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전 세계 난치병 환자들의 염원이 담긴 ‘줄기세포’가 사라졌다.
‘도둑 맞은 건가, 처음부터 없던 걸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하며,
8년간의 법정공방 속에 확인된 사실관계들에 근거한다.
[주요 등장 인물]
– 강한우 : 노벨의학상 수상이 유력한 국민 영웅에서 논문조작 사기꾼으로 추락한 의문의 과학자.
– 나(노진구) : 줄기세포의 줄자도 모르지만 진실이 궁금한 지역방송 피디.
– 10살 소년 : 척추손상 난치병 환자.
자동차가 수도권 순환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들어설 때부터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열 살 소년의 아버지 김 목사가 사는 곳. 그가 내게 남긴 문자메시지를 다시 곱씹어봤다.
‘그런 게 한국 언론의 한계 아닐까요?’
이 말은 그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왜곡되었다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잘 못 짚었다는 뜻일까? 모르겠다. 그래서 무조건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느새 눈앞에 그의 교회가 보였다. 시흥시 정왕동 J교회. 웅장한 대형교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코딱지만한 소형교회도 아니고, 적절한 높이의 십자가 첨탑이 있고 마당이 있는, 지역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중간 규모 교회라는 인상이 들었다.
찰칵찰칵.
나도 모르게 문 앞에서 교회 사진부터 찍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그가 있는 곳 주변을 휴대폰 사진기록으로 남겨두는 내 오랜 습관이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찍고 있을 때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뒤를 돌아봤더니 장바구니를 든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몹시 지친 표정이었고 내가 누군지 경계하는 눈빛으로 재차 물었다.
“언론사에서 왔나요?”
“예, FM 99.9 경기방송에 다니는 프로듀서….”
“가세요. 방송 인터뷰 안 합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삐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커덩, 문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나는 거절당했음을 실감했다.
“저는 사실 인터뷰 요청을 하러 온건 아니고요….”
거기까지 말하다 그만 입을 닫았다. 그녀의 지친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년의 어머니 같았다. 얼마나 언론에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그런 당사자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취지가 어떻고 저떻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 같았다. 문전박대. 맞아. 나 거절당했어. 이제 어쩌지…. 그렇다고 그 먼 길을 이렇게 빈털터리 상태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마냥 문 앞에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난감했다. 그렇게 한 10여 분쯤 지났을까, 천금같은 구세주가 나타났다. ‘부웅’하는 차 소리와 함께 김 목사가 나타난 거다.
“자 조심조심 내리세요.”
목사가 직접 노란색 어린이집 봉고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봉고차에서는 귀여운 어린이들이 내리고 있었고, 목사는 마치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아이들 하나하나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봉고차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늘새롬지역아동센터.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뭔가 교회에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김 목사는 입으로만 봉사를 말하는 그런 목사가 아님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 아동센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슬쩍 그에게 다가섰다.
“저…. 김 목사님 되시죠?”
“누구… 시죠?”
목사 역시 조금 전 중년 여성처럼 경계 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저는 조금 전 문자 드렸던 경기방송의….”
방송국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휙 등을 돌려 걸어가는 김 목사, 다급해진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날 그 자리에 같이 계셨던 길병원 이OO 교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널 걷게해 주겠다’고 사이비 교주처럼 큰소리친 게 아니라 학자로서 연구 목표를 설명한 거라고. 그런데 왜 목사님을 인터뷰한 기사는 그렇게 나간 건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김 목사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나는 재차 말했다.
“저에게 ‘그런 게 한국 언론의 한계 아닐까요’라고 문자 주셨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방송 인터뷰 아니고 그냥 찾아왔습니다. 녹음장비 없습니다. 그저 진실이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 말에 김 목사는 천천히 뒤로 돌아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어디시라고요?”
그렇게 어렵게 성사된 김 목사와의 대화, 10여 분에 불과했지만 강렬했다. 그는 그를 찾아온 수많은 한국 기자들의 문제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된다는 뜻의 줄임말). 인터뷰를 하기 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인터뷰를 하는 목적은 중간의 빈 한 칸을 채우기 위함이지 진실을 찾기 위함이 아니더라고.
“(기자들은 저에게) 10가지를 물어요. 그 10가지 중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있지 않겠어요?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 뽑아요. 그러면 (그게) 내 이야기예요? 아니면 (기자들이) 짜집은 이야기예요? (기자들) 자기들의 이야기란 말이예요.”
“그렇다면 목사님은 강한우 박사가 사기꾼이나 과장된 언사를 하지 않았다고 보시나요?”
“예. 강한우 박사가 장사꾼이 아니예요. (그분을) 만나봐야 알아요. 저도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사람 많이 만나잖습니까? 그분은 제가 만나본 어떤 분보다 인격자입니다. 그분이 한 얘기가 ‘목사님 제가 빨리해서 올 해안에 (임상실험) 한번 해봅시다’ 이런 얘기가 장사꾼의 얘기가 아니라, 나를 생각해서,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럴 수 있잖아요. 관점이 ‘그렇게 하겠다’가 아니라 ‘한번 해보자, 내가 노력해 보겠다’였어요. 부모에 대한 위로라고요. 그것을 그대로 (기사로) 쳐버리면 강한우 박사는 죽일 놈이 되는 거죠. (저는) 그런 게 싫은거죠. 언론의 그런 게….”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상상이 떠올랐다. 김 목사와 인터뷰를 한 기자의 모습과 표정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목사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강한우 교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기자 : 왜요?
