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46 오전 132호(2023.04)

기고
시진핑은 왜 아무 말도 없는 것일까?   

손태원 농화학 92

지난 3월 20일부터 22일 사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혹시나 시진핑이 러시아가 전쟁을 그만둘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독재자들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 시진핑과 푸틴에 대해서 별 믿음도 없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닐까? 시진핑 스스로 기고한 글에서 우의, 협력, 평화의 여정이라고 표현했고, 미국에서 이야기를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좀 슬픈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통 크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진핑 주석에게 그럴 만한 명분을 주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냉정함과 구체적으로는 미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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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에서부터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재 중-러 우호관계가 이해가 된다. 국제관계는 참으로 돌고 도는 것 같다. 한때 사이가 좋았다가 금방 나빠지기도 하고 그 반대 현상도 자주 일어난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꼭 그렇다. 사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뿌리 깊은 불신의 관계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마주하고 있는 국경 길이만 4,200km가 넘는다. 그 국경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갈등을 해왔다. 현재는 관계가 좋아 보이나 둘 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당분간 사이가 좋은 것이지 미래의 관계는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뿌리 깊은 불신의 관계가 있다. 20세기 초부터 중-러 관계를 잠시 돌아보면 둘 사이가 매우 재미있다. 구 소련의 공산당 지도부는 모택동이 사회주의 혁명을 한다고 했을 때 최초에는 지원을 했지만 후에는 믿지도 않고 많이 무시했었다. 처음부터 관계가 별로였다는 뜻이다. 소련은 모택동이 혁명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장개석과 국공내전을 하고 있는 동안에 도와 주기는커녕 오히려 지금의 대만정부인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모택동이 승리한 후에서야 비로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심지어 장개석이 타이완으로 쫓겨갈 때 당시 중국에 있던 러시아 대사관 직원 중 일부는 장개석을 따라 피난을 갔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이 소련을 좋게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한 후 소위 신중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소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스탈린은 모택동을 노골적으로 무시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택동은 그런 스탈린이 두려워 제대로 말도 못하고 1950년 중소우호동맹을 맺고 소련 ‘일변도’의 외교를 펼치게 된다. 적어도 겉으로 둘사이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그러다 스탈린이 죽고 난 후 후루시초프가 집권을 하자 이번에는 모택동이 후루시초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모택동은 스탈린은 몰라도 후루시초프는 자기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한 듯하다. 1957년 모택동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 후루시초프가 앞으로 소련은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하자 모택동이 중국은 10년안에 영국을 초월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몇 년이라는 정확한 햇수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러한 자존심 싸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960년대는 좋았던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지게 된다. 소련은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 대한 간섭을 하겠다고 나섰고 중국은 이런 소련을 비판했다. 결정적으로 1969년 우수리강의 작은섬 진보도(珍寶島)에서 발생한 충돌은 둘사이를 완전히 갈라 놓았다. 몸싸움으로 시작한 감정대립이 심각한 총격전으로 확대되었고 핵공격설이 나도는 등 상황이 매우 심각 했었다. 이것이 유명한 중소국경분쟁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고, 중국은 소련이 전면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후 중국은 러시아를 사실상의 주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냉전시기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기회로 미국은 소위 핑퐁외교라는 것을 통해 마침내 국교를 수립하게 된다. 이제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공동의 적이 된 것이다. 이후 고르바초프 시기에 잠시 화해 분위기로 돌아섰으나 소련은 곧 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두 나라의 관계가 급격히 좋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푸틴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미-러 관계가 전례 없이 좋은 관계로 발전했다고 이야기를 해왔고, 실제 이번 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의 첫머리에는 양국간 동반자 관계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언급하고 있다. 2004년 푸틴이 중국을 방문하고 난 후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계기로 서로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그후 2011년 중-러 정상회담후 급격히 관계 개선이 이루어 진다.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순전히 미국 때문이다. 러시아는 처음 서방과 잘 지내보고 싶었다. 푸틴의 전임 옐친은 러시아의 NATO 가입 의사를 밝혔으나 거부당했다. 푸틴도 집권 후 처음에는 서방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고 역시 NATO에 가입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NATO가 끊임없이 동진해 오니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푸틴은 러시아의 꿈과 같은 강한 러시아에 불을 지폈고, 본격적인 서방세력과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그 와중에 크림반도 병합 등 지속적인 대결구도가 이어졌고, 러시아와 한 몸이라고 여겼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우크라이나마저 서방에 기울게 되면서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푸틴이 그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전쟁을 하면서도 국내 지지도가 높은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지 러시아 사람들이 다 미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년 초에 러시아 대선이 있는데 푸틴이 대선 승리로 가는 과정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실제 러시아인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관심사다. 다만 전쟁이라는 방식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더 급하다. 러시아는 중국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다. 2011년은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 오바마에게 태평양을 나누어 쓰자고 호기롭게 제안한 해이기도 하다. 그 이후 미국은 시종일관 중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써오고 있고, 트럼프를 거쳐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떼어 내버리겠다고 하고 있으니 중국입장에서는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량과 에너지, 국가 안보이다.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삭제하기로 작정한 이상 중국이 그 많은 식량과 에너지를 기댈 곳은 현실적으로 러시아라고 봐야 한다. 중국은 매우 큰 나라이다. 만일 미국과 서방세력이 계속해서 중국을 봉쇄하고 숨통을 조인다면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를 SWIFT체계에서 추방했다. 국제 결제를 할 수 없으니, 러시아는 무역을 할 수가 없다. 만일 이러한 사태가 중국에서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전세계 교역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14억이 넘는 인구가 고립이 되는 것이다. 반미를 표방하는 두 나라가 내심 싫지만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와는 다르다. 다같이 반미를 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반미와 중국의 반미는 질이 다르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다같이 미워하고 고립시키려 한다. 그래서 러시아도 노골적으로 미국을 미워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미워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끔 경고성 말을 하지만 그렇게 말해 놓고나서 끝에는 항상 친하게 지내 자면서 마무리한다. 이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차이이다.

