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권(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2022년 10월 23일
[제작일기] 다큐<1975.김상진>_더빙실에서 울다
“자~ 스무 살이구요”
“이번엔 복학생입니다”
“장난기가 쪼끔 더 들어간….”
“20대 중반 여학생 목소리”
“짜증반, 귀찮음 반”
“50대 중반에서 서너 살 더 쓰세요”^^
다큐<1975.김상진> 영화가 제작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25일 기술시사회 일정에 맞춘 ‘마무리’겸 ‘새로움’ 창조과정이다.
21일, 마포 상암동 감스튜디오에서 성우더빙, 22일엔 수원 상상캠퍼스와 분당 크로마스튜디오에서 카메라감독, 장영철감독, 열사역을 맡은 배우와 함께 재연 촬영.
요술이고 마술이다.
목소리 하나로 어떻게 인간사 수백·수천 가지 경우의 수를 ‘감정조절’과 동시에 ‘표출’ 가능한지 새삼스럽다. 같이해준 성우들에게 감사드린다.
열사가 운명하고, 훗날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신 애달픈 편지를 더빙했다. 녹음실 오디오감독과 장영철 연출감독 뒤편에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서서히 감정선이 가라앉는다. 어느 순간 울컥! 눈매움이 뜨겁다. 상진을 낳고 기른 엄마가 바로 앞에서 소리 죽여 목소리로 울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튿날 수원과 분당 재연촬영
영화씬에 열사가 종종 등장한다. 1970년대와 지금까지 47년. 시·공간과 열사가 목숨 바쳐 이루고자 했던 ‘지향’을 관객들 마음속에 젖어들게 만드는 장치다. 관객의 마음들을 만나고 싶은 상진의 영혼이 드러내는 몸짓이다.
“이쁘게 뽑아 드릴게요.”
카메라 감독의 자신감이 현장을 즐겁게 만든다.
장영철 감독의 재기 발랄한 연출, 이선경 작가는 대본 작업으로 실상황 원격지원.
무사히 9부 능선을 넘어간다.
주말과 월요일 전체 옷을 입힌 최종 결과물을 보면서 호흡한번 가다듬으면 된다.
그리고 25일(화) 기술시사회.
같이 본 사람들 의견을 취합, 한번 더 보완·손질하면 제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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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제작일기] 걱정반 기대반
정읍에서 SRT를 타는 나.
제작 총감독으로 심호흡 크게 두 번.
광진구 블라인드 아트 소극장에서 내부시사회 일정.
제작진과 김상진기념사업회, 서울대민주동문회 임원진 10명 참석했다.
코로나, 박원순시장 별세…. 우여곡절 끝에 선보이는 다큐멘터리<1975.김상진>
“욕은 먹지 말아야 하는데….”
속마음이 타들어간다.
1시간 반 시청. 다행히 첫인상은 망한 것 같지 않다.^^ 몇 가지 모아지는 공통의견들을 취합, 반영하면 마음에 찰듯하다.
유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간 바늘침, 김상진열사의 온 삶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로 표현했다는 은근함.
소주 한 잔에 녹여 동료들과 마셔버렸다.
자정 가까이, 내려오는 기차 안.
미처 닿지 못해 아차 싶었던 요소들을 수십 번 되뇌이고.
“아~ 이렇게 그려내면 되겠구나!”
내심 끄덕끄덕.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해 간다는 뿌듯함을 덮고 모처럼 곤한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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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4일
[제작일기] 형님, 이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2019년 봄부터 햇수로 4년. 김상진열사 영화를 만들자 의견을 주고받을 때부터 3년 반. 역사의 ‘서고’에 차곡차곡 물리적 구분 막 속에 계시는 열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금’으로 모셔오고 싶었다. ‘지금’과 ‘그때’, ‘열사’와 ‘남겨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칠기도 하고 뜨거우며, 슬픔과 좌절, 희망의 연속이었던 지난 47년의 시·공간을 세상에 펼치는 프로젝트의 첫 발자국.
