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전 세계 난치병 환자들의 염원이 담긴 ‘줄기세포’가 사라졌다.
도둑맞은 건가, 처음부터 없던 걸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하며,
8년간의 법정공방 속에 확인된 사실관계들에 근거한다.
[주요 등장인물]
– 강한우 : 노벨의학상 수상이 유력한 국민 영웅에서 한순간에 논문조작 사기꾼으로 추락한 뒤 사라진 의문의 과학자.
– 나(노진구) : 줄기세포의 줄자도 모르지만 진실이 궁금한 지역방송 피디.
– 석이형 : 아무것도 모르던 노진구에게 과학적 팩트를 알려준 동물병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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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3일, 부천 오정동의 허름한 삼겹살집,
나는 새로 들어간 방송국 보도국장님 일행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기 계신 노 피디님이 말이예요, 그 왜 강한우 교수 사건 있잖아요. 줄기세포 사건…. (오 그래) 그거를 오랫동안 취재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어, 그래?)”
이런이런…. 나는 말 많은 후배피디 P를 째려봤다.
녀석, 삼겹살이나 구울 일이지 왜 또 그 이야기를….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기자들 앞에서….
“어허…. 그 얘길 왜 또….”
“선배, 책도 내셨었잖아요. 언론재단 지원받아서, 제목이 뭐였더라….”
이미 낫술에 거나하게 취한 P는 거침이 없었다.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
“책까지 낼 정도면 취재를 꽤 많이 했겠는데….”
마주 보고 앉아있던 보도국장님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점심이니까 가볍게 목만 축이자며 조용히 소맥을 말고 있던 그 풍채 좋은 분 말이다.
“아예, 그냥 뭐…. 줄기세포 공판이 워낙 치열하게 전개돼서 좀 자주 갔었습니다.”
“몇 번이나?”
“1심만 44번 있었는데 한 서른 번?”
“어유…. 대단하네, 노피디”
그러더니 곧바로 질문이 훅 들어온다.
“결론부터 물어 볼게.”
“(멈칫)”
“강한우 교수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기꾼 맞나?”
역시 데스크답게 질문이 간결했다. 핵심만 간단히…. 이럴 땐 단문으로 답해야 한다.
“사기를 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당했다고? 누구한테?”
“물론 총괄책임자로서 논문조작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건 맞겠지만, 줄기세포 11개를 가짜로 바꿔치기 한 데이터 조작은 공동연구자였던 히즈메디 연구원이 조작한 게 밝혀졌거든요. 업무방해 유죄가 확정판결됐습니다.”
“그래?”
국장은 놀란 표정으로 잔을 들이켰다. 이럴 경우 예외 없이 후속질문이 이어진다. 바로 이런 거….
“그럼 강 교수는 지금 뭐 하시나?”
꿀꺽, 나는 숨을 고르며 즉답을 피했다. 기자들 앞이다. 조그마한 단서라도 흐르는 순간 소문이 꼬리를 물며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대한 애매모호하게 말해야 한다. 그의 근황에 대해선 말이다.
“저도 이제 잘은 모르지만, 지금도 연구에 몰입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어디 계신지는 모르고?”
“…… 예.”
나는 그의 눈을 피했다. 감지했는지, 국장은 말을 돌렸다.
“유명한 소리 감별 전문가가 있었어. 그분이 미제사건도 많이 해결했는데, 소리 감별로…. 그런데 어느 날 한 방에 가는 거야. 일반인들한테 사기 쳤다는 제보가 방송에 폭로됐지. 아 참 그때도 NBC였구나…. 백가지 진실된 업적을 쌓아놓고도 딱 하나가 걸려가지고 그 양반이 해온 백가지가 전부 사기친 것처럼 매도된 거지. (헐) 지금도 못 일어나더라구.”
