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59 오후 132호(2023.04)

김상진 영화 제작기 15
‘김상진 혁명’이다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3년 7개월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쳐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1975.김상진>이 완성됐다. 75분 분량의 다큐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이다.

2023년 1월 14일 서울 시사회를 시작으로 전북·전주(2월 24일), 부산(3월 10일) 등 지역을 돌며 시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열사 의거일인 4월 11일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시사회가 진행되어 의미를 더했다. 이후 수원, 울산에서 시사회가 진행되며 대구·경북, 보성고등학교 등에서 시사회를 진행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시사회가 진행될수록 시민단체가 공동주최로 참가하며 관람객이 다양해지고 있어 열사의 뜻이 더 확장, 전파되고 있다. 다양한 시사회 진행과 함께 독립영화제 출품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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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

[제작일기] 김상진 혁명이다. 내 마음으로부터.

어제 조국 교수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고 재판부는 실형 2년을 선고했다. 정겸심 교수에게는 1년 추가징역. 예상했던거보다 더 악질이고 노골적이다. 검찰과 판사들은 조국 가족의 삶을 유린했다. 무법천지다.

김상진 열사가 1975년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에 항거 할복 자결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2023년 현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다. 굴욕과 동시에 신음이다.

그래서다. ‘열사의 의지’가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를 ‘흔들어 깨웠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열사가 할복 순간에 남긴 유언이자 선언이다. 양심선언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의 질풍노도’ 김상진이 ‘2023년 검찰독재’에게 던지는 최후의 통첩이다. 당시에는 상황이 워낙 엄중하여 국민들이 열사의 의거에 즉각 화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화를 시작점으로 무도한 역사 앞에 흔쾌했던 한 젊은 청년, 그가 남긴 꿈과 희망에 다양한 상상과 이야기 옷을 입히려고 한다. 하여 김상진 열사를 매개로 한 어벤져스 팀을 꾸려서 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역겨운 판을 흔들고 싶다. 반민주세력의 종심을 가차 없이 찔러 들어가 궤멸시키는 아무도 상상 못 할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다.

‘김상진 혁명’이다. 내 마음속으로부터.

김상진은 죽지 않았다. 시퍼렇게 두눈 부릅뜨고, 윤석열을 지켜보고 있다.

2023212

[제작일기] 의미심장해_광주전남시사회

요즘 참 실감나는 개념중의 하나가 창작자가 갖는 ‘정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즐거움’이다.

“남들이 만든 영상 백만 번 좋아요, 눈팅하는 것보다 잘났든 못났든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영상스토리가 천 번, 만 번 의미롭다.” 전국 농업·농촌현장에서 스토리텔링 특강마다 강조한 원칙인데 지금 내 삶 결에서 새삼스러워하고 있다.

엊그제, 2월 10일, 광주독립영화관, 다큐 <1975.김상진> 시사회를 무탈하게 마치고 관람객들과 뒷풀이까지 즐겼다. 객이 아닌 영화 총감독으로 식전행사, 상영 그리고 뒷풀이까지…. 새롭다. 긴장, 설레임, 초조, 아쉬움, 어떤 매듭, 희망, 안도 등등 이런 감정들의 ‘총합’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내 삶의 곁으로 저벅저벅 들어와 어깨동무한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또 다른 아이디어들….

“도대체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온건가요?”

작년 광주일고 현장 인터뷰 촬영 때 던진 질문을 복기하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시사회 내내 감독의 시선에서 관객들의 호흡과 내 마음은 뭔가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상영중 깜깜한 객석, 각자각자 실루엣으로 비춰지는 관객들, 그 면면을 전후좌우 오르내리면서 마주했다. 지루하지 않아 보인다. 다행이다. 그렇게 오롯이 창작자의 시선으로 내 삶을 즐겼다.

식전행사, 먼 길을 내려와 무대를 빛내준 연주팀(아모로소)에게 감사드린다. 뒷풀이 비용과 제작비 후원해주신 선후배들께 고마운 마음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끝으로 이 글을 보시는 벗들께 정중히 요청드린다. 아래 ‘안병권TV’ 구독, 좋아요, 눌러주시라! 그 힘을 바탕으로 열사의 뜻을 온 세상에 펼쳐서 다시 민주주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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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5

[제작일기] 기억투쟁_전주시사회

“감독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제 시사회에 가기를 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리가 썰렁할까봐 가슴 졸였는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훈훈했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기억투쟁에 나서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주노(중문78) 선배께서 보내준 격려 메시지입니다.

