신 노령의 일본 시민들이 있어 내색을 할 수 없었다.
2박 3일간의 일본원정투쟁 내내 더위가 힘들게 했다.
언론의 관심과 극우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일본에서 얼마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2~3곳의 일정에 언론사들이 따라다녔다.
총리관저 앞 기자회견을 하고 오후 일정을 하는데 국내 모 언론사에서 원정투쟁단과 일본 극우가 몸싸움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여 명의 우리 일행은 도무지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라 공보국에 사실관계를 이야기하고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일본 극우 한 명이 혼자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몸싸움으로 기사를 냈고 결국 정정보도를 했지만 한국의 다수 언론사에서 한 명의 극우 이야기를 주요 이슈로 다루었다.
우리 일정에 일본의 극우 유투버가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조롱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우리 일정을 도와준 일본 시민단체들은 우리의 행보가 주목을 받으니 일본 우익들의 테러가 우려된다며 이동 동선을 바꾸기도 하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삭발, 혈서는 못 했지만….
내가 그래도 나름 자타가 공인하는 원정투쟁 전문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활동하던 2003년 멕시코 칸쿤투쟁과 2005년 홍콩투쟁의 기획과 실무를 사실상 총괄했다.
농민단체와는 정당이 생리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강하게 싸우자는 의견을 냈다. 삭발도 하고 혈서라도 쓰고 안되면 삼보일배라도 하자고 했는데 다 묻혔다. 일본에서의 삭발은 우리와 달리 사죄의 의미라 안 되겠고 혈서는 수위가 높고 삼보일배는 마지막날 도보행진으로 대신했다.
아무래도 국회의원단이 중심이니 그에 맞는 위상과 활동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민당과 제헌민주당 등 일본의 정당과의 교류, 시민사회진영과 교류, 원자력규제위원회 항의방문, 일본 국회 앞 농성, 원자력 전문가와의 간담회, 기자회견, 도보행진 등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 나름 빡신 일정을 소화했다.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후쿠시마
사실 일본 후쿠시마는 야마나시와 함께 일본에서 유명한 복숭아 산지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 내에서 후쿠시마산 복숭아의 판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후쿠시마산 복숭아를 구매하는 것을 꺼린다고 했다.
처음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질 때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때 정부와 전문가들은 안전하다며 주민들을 설득했지만 사고 이후 안전하다고 주장한 관료들과 전문가들을 주민들이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어느 원자력발전소 설계자의 후회
일본의 원자력전문가들로 구성된 원자력시민위원회와의 간담회 자리였다. 평생을 원자력발전소 설계 일을 했다는 분의 첫마디는 “죄송합니다”였다.
본인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많은 원자력발전소 설계 일을 해 왔는데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원자력시민위원회를 만들어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의 핵오염수 해양투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국제범죄라 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반핵활동을 해 온 양이원영 의원이 ‘자신이 반핵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핵전문가들이 인적관계 등으로 소신발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일본에서 핵전문가들이 소신 행보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러면 뭐 합니까? 이미 핵폭발은 일어났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분의 눈빛과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일본은 왜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고 할까? 실마리를 찾다.
육지에서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고 할까?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일본 정부가 처리비용이 많이 든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일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번 일본 원정투쟁을 하면서 시민단체와 핵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나마 납득이 가는 이유를 찾았다.
일본이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고 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불가역적인 상황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이 해양투기라는 것이다.
일본이 육지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면 향후 몇 십 년 동안 핵발전소 사고 나라로, 핵오염수 보관국으로 낙인이 찍히지만 전인류가 사용하는 바다에 버림으로써 일본도 주변국도 모두 같은 처지에 놓이게 만듦으로써 더 이상 일본만 핵발전소 사고국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아닌가 한다.
일본과 그 주변국도 같은 처지로 만들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이 노리는 게 아닐까?
이해되지 않는 일본, 더 이해되지 않는 윤석열정부와 지지자들
원정투쟁 중에 화장실을 해결하기 위해 가게에 들를 때가 있었다. 그러면 꼭 젊은 직원들에게 후쿠시마 오염수를 물어본다. 3명 중 2명은 모른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일본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니 정치를 외면하는 일본 사회. 그리고 정치를 외면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니 남일 같지 않아 두렵다.
지난 장날에 집회신고를 내고 영천시장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반대 집회를 했다. 지나가면서 다짜고짜 빨갱이라 욕하며 지나간다. 경북에서 민주당 하면서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윤석열이 어떤 행위를 해도 무작정 옹호하고 더욱 신념의 강자가 되어가는 저들을 마냥 포용하는 것이 과연 역사의 발전에 합당한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국민들은 정치를 외면하는데 보수 자민당의 집권은 안정화되고 있고 극우가 스멀스멀 등장하고 있는 일본이 남일 같아 보이지 않아 씁쓸하다.
일본에서 내내 외쳤던 말
오센수이 호류 한타이(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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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_ 경북 영천시 임고면 효1리 이장을 맡고 있습니다. 1997년에 농대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학교졸업 후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5년간 상근활동가로 일했습니다. 2008년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귀농하여 복숭아, 사과, 살구 등 과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junsaa@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