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 (삼양동주민연대 사무국장, 농경제 79)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언제부터인가 섣달 그믐과 새해 첫날의 구별이 의미가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나에겐 인간이 임의로 구분지은 24시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서 단 하루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야의 종소리도 안 듣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또다시 『선구자』로부터 고정필진 원고청탁이 들어왔다. 책장에 보관되어 있는 『선구자』 지난 호들을 들춰보았다. 20년 전에 처음으로 원고청탁을 받고 “미아 1-1 재개발 지구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실은 이후에 『선구자』 44호(1998년 9~10월호)부터 87호(2011년 5~6월호)까지 13년간 「오정삼의 똥침놓기」라는 코너를 연재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라는 글에서 시작해 ‘참, 평화롭다’라는 글로 마감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지금, 나는 여전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안전 불감증과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인 사건인 세월호 참사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5대양 6대주를 항해하고 있는 개조 선박들, 그리고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의 화재, 지난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여전히 ‘나만 아니면 돼’ 식의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이다.
나는 앞서 말한 20년 전에 살던 미아 1-1 재개발 지구로 다시 들어왔다. 나의 일터가 삼양동이 된 것이다. 삼양동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생현장 체험의 일환으로 옥탑방에서 한여름나기를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삼양주민연대는 박원순 시장이 한 달 간 거주했던 옥탑방 인근에 있다. 삼양동은 또 지난해 말 KBS에서 방송을 시작한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는 동네로 소개되기도 했다. 내가 살고 일하는 현장이 바로 요즘 관심과 이슈가 되는 지역인 것이다.
그런데 우울하게도 그 이슈 거리가 결코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강북구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다. 지방세의 비중이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하위에 속하는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강북구에는 저소득 주거 취약계층과 영세자영업자가 많다. 2016년 현재 서울시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세 합계 비율이 19.2%인데 반해 강북구는 12.0%로, 지방세 비중이 노원구(10% 미만)에 이어 가장 낮은 자치구다. 반면 강남구의 지방세 비중은 40.8%에 달한다. 서초나 강남구가 지방세 비중이 높은 이유는 재산세 비중이 높기 때문이고, 이는 땅값이 높다는 얘기다.
지방세가 부족할 경우 부족분을 세외 수입과 정부로부터 받는 교부세, 광역자치단체로부터 받는 교부금과 보조금 등으로 채워야하기 때문에 세수의 질이 안 좋아진다. 나아가 자치단체의 독립성이 약화되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수립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는다. 강북구는 긴급지원이 필요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자치구인데, 기초생활보장에 투입되는 사회복지 예산 8.8% 가운데 취약계층에 쓰는 예산은 4.6% 정도로 겨우 절반을 웃돌고 있다. 반면 서울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는 서초구는 4.0% 중 3.6%를 투입하여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거의 대부분을 취약계층 복지에 쓰고 있다.
강북구에서는 작년 한해 ‘저소득 독거 중장년의 자립능력 향상을 위한 커뮤니티 통합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올해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저소득 독거 중장년들의 취업 및 창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위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한 중·장년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생 일한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하고자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나의 경우만 해도 제2의 생애 설계를 위해 무려 10년 정도를 전직과 이직에 대한 준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일자리 시장에서 나를 받아준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20여 장의 이력서를 쓰기를 반복한 이후에 비로소 나는 공개 시장을 포기하고 과거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현재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중·장년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3년부터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개설하고, 2015년에는 관련 조례 개정도 마쳤다. 2015년에는 서울50플러스재단을 설립하고 서울시의 50+ 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50+ 세대의 재능과 경험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앙코르 커리어 활동을 통해 세대 간 통합과 사회통합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서울시의 50+정책에 만족할 수 없다. 50+정책의 대부분은 사회적 공헌 일자리와 여가 및 지역봉사활동 등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먹고 사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중산층들을 위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하루하루를 벌어먹어야 하는 중장년들에게 사회적 공헌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결국 정책은 당장 성과가 나기 쉬운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내가 살고 일하고 있는 강북구의 이야기를 써가려고 한다. 바라건대 나의 미미한 노력이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힘들며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저소득 계층이 지역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와 연대, 통합의 사회적 가치를 복원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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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Last modified: 20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