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4.3
4.19
4.11
4.16
뭐지? 왜 이리 핏빛 숫자가 많아?
수유리에 살고 있다 보니 4.19 국립묘지를 무시로 들르곤 한다. 이즈음이면 4.19 묘지는 참배객 맞을 준비를 하면서 한참 단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념일 당일에는 붉은 철쭉과 연산홍 등이 만개를 하고 있다. 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붉은 꽃들을 바라보며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날의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열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라는 가사의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필자가 센터장으로 부임한 삼양동청소년아지트를 건축하면서 조경사업을 통해서 왕벚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산수유나무 등 여러 종의 꽃나무들과 풀들을 심어놓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관리부서가 건물은 청소년과, 꽃나무들이 있는 옥외쉼터는 공원녹지과, 주차장은 주차관리과 소속으로 나뉘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과의 관리를 받고 있는 우리 직원들은 ‘나무에 어떻게 물을 줄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그러던 중 봄이 됐다. 새로 식재를 한 이후 겨우내 물 주기가 필요 없었지만 이제는 녀석들이 물을 머금고 새잎과 새싹을 틔워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 동네 주변의 나무들이 다 봄꽃을 피우고 싱싱한 잎눈을 돋우는 중에도 우리 단지의 나무들은 죽은 듯 내색이 없다. 나는 애초에 조경공사를 맡은 업체의 공사 과정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터라 이러다간 나무들 다 죽겠다 싶어서 부지런히 물을 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나무에 물 주기는 공원녹지과 담당이라고 업무가 늘어날 것에 대한 우려 아닌 우려를 한다.
‘생명에 담당이 어 있나!’라는 생각으로 다른 직원들이 신경 안 쓰도록 먼저 출근하자마자 필자가 직접 물을 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올봄에는 비가 안 와서 여러 지역에서 산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판국에, 몇 주를 부지런히 물을 주자 마침내 뒤늦은 단물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전부는 아니지만 몇 그루 나무들에서 새싹잎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래 우리 센터에서 내가 진짜 필요한 일이 바로 이거야.’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출근하는 매일 아침 녀석들과 대화를 한다. 기특하다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위로와 명예회복을 약속했던 4.3 제주항쟁 75주기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추념식 불참 이유는 최근 일본과의 관계나 미국 방문 계획 등과 맞물려 일정이 맞지 않아서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에 앞서 4월 1일에 있었던 프로야구 개막식에는 시구를 하기 위해서 대구를 방문한 터이다.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 그의 말마따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의무와 예를 다해야 할 것’인데 말이다.
도대체 “생명에 순서가 어디 있나!” 순서와 절차를 따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를 겪어야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들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순서와 절차를 따지면서 책임자 처벌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뿐이다. 며칠 후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주기가 된다. 아직도 그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순서와 절차를 착실하게 따르던 우리의 어린 친구들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사망자 수 299명, 미수습 5명.
그나저나 이번 4.19 기념식에는 그가 수유리에 올까? 기념식에 참석해서 소위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까? 과거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완수할 적임자로 그를 검찰총장에 지명을 하며 ‘검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까지 추켜세웠던 적이 있었기에 일단 지켜는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최근의 그의 행보를 보면 더 이상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럼 지금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아는가? 잿빛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짓이겨진 4월의 하얀 목련꽃은 검붉은 핏빛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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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