전세계가 시진핑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가 뭘까? 좀 아이러니 하다. 푸틴은 시진핑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라서? 그것이 아니라는 이유는 지금까지 설명했다. 그들은 결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다. 단지 공통의 적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힘을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진핑에게 세계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국제사회는 중국이 과거에 비해 위상이 매우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보다 파워가 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젤렌스키는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시진핑이 전쟁을 끝내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스페인 총리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진핑을 만나는 자리에서 전쟁해법을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러시아와 협상하지 않는 것일까? 왜 다른 나라는 바이든에게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전쟁은 미국이 수년에 걸쳐 펼친 러시아 압박 정책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휴전은 함정이라면서 반대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완전한 철군이 없는 휴전은 반대라고 한다. 그러면 한국전에서는 왜 철군하지 않고 휴전을 했을까? 전쟁의 원인은 딴 곳에서 왔는데 해결은 중국보고 하라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물론 나도 시진핑 주석이 전쟁을 끝내는데 일조한다면 3연임으로 나빠진 국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보다 이제는 중국’이라는 여론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적 힘은 착한 중국이라 해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냉정함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니 시진핑이 러시아를 방문해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진퇴양난에 빠져 있기도 하다. 러시아 편을 들어주자니 코로나 이후 안 그래도 나빠진 국제 여론이 더 나빠질 것이고, 미국과 서방 편을 들어주자니 러시아가 망할 것 같다. 중국은 절대로 러시아가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 망하거나 친 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러시아가 망하거나 친 서방 정권이 들어서서 중국과 관계가 악화된다면 중국은 미국의 견제로부터 견디기 힘들어질 것이다. 당장 식량과 에너지 문제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중동 국가들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Petro Dollar를 견제하고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고 있으니 중국의 현명함은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반도 긴장 상태를 걱정해야 한다. 시진핑은 처음 김정은을 믿지 않았고 지금도 시진핑의 스타일상 김정은을 믿을 것 같지는 않다.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중국과의 연결선을 끊어 나갈 때는 관계가 매우 안 좋았다. 중국은 또한 누구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다. 한국의 핵배치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과거 UN에서 대북제제를 할 때 동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핵실험을 하든 미사일을 쏘든 속은 부글부글 끓을지 몰라도 북한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를 보는 눈으로 북한을 보는 것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도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기댈 곳이 중국밖에 없으면서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미사일도 쏘고 나아가 핵실험도 재개할 태세다. 문제는 이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인데, 우리가 떠안아야 할 짐이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긴장 고조는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윤석렬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이 있으니 시진핑 보고 북한에 말 좀 잘 해 달라고 한다. 또 시진핑이다. 본인이 말해 놓고 본인이 담대하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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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원 _ (화학 92) 중국에서 20년간 제조업 주재원으로 근무. 현재는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석사과정 재학중 (thsxodnjs1@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