한마디로 ‘안타깝다’는 동조 표시였다. 휴…. 오늘도 무사히…. 그렇게 나는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상추 두 장에 싸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맞은편에 앉은 보도팀장께선 뭔가를 열심히 휴대폰으로 찾아보는 게 아닌가. 혹시 이런 거 찾나?
– 노진구 강한우
지금 자신 앞에서 사기꾼 강한우를 옹호하고 있는 이상한 자의 정체가 무언지 찾아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랬다면 이렇게 나올텐데….
– 언론계 강빠 5호
강빠 감별사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이다. (비판자들이 보기에) 사기꾼 강한우를 옹호하는 얼빠진 언론인으로 분류되는 ‘언론계 빠 1호’는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 총수였고, ‘강빠 2호’는 미국인 도슨 교수의 특허도용 의혹을 제기했던 KBS 피디였으며 5호가 바로 나였다. 감별사들은 내가 쓴 책에 대해서도 평을 달았다.
– 냄비받침
책이 두꺼워서 사발면 뚜껑으로 올려놓기엔 그렇고 냄비 받침으로 적당하다는…. 귀엽다. 그리고 이해한다. 어디 그들만의 오해일까. 사이비 교주와 광신도, 음모론자…. 한겨레부터 조선까지 모든 언론이 좌우를 막론하고 ‘강한우 사기꾼’론을 10년 넘게 합창해 왔는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오히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휩쓸리지 않고 상식적 판단을 유지해 온 분들이 대단해 보인다. 존경스럽다. 누가 그랬지. 진실의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고. 허나 가짜뉴스와 편견으로 가득 찬 망망대해에 갇혀있는 진실의 배 선원들은 언제나 외롭고 불안하고 고달픈 법….
어느새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
2005년 12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 나는 줄기세포의 줄자도 모르던 초짜였다. 그러면서도 줄기세포의 진실이 알고픈 수많은 일반인 중 하나였다. 그런 나에게 진실의 배에 탄 선원들은 한 조각 한 조각 그들이 찾아낸 진실의 파편들을 알려주며 함께 이 복잡한 퍼즐을 맞춰가자고 했다. 원래는 조사위원회와 정부와 검찰과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않기에 힘들지만 국민이 나서보자며 아등바등하던, 그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순수한 열정 하나로 진실의 퍼즐을 맞춰나가던 그때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2005년 12월 22일의 일이다.
그날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목요일 아침이었다.
이날도 강한우 교수에 대한 비판기사로 하루가 시작됐다.
“강 교수, 아들 반드시 걷게 해 주겠다고 약속”
강 교수가 10살 소년에게 ‘너를 반드시 걷게 해 준다’는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하고 다녔다는 이 뉴스…. 네이버와 다음의 가장 많이 본 뉴스 1위에 올라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김 목사의 아들은 2012년 8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척수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강 교수와 김 목사 가족은 같은 해 10월 처음 만났는데, 김 군이 강 교수에게 “선생님이 저를 일으켜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강 교수는 “내가 반드시 너를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기자는 강 교수가 소년의 임상수술 날짜까지 약속했다가 차일피일 미뤘다고 썼다.
5월이면 된다, 10월이면 된다, 내년 10월에 하자. 임상실험 약속은 계속 미뤄졌다.
그리고 강 교수의 행동을 비난하는 전문의들의 인터뷰도 소개했다.
서울대 의대 K 교수는 “사람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하대 의대 C교수는 “인간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당연히 댓글 창은 난리가 났다.
– 내가 반드시 너를 걷게 해 주겠다고? 미친 거 아님???????
– 지금 하느님 놀이하냐?
– 뭘 믿고 저런 소릴 하고 다닌 거지?
– 기가 막혀. 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 술 더 뜨시는 분이네.
– 지금까지 강한우가 과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앞으로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할 듯.
– 제정신이라면 절대로 사람에게 바로 임상실험 안 시킵니다. 그냥 죽는 겁니다. 몸에 암 생겨서요.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이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석이형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진정한 강빠 석이형은 이 사안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그날 점심 시간을 틈타 쪼르르 달려갔다.
