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 (이공산악회 회장, 계산통계 79)
9월 1일 서민동 회원 50여 명은 평화버스를 대절하여 민통선 지역을 탐방하였다. 파주 임진강 유역의 민통선 지역 내 임진각, 도라산 전망대, 도라산역, 6·15 유기농 사과농장, 해마루촌, 허준 묘소 등을 방문했다. 서민동은 지난해 북핵 위기로 전쟁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평화열차를 타고 통일동산에서 평화통일을 선언했다. 올해는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회담으로 평화의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일 년 만에 분단의 현장을 다시 찾게 되어 더욱 뜻 깊었다. 민통선 큐레이터 전민동 유영호 동지의 안내로 버스 안에서 분단과 민통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분단의 현장을 탐방했다.
1945년 8월 10일 자정 무렵, 미군에 의해 불과 30분간의 작업으로 38선이 그어지고 남북이 분단됐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결과로 군사분계선(韓半島軍事分界線, 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이 그어졌다. 임진강변에 세워진 군사분계선 표식물 제 1호부터 1292호까지 200미터 간격으로 표식판이 세워졌다. 696개는 유엔군 관리책임이고 596개는 북한과 중국의 관리책임이었다고 한다. 군사분계선 양쪽으로 각각 2Km의 비무장 지대를 두고 그 안에서는 적대행위를 감행하지 않기로 했다.
임진각
아침 9시 45분에 평화버스가 합정역을 출발했다. 임진강역에서 자가용으로 도착한 동문들과 합류하여 45인승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임진각에 도착했다. 자유로를 따라 신의주로 이어지는 일번 국도로 이동하면서 분단의 상징인 임진강을 보았다. 안내를 맡은 유영호 동지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영화 『박치기』의 주제곡 ‘임진강’을 부르며 민통선 지역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북한에 다섯 번이나 다녀온 북한 전문가로, 접경지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평화운동가이다.
『박치기』는 남북 분단으로 인한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아픔과 애환을 그린 영화이다. 이승만 정권이 일본으로 징용당한 재일동포들이 ‘북한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귀국을 받아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조총련으로 남게 된 이들의 애환을 그렸다.
버스는 어느새 임진각에 도착하였다. 분단 전 신의주까지 달리던 녹슨 기차가 전시되어 있고, 각종 전적비와 추모비가 눈에 띈다. 지난해 평화열차에서 대부분 본 터라 임진각 위에 올라 한국전쟁 직후 전쟁포로가 돌아왔던 자유의 다리와 임진강을 살펴보았다. 임진각에서 전 세계 도시와의 거리를 표시한 표지판이 보인다. 평양까지는 불과 153km이다.
도라산 전망대
임진각을 구경하고 난 뒤, 헌병에게 신분증을 확인하고 민통선 내에 있는 도라산 전망대로 향했다. 도라산(都羅山, 156m)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개성에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살면서 신라(新羅)의 도읍(都邑)을 그리워했다는 곳이다. 곳곳에 지뢰표시가 있는 도로를 따라 길을 올랐다.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북녘을 보니 남북 화해의 옥동자였던 개성공단이 보인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의 끝판왕이 개성공단 폐쇄이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북한이 곧 몰락하고 흡수 통일된다는 어느 점쟁이의 말을 듣고 개성공단을 폐쇄했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간의 노력이 순식간에 사라진 코앞의 개성 공단을 보니, 불가역적인 평화체제의 수립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껴진다.
개성 공단 뒤로 개성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비무장 지대 내의 민간인 거주 마을인 남측의 대성동과 북측의 기정동이 보인다. 휴전협정 당시 비무장 지대 내의 마을은 그대로 두었다는데,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폭이 160미터인 북한의 인공기와 100미터에 달하는 남한의 태극기가 서로 마주보며 펄럭이는 것이 인상 깊다.
기정동 뒤로 송악산(488m)이 말없이 평화통일을 기다리는 듯 무심하게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치 애를 밴 임산부가 누워있는 모습의 송악산은 고려의 도읍 송도의 진산으로 박연폭포와 만월대, 자하동, 광명사정(廣明寺井) 등 명승지가 있는 곳이다. 수천 년 동안 하나였던 우리민족의 땅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고, 코앞에 펼쳐진 송악산을 가보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하는 처지가 서럽게 느껴진다.