고기 잡는 어부에게 최고는 ‘滿船(만선)’

영화 만든 감독에게 최고는 ‘滿席(만석)’

예전에 책을 썼을 때 인류는 2개의 문명으로 갈렸다. ‘내 책을 읽은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 다큐영화를 만들고 나니 인류는 또다시 2개의 문명으로 쪼개진다. ‘<1975.김상진>을 본 문명’과 ‘아직 보지 않은 문명.’

어제 전주시사회. 식전공연을 비나리로 풀어주신 풍물패와 자리 가득 채워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당분간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여러분들 말씀대로 ‘기억투쟁’, 동시에 김상진 정신 ‘확산투쟁’을 진행한다. 그리하여 열사의 마지막 유언처럼 위대한 민주주의 승리가 도래하는 날. 다시 민주주의. 뜨거운 갈채. 김상진 열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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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13

[제작일기] 기억투쟁_부산시사회

즐겁고 유쾌한 식전 바이올린 공연을 필두로 영화가 시작되고 이 상황 저 상황 체크하고 나서 객석에 앉았습니다. 감독으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드릴 때마다 번번히 마음을 졸입니다.

영화가 한참 상영 중인데 뒷줄에 계신 여성관객 몇 분이 “야~ 재밌다. 정말 괜찮네” 하시는 겁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놓았습니다.^^

맛난 떡을 비롯 실무 준비 챙겨준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공동주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감동후불제(모금함)를 만들어 제작 후원해주신 참석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탄력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3월 25일

[제작일기] 상진이 형은 태극기

“아들. 수원시사회 시안하나 보내니 작업해주시게”

서울, 광주, 전주, 부산 등 시사회마다 도움을 받고 있다. 작은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아들 덕분에 상진형님과 영화의 의미를 두텁게 가져가는 중이다.

수원시사회 포스터의 콘셉트는 ‘상진이 형은 태극기’다.

내게 태극기는 생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여운을 남기면서 마음에서 ‘울컥거리는 존재’였다. 그만큼 뜨거웠다.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핏빛 눈발에 비춰진 ‘독립 의지’였다. 김상진 열사가 할복하시던 날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동료들에게 불러달라 부탁한 것은 ‘애국가’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에는 희생당한 시민들 관 위에서 ‘뜨거운 위로’였고, 6월항쟁 때는 온 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펄럭이는 갈망’이었다.

1975년 4월 11일, 스물여섯 살 청년·학생으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자기 몸을 칼로 갈라 자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를 요동치게 한 그 ‘역동’은 무엇일까? 다큐 <1975.김상진>은 그 역동성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김상진 열사는 우리가 ‘몸으로 저절로 아는 태극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태극기가 전광훈, 신천지 같은 이단부터 검사·판사같은 법비(法匪), 기레기 언론 등이 버무려진 극우·친일세력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상징처럼 쓰고는 아무렇게 취급한다.

“형님, 태극기를 다시 ‘뜨거운 역사’로 돌려주세요.” 열사에게 빌었다.

4월 11일이면 할복의거 48주기. 다시 민주주의, 다시 태극기.

상진형님, 태극기가 되다.

202341

[제작일기] 최고의 상영회를 준비하며

“어! 의장님 안녕하세요!^^”

무심코 사무실 들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인사할뻔했다.

4월 11일, 다큐 <1975.김상진> 국회시사회 사전답사 및 진행 협의차 여의도 국회에 들렸다. 인재근 의원실에 들어서는데 김근태 선배가 환하게 웃고 계신 게 아닌가? 사진 크기도 실물 크기에다가 ‘씨익~’ 예의 그 온화한 웃음결이 막 걸어 나오면서 악수를 청하는 듯.

강경만 보좌관과 함께 상영장인 2층 대회의실로 내려가 11일 상황을 구체적으로 짚어보면서 준비사항들을 의논했다. 전자게시판엔 <1975.김상진> 웹자보가 게시되고 있었다. 회의실 입구와 무대 부착 현수막, 당일 식전 공연과 행사에 필요한 작업들을 공유했다.

인재근 의원은 4월 11일, 김상진 열사의 할복 자결 후 5월 22일 서울대 추모집회 및 시위를 기획·주도한 고 김근태 의장의 부인이다. 인재근 의원은 그날 피치 못 할 선약이 있어 영상으로 축사를 해주기로 했다.

400여석이 넘는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상영관 시설도 일품이고, 국회가 갖는 상징성의 한복판이다. 그 공간에서 다시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다큐 <1975.김상진>을 보여드리게 돼서 마음이 뜨겁다. 꼼꼼하고 찰지게 행사 지원 해주시는 인재근 의원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1975년 4월 11일, 48주기 바로 그날, 상진형님 이야기를 국회에서 펼칠 수 있다니…. 즐겁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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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