낮 12시 40분 영풍 동물병원,
석이형은 그날도 노트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어, 왔어?”
“형님, 근데 강 교수 말이예요. 좀 심하지 않았나, 열 살 소년한테….”
“?”
“오늘 아침 기사….”
“아…. 그거? 난 또 뭐라고….”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표정이었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왜지?
“야, 넌 그렇게 당하고도 한국 언론을 곧이곧대로 믿냐?”
“뭔 말…. 이건 인터뷰 기산데, 팩트도 확실하고”
“인터뷰건 기자회견이건 기자들이 노무현 씹는 거 봐봐,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 어떻게든 지들이 정해놓은 결론대로 쓰잖아. 그렇게 당하고도…. 아 하긴 너도 그 업계에 있으니까….”
“그럼 형님 말씀은 오늘 아침 기사도 그렇게 왜곡됐다는 말인가요?”
“어서 오세요.”
딸랑 종소리와 함께 강아지를 안은 손님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석이형은 끙끙거리는 강아지를 안은채 다급해하는 30대 여성을 향해 급히 다가섰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댓글 찾아봐. 네가 찾는 게 있을 거야.”
댓글? 나도 댓글은 주르륵 다 보는 편인데….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 아침 그 기사를 다시 클릭해 찾았고, 석이형 말대로 댓글창을 열어봤다. 5,436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대부분 강한우를 사이비 교주라고 욕하는 댓글들…. 그런데 찾는 방식이 바꿔봤다. ‘최근순’이 아니라 ‘추천순’으로. 가장 공감을 많이 얻은 댓글 순서대로 읽어봤더니 욕설이 조금, 아니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추천수 1위와 2위 댓글은 강한우를 까는 글이었지만 그래도 실시간 댓글보다는 점잖았다. 그리고 3위쯤 이었나, 석이형 말대로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댓글이 보였다. 댓글의 제목은 아마 이랬던 것 같다.
‘언론과의 피 말리는 전쟁…. 내가 강빠가 된 이유이다.’
자신을 강빠라고 먼저 밝히고 시작한 이 댓글…. 길지만 술술술 한 번에 읽혔다.
<언론과의 피말리는 전쟁….내가 강빠가 된 이유이다>
목에 호스를 꼽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가, 그저 천진난만하게 “아저씨가 저 일으켜 세울 수 있어요?”라고 물어봅니다. 뜸을 들이다 대답합니다. “그래 아저씨가 일으켜 세울게. 그때까지 꼬마도 지금 이대로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라고…. 너무도 가슴 아프고, 이제 열 살인 꼬마 앞에서 희망을 주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대답한 겁니다.
이런 강 박사의 강연 동영상을 보신 분들은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말을 했는지 아실 겁니다. 함부로 실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그저 순수하게, 부모의 심정으로 한 말이,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헛소리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로 탈바꿈해 버리는 거죠. 언론이 무섭다는 거죠. 한 사람 매장시키는 거 이렇게 쉽답니다. (글쓴이 corcoon)
헐, 이랬다구?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던데 이거 완전히 맥락이 다른데? 나는 또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강한우 교수가 열 살 소년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했는지, 동영상이 있다면 동영상이라도 찾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만…. 동영상? 그의 강연 동영상이 있다고 했던가 조금 전 댓글에서?
– 이런 강 박사의 강의 동영상을 보신 분들은…..
나는 그 영상을 찾아보고 싶었다. 갈수록 쌓여가는 편집일을 잠시 미룬 채 구글 검색을 통해 영상 찾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 아이러브 강한우
이렇게 찾아봐도 저렇게 찾아봐도, 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강한우 지지자들의 카페, 아이러브 강한우. 아….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렇게 해서 광신도들이 모여있다는 카페의 회원이 되는 건가?’