목사 : 저도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사람 많이 만나잖습니까, 그분은 제가 만나본 어떤 분보다 인격자입니다.
기자 : (시큰둥하게) 예를 들면?
목사 : 우리 아이가 그분께 다가가서 ‘교수님 저 좀 일으켜주세요’ 하니까 딴 사람 같으면 ‘그건 지금 힘들다’라고 할 거 아니예요? 그분은 우리 아이 손을 꼭 잡고 ‘너 일으켜 세울 때까지 내가 열심히 연구할 테니 너도 용기 잃지 마’라고 하셨어요.
기자 : (눈 빛을 빛내며) 일으켜 세운다고 말했다고요? 아이한테?
목사 : (답답하다는 듯) 우리 아이와 부모인 나를 그렇게 위로하셨다구요.
기자 : (묘한 웃음을 지으며) 어쨌든 일으켜 세운다는 말을 한 거네요, 강한우 교수님이 열 살 소년한테….
그렇게 해서 이런 기사가 나온 것 아닐까?
“강 교수, 아들 반드시 걷게 해 주겠다고 약속”
[단독인터뷰] ‘2번 줄기세포’ 주인공의 아버지 김 목사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이들 보육센터로 향하던 김 목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아이한테 줄기세포는 삶의 희망이었어요. 서울대 병원을 갔다오는 길이었어요. 나는 이 아이가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 별로 생각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뒷좌석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라면 할 수 있어’ 이런 노래였어요. 그리고 이런 노래도…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이런 노래들, 우리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에 그 노래들을 불렀던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노래하는 걸 들으면서 운전석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죠. 정말 운전을 못 할 만큼 많이…. 많이 울었죠. 혼자서. 애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그냥 그렇게 울면서 왔죠.”
“그런 아이가 그날 <피디추적>에서 자기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방송을 보고 나서, 그날 그 아이의 표정과 저에게 했던 말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뭐라고 하던가요?”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 그럼 나 이제 못 걷는 거야?’”
목사는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아이가…. 아, 그건 진짜로…. 아…. 그걸 막 보고 난 다음인데요. ‘아빠, 나 그러면 못 걷는 거야?’ 그랬죠. 그러자 그걸 보면서 제가 아이한테 했던 말이 ‘현아,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이 현이를 고쳐줄 거라고 아빠는 믿어’라고 했죠. 그때 그 아이가 절망하는 표정은…. 참 그렇네요. 아주 많이 절망하는 표정이었지요.”
그렇게 간절했던 줄기세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니 뒤바뀌었나,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나, 중요한 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할 이 천금같은 시기에 이미 언론은 이 사건을 강한우의 1인 사기극으로 단정 짓고 그에 걸맞는 알리바이만을 맞춰가고 있었다. 언론의 잘잘못을 떠나 이건 실제 당사자인 난치병 환우들과 그 가족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면 줄기세포의 실체를 파헤쳐 들어갔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고민 끝에 내가 취재한 이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기로 했다. 주말 언론비평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줄기세포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의 문제점으로 이 사례를 비평했다.
“폭로가 터지기 직전까지 강한우 연구팀은 난치병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해 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연구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 국내외 10개가 넘는 연구기관에 줄기세포와 체세포를 넘겨주며 공동 연구진을 꾸렸습니다. 특히 척수신경세포 분화에 있어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로렌스 스투더 박사를 찾아가 거액의 연구비까지 지원하며 소년의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모두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임상전문의들은 말합니다. 임상시험에 돌입하게 되면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줄기세포에 대한 DNA 검사를 병원 측에서 하게 되어있다고. 즉, 임상시험에 돌입한다는 것 자체가 줄기세포에 대한 진위여부 검증을 다시 하게 되어있기에 강 박사 측은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는 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줄기세포의 실체가 들통나는 임상시험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임상전문의들의 추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대단한 정보를 취재한 것도 아니다. 강한우 연구팀이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을 추진해 왔다는 사실은 잠깐의 뉴스 검색만으로도 수십 개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임상시험을 추진해 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강박사의 소년에 대한 진심은 물론이고,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배경 지식 없이 그저 ‘강한우 사기꾼’이라는 편견에 휩싸인 기자의 답정너 기사가 얼마나 이 사건을 혼란 속으로 빠뜨리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힘겹게 힘겹게 피디 리포팅을 끝내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사무실 책상 위에 쪽지 한 장이 붙어있었다.
‘피디님, 피디님 방송 중에 방송국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꼭 만나고 싶으니 전화부탁드린다고. 서울 남부 경찰서의 류기철 경위라고 하십니다. 전화번호는….’
서울 남부 경찰서의 경위? 현직 경찰이 내 방송을 듣고 전화를 했다고? 순간 오싹했다. 그는 뭔가 이 사건에 대한 추가제보를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어떤 압력일까, 점입가경…. 점점 더 헤어날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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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에서 2023 년 상반기 개국예정인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전문 프로그램 준비중,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