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사회복무요원, 환경재료과학 08)
#24. 구의원 사태
고요한 내 근무지엔 보통 정적만이 친구다. 어느 날 아침, 정적을 깨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동 서무주임님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외쳤다.
“야 너 뭘 어디서 어떤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대뜸 무슨 말인가 의아했다.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달라고 했다. 요지는 이러했다.
사회복무요원을 담당하는 구청 안전관리과에서 경고가 내려왔단다. 그 동 자치회관 공익은 왜 일도 안하고 빈둥대냐고. 업무배치하고 놀지 못하게 하라고.
더 아리송해졌다. 왜 그런지를 물었다. 대답이 퍽 신기했다. 구의원이 안전관리과장을 세워놓고 사회복무요원 배정 및 관리 상태가 엉망이라고 질책했단다. 자신이 어떤 사례를 봤는데, 일이 없어서 논다고 했단다. 서울대를 나와 석사까지 마친 인재를 이렇게 놀리면 어쩌냐고 그랬단다. 지금 관악구 사회복무요원 중에 서울대 나온 석사는 나밖에 없어서 당연히 수사망이 쉽게 좁혀졌단다. 징계위원회가 열릴 테니 소명 준비를 하란다.
아닌 낮 중에 날벼락이었다. 나는 맡은 일을 열과 성을 다해 수행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도 맡아서 다 하고 있는 나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다행히 서무주임님도, 우리 애 일 엄청 많이 한다고,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말했단다. 난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했다.
학부시절 알고 지냈던 이들 중 둘이 지금 관악구 의회에서 구의원을 하고 있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A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B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자초지종 설명 없이 대뜸 ‘이게 지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 A형이 그런 의도에서 말한 게 아니다. A형은 너를 생각해서 그랬다. 지금 A형이 회의 중이니 30분 뒤에 전화해서 들어봐라.
황당했다. 그도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대충 알고 있어 보였다. 기다려서 A에게 연락했다. A는 전화를 받자마자 혹시 피해가 있으면 알려달란다. 피해 없도록 구청에 조치를 취하겠단다. 난 이미 잔뜩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 더 피해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A도 분명 사회복무요원 출신이라 무슨 일이 있을지 빤히 짐작 가능했을 터이다.
A는 그냥 나를 도와주려고 그랬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잠시 지나가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공익들 업무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빤하지 않냐며 농담 주고받던 내용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왜곡되어 와전될 수 있나 황당했다. 역시 정치인 앞에서는 농담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아직 사회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내 잘못이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서무주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이러저러했다. 당사자와 이야기 끝냈으니 신경쓰지 마시라. 구청과도 직접 이야기하겠다 전했다. 서무주임님은 네가 뭘 처리하냐고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내가 증빙 서류를 다 만들어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2년 가까이 작성해온 업무일지와 보고서를 들고 구청을 찾아갔다. 담당자는 뭐 하러 왔냐고, 통보를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 구의원이 오해를 했다. 그간의 내 업무 이력을 증빙할 수 있다. 오히려 사회복무요원의 책임 범위를 벗어나는 일들이 많아 이 자리를 거쳐간 담당 공무원들이 문제 생길 거다. 여기서 해결 안되면 서울시, 병무청, 청와대에 서류를 보낼 거다’라고 했다.
담당자는 고민하는 척 하더니,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알겠다고 하고 나를 돌려보냈다. 그 뒤로 한 달 여가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아무런 연락이 없다.
#25. 구청장과 함께하는 마을 대청소
구청장과 함께하는 마을 대청소를 했다. 업무에 방해를 주면 안되기 때문에 07시까지 집합하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막상 가보니 07시 25분에 행사를 시작했다. 구청장 행사이니만큼 마을의 높으신 분들이 다 모였다. 구청장은 박원순 시장을 만나 경전철 조기 착공을 약속 받았다느니, 재개발 승인이 빨리 나도록 도울 거라는 등 자랑을 했다. 자신이 구정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다 여러분들의 요구를 받아서 실현 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내빈 소개와 인사말들이 이어졌다. 결국 모든 인사치레가 끝나니 08시를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본 행사인 청소는 그제야 시작할 수 있었다. 40여명의 인원을 세 조로 나누어 각각 다른 루트로 내려가며 청소하기로 했다. 물론 이미 그 루트들은 사회복무요원들이 일주일 내내 쓸고 줍고 치워서 깨끗한 길이었다. 구청장 행사가 있을 것이라며 일주일 전부터 들들 볶인 탓이었다.
그들은 밤 사이 버려진 담배 꽁초 몇 개를 주우며 사진을 왕창 찍었다. 청소는 15분 만에 끝났다. 15분 청소를 위해 쌀쌀한 새벽녘에 모여 60분 넘게 인사말을 들어야만 했다. 어른의 사정이란 다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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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nature@academicoop.com)
Last modified: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