그때까지도 나는 강한우 교수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갖고 있었지만 지지자는 아니었기에,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많았기에 지지카페에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다면, 차라리 영상 보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탁, 노트북을 덮고 편집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세 시간 뒤 퇴근 무렵,
– 카페 회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결국 아이러브 강한우 카페에 가입했다. 너무 궁금했기에, 꼭 그 영상을 보고 싶었기에, 결국 지지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자 카페회원이 되어 잠입취재한 언론인이 되었다는 명분을 마음속에 품은 채 카페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승인되자마자 낼름 영상을 클릭해봤다.
– 2004년 6월 4일 뉴욕 서울프라자에서 있었던 강연
줄기세포 논란이 터지기 1년 반 전의 강연영상이었다. 이 무렵 강한우 교수는 노벨상이 유력한 국민영웅으로 지금의 BTS나 손흥민 선수 못지않은 스타급으로 강연섭외가 빗발치고 있었다. 아마 <사이언스> 논문 발표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미교포들을 상대로 한 초청강연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상을 통해 강한우라는 사람이 어떤 식의 화법을 구사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최대한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팩트를 놓치지 않는 결코 쉽지 않은 강연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영상 후반부에서 소년에 관한 대목이 나왔다. 꿀꺽, 침을 삼키고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강한우 강연 영상> (2004년 6월 4일 뉴욕)
(강한우, 소년에 대한 영상화면을 가리키며) 여기, 제가 1년 전 인천 길병원에 가서 만났던 15명의 휠체어 환자 중 한 명인 8살짜리 김 아무개입니다. 이 사람도 바로 옆에 계시는 이 어머니께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에 의해 경추골절상으로 지금 저 상태에 빠졌습니다.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와 이 학생은 보면 하얀 플라스틱 튜브가 목을 뻥 뚫고 안으로 들어가있습니다. 말을 하게 되면 저게 다 샙니다. 하도 안타까워서 그 대학 부속병원의 부원장인 이00 교수한테 물어봤어요.
“이 선생, 저거 빼주면 안 돼?”
그랬더니 저걸 빼주는 순간 호흡마비로 써든데스(Sudden Death)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24시간을 저렇게 차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저 친구는 정말로 의젓하고, 정말로 쾌활하고, 환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자세였습니다. 말을 하면 바람이 새니까 자기 엄지손가락으로 목의 튜브 구멍을 딱 막고 저한테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교수님이 강한우 교수님이시죠? 저 정말 잘생겼죠? 저 좀 제발 일으켜주세요.”
여러분, 저 아이가 자기 아버지인 저 목사님의 3대 독자가 아니고 만일 여러분의 귀한 자녀였다면, 그런 자녀가 여러분 앞에 와서 “아빠, 저 좀 제발 일으켜 세워 주세요.”라고 애원했을 때, “얘, 지금 이 과학기술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에 성큼 다가섰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너에게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없겠구나”라고 말 할 수 있는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시나요? …… (침묵)
저는 바로 그때 어른으로서 저 아이한테 약속했습니다.
“야~ 이 아저씨가 사회적으로 모진 압박과 갖은 태클을 당하더라도 의사 선생님들이 너한테 직접 시술해 줄 수 있는 그 단계까지 내가 반드시 이 기술을 개발하고야 말겠다. 대신 너도….(청중들 큰 박수를 친다) 대신 너도 지금의 이 의젓하고, 정말 희망적이고 밝은 모습을 잃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 줄 수 있겠니?”
그랬더니 그러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보는 현장에서 저 놈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 녀석 세포를 갖고 지금 우리는 한 발 한 발 정진하고 있지요….
그 대목에서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무언가 복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더는 영상을 볼 수 없었다. 감동…. 이렇게 인간적인 스토리가 사이비 교주의 괴담으로 둔갑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건가, 21세기 정보화 세상에?