도라산 역
도라산 전망대를 구경하고 일행은 남북출입사무소가 있는 도라산 역으로 향했다. 남방한계선에서 700미터 떨어진 도라산 역은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에 위치해 있다. 경의선 중 남쪽 최북단 역이다. 경의선은 1906년에 개설되었는데, 이곳에서 평양까지는 205km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2000년 6.15 선언 당시 남북이 철도를 연결하기로 합의하고 2003년 6월 14일에 도라산 역이 문을 열었다. 전광판에는 머잖아 이곳을 통해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이어져 유라시아 횡단철도로 대륙으로 연결될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에 의해 다시 끊어진 경의선은 최근 남북합의로 재차 연결하고 철도 현대화를 위한 조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주한미군이 불허하는 바람에 또 무산되었다. 유엔에서도 더 이상 유엔군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는 마당에 미군은 이곳에서 유엔을 사칭하고 남의 나라 땅을 점령하여 남북의 통행을 가로막고 평화를 방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 땅의 철도도 연결 못하는, 외교와 국방을 잃은 식민지와 다름없는 현실이 다시금 서글퍼진다.
JSA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문 앞에서 구경하고 들어가지 못했다. 방문 60일 전에 국정원에 신청한 뒤 신원조회를 거쳐야만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일대는 한국전쟁 전에는 널문(板門)리라고 불리던 마을이었다. 널문리는 선조가 임진왜란 때 백성들은 ‘나 몰라라’ 하고 혼자 도망가기 위해 임진강 근처 민가의 널문(문짝)을 주민의 동의도 없이 강탈하여 부교를 만들어 건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선조와 외세에 의해 두 번이나 농락당한 슬픈 곳이다.
6.15 유기농 사과농장
JSA 입구만 보고 나와서, 일행은 민통선 내의 6.15 사과농장을 방문하였다. 촛불혁명 때 광화문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전환식 농장주는 건설업체에 다니던 평범한 노동자였는데, 6.15 선언 후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 이곳에 사과농장을 지어 ‘6.15 사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는 촛불시민들의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서민동 회원들은 이곳 유기농 사과의 원액 주스와 바비큐요리, 산채요리와 함께 파주 특산 막걸리를 마시며 평화와 통일을 위해 건배하였다. 천연 냉장고인 동굴에서 보관중인 사과까지 한아름 선물 받았다. 김명원 경기도의원의 선창으로 “도둑같이 찾아올 나라의 통일을 위해 산처럼 굳세자, 도라산!”하고 건배를 하며 아픈 분단의 현장에서 잠깐이나마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민통선 마을 해마루촌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등 민통선 내의 마을들 중에서 이날 해마루촌을 탐방하였다. 민통선 안쪽은 미군의 점령지로, 대한민국의 사법과 행정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강력사건이 나도 경찰이 출입할 수 없고, 세금도 국방의 의무도 없는 곳이다. 또 주민들 모두가 대 농장주라 고소득층이라고 한다. 이곳을 방문하니 정말 예쁜 전원주택단지가 펼쳐진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비무장지대의 면적은 군사분계선 248km X 4km로 994㎢이어야 하나, 남북 모두 남북한계선을 좁혀서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1954년 미8군 사령부의 일방적인 직권으로 민간인의 농사을 제한하는 귀농선(歸農線)이 그어졌는데, 국군이 이를 담당하면서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군사분계선 남방 15km 범위에서 민간인통제구역인 민통선을 설정하였다. 이후 접경지역 지원법 등에 의해 군사분계선에서 남방 25km까지를 군사보호구역, 민통선에서 25km를 접경지역으로 정하고 각종 규제를 두었다.
허준 묘소 참배와 영화 『박치기』
해마루촌을 탐방하고 허준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버스로 10분 정도 이동하여 들길을 걸었다. 들판을 따라 가다 보니 나지막한 산이 보인다. 칡꽃, 며느리배꼽꽃, 좀씀바귀꽃, 옥잠화, 범꽃의 꼬리, 루드베키아, 사위질빵꽃, 둥근잎유홍초, 메리골드, 플록스, 채송화, 우슬, 매꽃, 범부채, 달맞이꽃, 백일홍, 벌개미취, 삼겹잎국화, 뚝갈 등 수많은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허준묘소에 도달했다. 허준의 묘와 사당이 보인다. 동의보감으로 수많은 민중을 구해낸 허준 선생에게 술잔을 올리고 재배하였다.
다시 버스에 올라 서울로 복귀한 후 서민동 동지들과 함께 영화 『박치기』를 보았다. 영화에서 일본인들은 남북분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토한다.
“분단의 원인을 말하자면, 일본이 침략지배를 했기 때문이지. 일본이 한 거라구.”
조선인 경자와 사귀는 일본인 쿠스케가 박세영 작곡 고종환 작사의 북한 노래 ‘임진강’을 부른다. ‘임진강’은 가사만큼이나 애절하게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
.
김상민_ 부산 출신. 동양미래대학교 로봇자동화공학부 겸임교수. 이공산악회 회장.
Last modified: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