다시, 김상진.
1박 2일 서울, 김포 영화출장.
김포 장영철 PD 편집실. 내부 시사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마무리 편집작업.
어제는 서울에서 김상진열사 보성고 동기이자 축산과 친구인 이호선 선배가 마련해 준 김상진기념사업회 운영진과 제작진 격려 회식.
다음 달이나 1월 중, 공식시사회(서울, 지역별)를 시작으로 독립영화제 출품, IPTV, 독립영화관 상영 등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모아 멋지게 놀아볼 계획이다.
다큐를 만들면서 행복했다.
대학입학 이후 40여 년 열사를 품고 살고, 나름 형님의 ‘삶 결’을 헤아린다 자부해 왔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형님이 우리 역사에 끼친 파급’에 대한 이해가 심하게 편협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내가 4.11 할복 의거를 피상적으로 이해했었구나.’
유신·군부독재의 영구집권을 위한 비상계엄과 긴급조치 등 서슬 시퍼런 폭압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 시점, 그 공간, 쌓여가는 한…. 죽은 민주주의…. 1970년대 중반.
그 꼭짓점에서 목숨을 던져 항거한 김상진.
유신의 종심을 향해 찔러 들어간 ‘바늘침’, 김상진의 스물여섯 생애.
생각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하게 ‘실제적인 현실’로 파고를 일으킨 역사였다. 경향 각지, 여러 사람들에게서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해 듣고 기록했다. 그리고 영화에 담았다.
연출감독과 제작자 겸 총감독으로 스토리라인을 점검, 재배치하고, 수정, 보완하면서 오후를 보냈다. 점심때 둘이 호젓하게 오랜만에 낮술도 한 잔.
이야기가 다 꿰매졌다. 성우나레이션과 더빙 보완작업을 거치면 확정이다.
언뜻 어딘가에 계시는 형님을 모시러 막 달려가는 데 가까이에 열사가 먼저 나오셔서 우릴 맞이하는 느낌이다.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형님, 이제 우리 곁으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와 함께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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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제작일기] 다큐<1975.김상진> 시사회를 준비하며
1289, 372, 80, 26, 4.11, 1975
이 숫자들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힌트하나 드리죠.
각자 별개로 존재하다 한 인간에게 녹아들어 어떤 암흑시대를 걷어내는 비밀번호(기반기억)로 작동합니다.
1289 : 스물여섯 살 청년학생 김상진이 죽음으로 항거하며 남긴 ‘양심선언문’의 글자 수
372 : 그중 의거당일 현장 ‘육성에 담긴’ 글자 수
80 : 김상진이 할복하면서 육성으로 남긴 시간 80초
1975년 4월 11일
‘뜨거운 역사’가 된 김상진, 26살
서울농대 축산과 4년, 복학생.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상진은 여기까지 낭독하고 원문에 없는 말을 이어갑니다
“나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완전한 이성을 되찾아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갖다가 명실상부하게….”
이 말을 마치자마자 칼로 할복자결했다.
이게 끝이었다.
열사가 차마 다 읽지 못하고 남긴 마지막 세문장.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내가 알기론 ‘죽음 마지막 순간과 그 후까지’를 육성으로 남기고 산화한 분은 없다. 그만큼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간 바늘침’ 김상진열사의 삶은 예사롭지 않다.
짧지만 영원한 삶.
지난 3년여. 상진이 형의 삶 결과 남겨진 사람, 남겨진 시대에 던진 메시지를 따라 부지런을 떨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다. 시사회 장소를 확정하고 최종 마무리작업을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챙기려니 아쉬움이 번갈아 몰아친다.
“아! 조금만 더 세밀하게 살필걸….”
하지만 이제 여기까지가 내 몫이다. 훗날 또 다른 누군가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다시 김상진을 이야기하려 할 때 밑그림, 밑재료로 쓸 수 있는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해 두었으니 위안으로 삼는다.