30여분 뒤 가다듬고 다음 할 일을 찾아봤다. 팩트체크. 이성적으로, 어디까지나 저 영상 또한 강한우 교수의 주장일 뿐, 그 자리에 있던 제삼자는 또 어떻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소년도 강한우도 아닌 제삼자라면, 인천 길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 가만 이00 교수라고 했던가, 나는 영상을 되짚어보며 의사의 이름을 확인한 뒤 인천 길병원 홈페이지 연락처를 뒤져봤다. 여기 있군, 신경외과 전문의 이00 교수….
다음날 오전 10시경, 나는 무턱대고 인천 길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이 교수를 찾았다. 다행히, 그는 이 날 근무하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이00 교수님 계십니까?”
“전데요, 어디시죠?”
“교수님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경기방송의 프로듀서 노진구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다름 아니라….”
전화기 너머로 걸려오는 목소리는 피곤하지만 따뜻한 목소리였다. 나는 최대한 깍듯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그날의 상황을 물었다.
“혹시 강한우 교수께서 아이한테 ‘내가 널 일으켜주겠다’라고 말한 걸 들으셨나요?”
“글쎄요…. 오래 전 일이라서 당시 상황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이라도 그런 맥락의 대화가 있었는지….”
“강 교수님께서 제 환자한테 ‘널 일으켜주겠다’는 식의 말은 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앗, 그렇습니까.”
“예, 워낙 신중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니까요.”
“평소 강 교수님 어법이 그렇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신중하게 말씀하세요. 당시 상황에서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체세포 연구를 하는 상황에서 환자의 체세포가 필요했고, 그렇게 하려면 아이와 부모의 동의를 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연구가 어떤 연구인지도 모른 채 동의해 줄 사람은 없죠. 그래서 아이와 부모님께 이 연구는 어떤 연구이고 이러저러하게 한다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혹시 잘 되면 이러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도 있겠다’라고 희망적인 말씀은 하실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말은 연구자로서 누구에게라도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 말을 들은 누구라도 흔쾌히 동의해 줄 수 있는 거구요.”
“그렇죠.”
“연구가 잘 되면 그 아이뿐 아니라 다른 병으로 고생하는 다른 아이들도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누가 이걸 마다하겠습니까?”
전문의는 언론이 왜 그때 그 발언을 문제 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당시 상황은 연구자로서도 임상의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자님.”
“예?”
“강 교수님 지금 연구는 잘하고 계신가요? 요새 통 연락이 없으셔서….”
“아 예…. 뉴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사실 뉴스 볼 시간도 없어서요. 환자들이랑 씨름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릅니다. 강 교수님 잘 계시죠?”
“……”
이 교수는 뉴스 볼 시간도 없이 환자와 씨름하는 진짜 의학자였다.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날의 대화는 의학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 삼을 게 전혀 없는 정상적인 대화였다는 것을.
이후 나는 소년의 아버지 김 목사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뉴스 인터뷰의 당사자 바로 그분, 어렵게 수소문해 얻은 그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예상대로 전화가 꺼져있었기에, 나는 장문의 질문 문자를 보냈다.
“인터뷰 기사에 나온 것처럼 강 교수가 아드님께 ‘내가 널 걷게 해 주겠다’라고 발언을 했는지 그 의도와 맥락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 이00 교수님께서는 연구자로서 문제 될 발언은 없었다고 제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기사의 맥락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견해는 어떤지 여쭙고 싶어서 문자 올립니다. 괜찮으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다음 날 아침, 답신이 왔다.
‘그런 게 한국 언론의 한계 아닐까요?’
뭐지 이 말은…. 인터뷰 기사가 왜곡되었다는 걸 시인하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잘 못 짚었다는 뜻일까?
나는 그날의 업무를 빠르게 정리한 뒤 경기도 시흥으로 향했다. 소년의 아버지 김 목사님의 교회가 있는 바로 그곳,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내 차가 수도권 순환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들어설 때부터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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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에서 2023년 상반기 개국예정인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전문 프로그램 준비중, 별명 기후보좌관.(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