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59 오후 115호(2019.01)

교육의 딜레마
우리 시대의 비극 “SKY 캐슬”

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요즘 JTBC의 대세 드라마 <SKY 캐슬>을 보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는 중입니다. 작년 11월 23일 1.7%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1월 11일 방영된 15회에서 16.4%를 찍었습니다. 종편에서 하는 드라마로는 믿기지 않는 기록입니다. <뉴스룸>이 한창 잘나가던 지난 탄핵 국면 당시 시청률이 8~9%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시청률이라 하겠습니다.

<SKY 캐슬>은 승자독식 사회에서 단 하나의 성공 기준에 맞춰 온 가족이 아이들 입시에 목숨거는 세태를 그려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잣대로 도구화한 부모들이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무한질주’한 욕망의 결과는 파멸입니다. 부모의 욕망 실현 도구인 아이들이 무너지면, 부모도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돈과 명예가 받쳐준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 할 만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정의합니다. <SKY 캐슬>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아마 이럴 것입니다. 이미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입시라는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일종의 자기위안을 얻거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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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리스 비극처럼 이 드라마도 현실의 딜레마를 다룹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한 사회 전체의 운영원리가 승자독식과 무한경쟁, ‘일원화된 줄세우기’일 때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가, 또는 좋은가를 생각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염정아가 연기하는 한서진 같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어떠한 일도 마다않는 극단적인 캐릭터에도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그리스 시민들이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에게 감정을 이입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딜레마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를 만드는 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매몰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집 앞에 세워진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고, 이는 곧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스며듭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공포는 전염이 빠르고 힘이 셉니다. 그러면 ‘특수학교는 세워야 하지만, 우리 동네는 안 된다’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보다 더 경쟁적인 입시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충분히 경쟁적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자사고가 중학교 때부터 경쟁을 가속화한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자사고에 다닌다면, 이미 합격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자사고는 이제 사수해야 할 대상입니다. 아이들이 더 행복한 교육을 받기 원하지만, 우리 아이가 다니는 자사고는 유지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입시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혁신학교도 똑같습니다. 획일적인 암기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학교를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들이 참여해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라면 의견이 갈립니다. 혁신학교가 우리 아이의 시험 성적을 올려줄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그래서 딜레마입니다.

확실히 현실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선긋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했던 일도 구체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쉽고 간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게으른 일이 아닐까 늘 고민해봐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만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우리 시대의 비극을 보며 또 고민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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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 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