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한 고위층 자녀의 학교폭력이 정국을 휩쓸었다.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 싶었더니, 갑자기 조국흑서의 저자였던 변호사가 재판장에 나타나지 않아 항소를 취하시켜 패소해놓고 의뢰인에게 알리지도 않은 사건이 밝혀져 새로운 학교폭력 정국이 시작되었다. 두 사건 모두 처음 발단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전혀 관계 없는 사건처럼 보였으나, 사건 진행 과정에서 교육청과의 연관성이 드러나 교육청 전체가 비상대응을 하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위층 자녀 사건의 경우,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국회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 부모는 공황장애 진단을 이유로 불출석 의견을 전달했고, 국회는 그 기간이 도과한 후에 다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결정했다. 다음번 청문회에는 아내와 아들까지 모두 증인으로 채택하는 폭거(?)를 거행했다. 교육부는 급하게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이를 청문회 후로 미루겠다고 물러섰다. 피해 학생이 그간 겪어왔고, 앞으로도 시달릴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는 요원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가해 학생 일가족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시련과 고통에 직면하며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는 현 상황이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변호사의 업무태만 사건의 경우, 민사소송을 맡은 변호사가 세 번이나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자동으로 패소하게 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민사소송법 교과서에 사례로 실릴법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행정기관인 교육청의 경우,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승소에 따른 소요 비용을 산정하여 기계적으로 청구하게 되었다. 그 사건의 당사자가 누구고, 어떠한 연유로 발생한 사건인지는 행정기관에 전달되지도 않았고, 않아야만 한다. 황당한 이유로 인해 억울함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사정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덕분에, 교육청은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절차에 따라 소송비 청구를 포기하는 심의위원회를 열어 소송비용을 회수하지 않기로 정했다.
두 사건 모두 학교폭력은 소재일 뿐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고위층의 법꾸라지 행태와 이번 정권의 검사 일변도 인사문제가 중점이었고, 두 번째 사건의 경우 변호사의 업무태만이라는 학교폭력과 전혀 상관 없는 이유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소재가 학교폭력이었기에 모든 관심과 집중은 학교로 쏠리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의 학교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학교폭력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의외로 이유는 간단하다. 관련 법 자체에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 제2조 1호에서는 학교폭력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1.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 (후략)
이 법이 가지는 특수한 점은, 학교 ‘내외’라는 단어에서 발생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마주하는 시간은 학교 내의 일부 시간으로 한정된다. 그럼에도 학폭법에서 ‘책임’은 학교 내외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 대해 지도록 정하고 있다. 과거 70-80년대 모두가 함께 못살던 개발독재시절 개별 가정방문까지 다니며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챙겼던 문화(실재했든 안했든 관계없이)가 법정신에 남아있는 것이다. 최근의 교권추락 논의와 결부시켜 본다면, 권한없는 교사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시정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일련의 학폭 관련 논의의 중심에서 이러한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가해자에 대한 엄벌만이 논의될 뿐이다. 이는 학폭법 어느 곳에서도에서 규정한 목적인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와 교육, 분쟁조정 그 목표로 언급되지 않는다. ‘처벌’에 대한 논의는 ‘범죄’를 다루는 민법과 형법의 문제일 뿐이다. 학교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 때문에 엄벌 논의는 비교육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과 여당, 교육부의 협의 과정에서 엄벌주의 일변도의 논의가 오갔음은 널리 알려졌다. 가해자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고, 불이익을 가중시키는 것은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촉발시킨 법꾸라지 행태에 대해서는 그 어떤 대책도 언급되지 않는다. 학폭 사안을 가처분 등의 법기술로 지연시킬 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 혹은 학교와 폭력을 구분해서 학교의 역할과 폭력을 다루는 경찰-검찰-사법의 역할을 분리하는 논의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과 비교육의 구분이 전혀 되어있지 못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에는 교육학계의 태만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정책이 빈 부분은 학계에서 논의를 통해 충분히 성숙시켜내야 한다. 여러 의견이 오가는 논의의 장은 학계의 전유물이다. 이 논의의 과정에서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지점을 포착하여 제도화하는 것이 정책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학계에는 그러한 논의가 거의 없다. 정책가가 직접 학술연구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철학의 부재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교육과 비교육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이대로 방치하지 말아야한다.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대한 재인식 또는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과거처럼 집에서 못해주던 모든 아이들의 교육과 훈육을 전담하는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지금 시대에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문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 무엇이 교육의 영역이고 무엇이 교육의 영역이 아닌지를 구분하여 학교의 역할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학교폭력을 비롯한 각종 학교 연관 사건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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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