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27 오후 115호(2019.01)

사회 복무 일기
바이 바이, 사회복무!

김현수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 환경재료과학 08)

#26. KTX 비정규직 승무원 복직

사회복지 관련 사회복무요원은 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직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2주간 연수를 받는다. 동 주민센터 배치 인력도 사회복지 관련 인력으로 분류되어 연수를 받는다. 때문에 나도 2017년 4월에 연수를 받았다.

연수는 각종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이해, 전달체계에 대한 이해, 대상자에 대한 이해를 다룬다. 내용적으로 훌륭하다. 더불어 일반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팀 빌딩, 성폭력, 리더십 등의 내용이 군데군데 심어져 있다.

리더십 강사로 오신 분은 매우 밝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각종 동기부여를 해주셨다. 밝은 모습으로 두 시간 내내 열강을 이어갔다. 인생에 굴곡이 하나도 없었을 것만 같이 명랑했다. 강연 중 활동으로 팀 내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사님은 시범을 보이시며 자기는 KTX 승무원 출신이라고 밝혔다. 불현듯, 2008년에 몇 번인가 연대했던 그 비정규직 투쟁현장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쉬는 시간에 다가가 여쭈었다.

별 말을 건네진 않았다. 그저 “혹시……”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가 바로 ‘맞다’고 대답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나처럼 다가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도 그 해고승무원이라고. 현장에서 투쟁하는 동지들도 있지만, 자기처럼 리더십 강연 등으로 일해서 다양한 곳에서 자금을 모아 투쟁에 보태는 동지들도 있다고. 대법원 판결 뒤에 반환해야 할 돈을 조금이라도 마련하고, 투쟁자금을 마련하는 차원이라고.

나는 “몇 번 연대했던 경험이 있다. 응원한다”고 말했고, 그는 고맙다고 밝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이미 대법원이 그들에게 복직 불가 딱지와 과도한 배상비용을 매겨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4600여일을 견뎌내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건승을 빈다.

#27. 자리 정리

출근을 단 3일 남겨둔 김 공익에게 또 제설 작업이 닥쳐왔다. 12월에 오는 눈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이 쌓였다. 일손이 모자라 내 근무지 주변을 혼자 쓸게 되었다.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투덜대고 싶었으나, 아무도 없었기에 묵묵히 쓸어냈다. 다행히 오후가 되어 더 이상 눈이 오지 않았고, 온도도 올라가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제설 기념 동사무소 단체 점심 회식을 가졌다. 갑자기 동장님이 나보고 일어나보라고 하셨다. 무슨 일인가 하며 일어났다. 동장님은 2년간 맡은 일을 꾸준히 해내며 우수사회복무요원에 선정되기도 한 김 공익이 이제 복무를 마칠 때가 되었다며, 모두 한 마디씩 덕담을 남기라고 말씀을 건네셨다. 공식 환송회가 곧 따로 있을 테니 조만간 공지하겠다고 하셨다. 갑자기 만들어진 상황에 얼떨떨했다.

다행히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나 보다. 대부분이 한마디씩 이야기를 건네며 이제 곧 찾아올 나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동장님이 나에게 마무리로 한마디 하라고 하셨다. 구의원 사태 때문에 TO가 한자리 줄어든 게 내 책임인 것 같아 동사무소에는 죄송함만 남기고 떠난다고 말했다. 동장님이 염려 말라며, 살다 보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생긴다며 괜찮다고 위로해 주셨다.

다시 근무지로 돌아와 보니 2년간 만들어둔 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다시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비워내야 한다. 하나 둘 정리를 시작했다. 대충 보기엔 금방 끝낼 것 같은 양이었는데 도무지 끝나질 않았다. 2년간 참 많이 눌러 앉았구나, 싶었다.

얼추 짐 정리를 끝내고 이 자리를 맡을 다음 사람을 위해 시작했던 매뉴얼 제작을 마무리했다. 모든 공무원은 법령에 정해진 대로 행동하지만,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일일이 지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 근무지처럼 여백으로 남겨진 영역도 존재했다. 큰일은 못하더라도, 내가 막을 수 있는 작은 구멍 하나라도 막아보자는 심정으로 진행했던 일이다. 다행히 복무 만료 전에 끝낼 수 있었다.

정리하는 건 비워내는 거라고 했는데 무언가를 남기게 되었다. 아쉬움은 분명 아닌데. 무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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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지난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nature@academicoop.com)

Last modified: 20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