2023년 1월 14일(토) 오후 3시
서울대관악캠퍼스 201동 101호(대형시청각실)
포스터와 슬로건, 현수막 등 작업 후 공식공지할 생각이다.
초청할 분들에게도 별도로 안내해 드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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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4일
[제작일기] 이리 오시게!
죽산아이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죽산산 언덕선은 일품이다. 앞마당과 하늘, 그 경계에서 내 상념은 햇살과 어깨동무하고 어울려 활개치곤 한다.
며칠째 폭설, 오늘 아침 모처럼 볕.
밤뽕나무 곁을 따라 흐르는 눈 덮인 언덕.
맑고, 따뜻하고, 싱그럽다.
한참 쳐다보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가 손짓한다.
“이리 오시게!”
아! 상진이 형.
지난 3년여.
제작자이자 총감독으로 영화 만들면서 채운 에피소드들이 형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오둘둘 장례식 ‘조사’가 생각나는 아침.
조사
동지여!
그토록 어렵게 그토록 숨막히게 죽음으로 그대는 사랑을 완성했다. 척박한 이 터전을 붉디붉은 한 점 피로써 그대는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드디어는 그대 동학년 곰나루에서 비롯된 민중사의 현 단계를 혼신의 힘으로 뛰어넘었다.
그렇다 동지여!
너의 죽음은 형편없는 슬픔이 아니라 우리에게 화려한 소식이 되었다. 우리네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워하며 굶주렸던 우리들에게 죽음과 맞바꾼, 생애로써 말하는 그 피투성이의 말, 부릅뜬 사랑은 이웃들의 깨알 같은 꿈을 쓰다듬는 넉넉한 웃음이 되었다. 슬퍼하기에는, 형제로서 동지로서 눈물을 흘리고만 앉았기에는, 그대는 삶과 싸움의 너무도 크나큰 용기를 일깨워주고 떠났기에 우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구나.
네 당당한 말은 끝끝내 폭풍을 헤치고 선구자, 저 벌판을 앞서가는 자의 피의 노랫소리가 되어 저렇게 저렇게 먼저 간 사람들, 피 끓는 사람들의 곁으로 우리를 불러 데려가게 하는구나. 지그시 눈을 감고 천지를 내닫는 말발굽 소리에 귀를 대이면, 엎어지는 밥그릇, 짓밟히는 논밭, 문전옥토 다 빼앗기고 바람 찬 만주벌판 헤매어야 했던, 말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가고, 아이깨나 낳을 년 갈보질 해야 했던, 총부리 칼날아래 무수히 쓰러져갔던 애비에미의 피맺힌 통곡이 아! 가슴을 찢는다.
이조와 일제침탈 36년을, 한 많은 분단시대를 하늘도 없이 억울하게만 눌려 살아왔던 민중의, 그 고난과 폭정의 참담한 세월을 이기고 일어섰던 그날들의 함성이, 사무친 옛 기억들이 아스라이 물밀어오지 않는가!
학우여!
저 5월 향그러운 미풍에 실려 옛날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느냐! 우리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이제 떨리는 팔아름으로 이 볼품없는 터전을, 밟히고 잊혀진 풀을 부등켜 안자! 무너지고 쓰러지고 다시 강풍에 몸을 눕힌 민중의 억눌린 꿈을, 새붉은 4월의 피를, 전태일과 김상진의 죽음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우리! 그것은 정년 갚고 갚지 않으면 안될 우리의 부채였다. 멍에였다. 죽을 수조차, 죽어서 모멸할 길조차 없는 질곡이었다.
