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51 오전 132호(2023.04)

좋아서 하는일
노동의 종말과 ‘69시간 근무제’   

황종섭 김한규 의원실 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작년 말 네이버 본사 견학을 갈 기회가 있었다. 건물에는 네이버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하는 사무실이 존재했다. 직원들 사무실은 물론이고 네이버가 지원하는 스타트업도 입주해 있었으며,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과 꽃집, 스타벅스도 있었다. 그중에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커피를 배달하는 로봇이었다. 앱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주문하면 로봇이 알아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커피를 배달해 준다. 일상의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로봇 비율

국제로봇연맹(IFR)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은 직원 1만 명 당 산업용 로봇 1천대로 세계 평균 141대에 비하면 무려 7배에 달한다. 다른 제조업 국가인 일본이나 독일의 2.5배, 중국이나 스웨덴의 3배가 넘는다. 전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추진해온 미래형 공장, ‘스마트 팩토리’는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에 여러 미사여구가 따라붙지만 결국 핵심은 ‘사람 없는 공장’이다. 박스 포장부터 물류 이동까지 다양한 육체노동을 로봇이 대체한다.

지난 3월에는 더 충격적인 발표들이 이어졌다. 챗GPT가 상용화를 선언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인 GPT-4가 공개됐다. 개발사인 오픈AI는 이번에 공개한 모델은 “문자뿐 아니라 이미지도 인식하며, 다양한 시험에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이 ‘눈’을 달았고, 심지어 유머 감각도 갖췄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PPT나 엑셀을 스스로 생성하는 AI인 ‘코파일럿(Copilot)’을 공개했다. MS의 오피스 담당 부사장은 “AI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루한 작업을 대신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며 코파일럿의 의미를 소개했다. 역시 듣기 좋은 말로 표현된, 발표 자료를 만들고 기초적인 데이터를 관리하는 수많은 사무직에 대한 해고 예고나 다름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90년대 예견한 ‘노동의 종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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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역행하는 정책을 하나 발표했다. 소위 ‘주 69시간 근무제’로 알려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다. 블루 칼라, 화이트 칼라 할 것 없이 로봇과 AI로 일자리가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업무 시간을 늘리면 실직자는 더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고육지책으로 있는 일자리도 나눠야 하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나온 정말 ‘대책 없는 대책’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청년들은 육아는 고사하고 아이를 낳을 여력도, 결혼할 여력도 없다. 말로만 불평하는 게 아니다.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 10년 전에 비해 40%가 줄었다. 2022년 혼인건수도 19만2천 건으로 10년 전보다 41% 감소했다. 지금 이대로 가도 한국인은 멸종이다. 그런데 노동시간을 더 늘리고 더 쥐어짜겠다니, 윤석열 정부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부의 역할은 따로 있다. AI와 로봇이 전면에 등장하는 자동화 시대에 우리 기업과 산업, 그리고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되고 있는 ‘노동의 종말’은 먼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지 않도록 노동시간과 근로제도를 변화시키고, 이를 뒷받침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고민하고 집행해야 한다. 세부적인 방안은 따로 더 고민하더라도 불안해 하는 국민들에게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을 이끄는 리더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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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_ 김한규 의원실 보좌관. 박주민 국회의원의 선임비서관,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비서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정책보좌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메시지 비서를 역임했다. 정치와 정무, 정책을 조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