떨리는 눈길로 돌아보라! 매판독점 자본과 독재권력 집단의 자기논리를 위하여 조국의 신식민지화도 서슴지 않는 이 처참한 백색독재의 역사현실이 배태하는 모순들을, 학원과 교회, 언론은 타살되고 답십리, 중량천, 면목동 등 판자촌 주민들은 이제 생존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정처없이 기댈 언덕없이 벌판 저켠 갈 곳 없는 어드메로 추방되고 있다.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다가오고 말못하는 가슴마다 응어리진 한과 분노가 쌓여가는데, 눈물 없이는 눈 떠 바라볼 수 없는 이 누리에, 언제더냐 날샐녘은, 배추포기 춤추고 노래 부를 그날은 언제더냐, 김상진 동지가 외쳤듯이….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산물임을, 두고두고 내려오는 역사의 가르침을 우리는 손에 손을 움켜쥐고 온몸으로 터득해야 하는 것. 풀은 결코 강풍에 꺾이지 않으며,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언젠가는 모두 함께 일어나 덩실 춤을 추면서 맞이하리니.
아! 김상진동지여! 믿으라!
다시금 터져나올 그 눈물겨운 함성을, 그 위대한 민중의 승리를 믿으라!
1975년 5월 22일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추진위원회
.고사
2023년 1월 1일
1970년대의 ‘바늘침’으로 2023년을 연다.
[제작일기] 새해 첫날
새해 첫날 아침, 대문과 쪽대문에 <1975.김상진> 포스터를 붙였다.
그리고 한참 쳐다보면서 호흡을 깊게.
맘먹고 활짝 대문을 연다.
1975년 스물여섯, 피 끓는 청년학생이 할복자결로 박정희유신독재에 내린 준엄한 경고가 2023년, 굥정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50년 축적된 민주주의 ‘역동’이 다시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다.
내 생애 상진형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동 시대인으로 형님의 마지막 육성을 들으며 가볍지 않게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았다. 더하여 개인적으로 형님의 ‘삶 결’을 영화로 만드는 기회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운명의 울림’은 없으리라.
다큐<1975.김상진> 영화를 마무리하고 1월 14일, 서울 시사회를 앞둔 지금.
상진형님의 바람대로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고, 열사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아! 그리되도록 내 생애 다시 한번 더 민주주의 실현에 집중해야지. 검찰독재를 끌어내려 우리 모두의 삶 결에 만족스런 웃음 가득하도록.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전의 결의로 진격하자. (중략)
우리 대한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중략)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4년
김상진
2023년 1월 12일
[제작일기] ‘열사 마음껏’
잠이 오질 않는다. ‘잠결’보다 ‘생각’이 더 많이 서성거리는 요즘. 내일모레 김상진열사 장편다큐멘터리 공식 시사회 때문이다.
영화 만들면서 꼭꼭 움켜쥐고 한 번도 놓지 않은 원칙이 있다. 아니 원칙이라기보다 총감독으로서의 ‘지향’이다.
‘열사 마음껏’
새로운 역사는 시대의 불의에 온몸, 온삶으로 저항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간 사람들이 만든다.
김상진은 갑오년의 전봉준, 김개남이다.
김상진은 일제강점기의 안중근이고 윤봉길이며, 이육사이면서 동시에 윤동주이다.
김상진은 4.19이며
김상진은 1970년대의 전태일이다.
김상진은 광주항쟁의 윤상원이고
김상진은 1980년대의 박종철, 이한열이며
김상진은 촛불시민이며, 동시에 지금의 우리다.
70년대 막내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열사의 지향’을 만나고 누리면서 품은 아쉬움. 활개치고 뛰어놀아야 할 김상진의 ‘꿈’이 역사라는 책장, 어느 한 켠, 어떤 칸막이 속에 존재한다는 느낌. 잊어먹고살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보는….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되지 못했다.
김상진열사는 음악이고, 노래이며 책이고 동시에 영화이며 오페라여야 한다. 슬픔이면서 동시에 희망이고, 과거이면서 지금이고 마땅히 도래할 미래여야 한다.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 곁에 계셔야 한다.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
지금은 영상과 스토리로 사물을 헤아리는시대.
그 첫발, 장편다큐멘터리 <1975.김상진>
첫선을 보이는 날
2023년 1월 14일(토)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 201동 101호
맘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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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