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5학년 5반 55번 오정오!”
“네!”
이와 같은 학생번호가 있을 수 있을까?
있다! 아니 있었다.
사실 위의 학생번호는 필자의 둘째 형이 초등학교 시절 갖고 있던 학생번호였다. 소위 베이비부머 시대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그래서 부족한 교실 수를 감당할 수 없던 시절,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학교수업을 받아야 했던 서울의 어느 학교에서 학생번호를 이름 순으로 줄 세우기를 하다 보니 나타날 수 있었던 실제 장면이었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당시 담임 선생님도 자꾸 장난스럽게 불렀던 학생번호였다.
그러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출산율 0.81명에 불과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며 어느새 세계 최고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블룸버그는 대한민국의 과도한 학원비 등 육아 부담이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을 만들었다고 보도하고, ‘hagwons’라는 단어를 우리식으로 그대로 표현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만 5세로 취학연령을 앞당기도록 학제개편안을 아무런 국민적 합의도 없이 발표했다. 그리고 5세 조기입학의 판단근거로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계층의 아이들이 1년이라도 빨리 공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들을 1년이라도 빨리 진출시키자는 생각이었단다. 결국 대통령의 이런 허황된 판단은 유아발달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생각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는 학생과 사람은 없고 오로지 경제와 산업 밖에 없는 것이기에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을 뿐인 박순애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취임 34일 만에 임명 과정의 온갖 논란과 함께 사퇴하고 말았다.
문제는 대통령이 한국 사회의 가장 위태로운 사회적 위기인 저출산에 의한 인구절벽의 문제를 그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 전 지구적 위기로 여겨지는 기후위기는 그나마 향후 5년 후의 위기 정도를 노력 여하에 따라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출산의 문제는 오늘의 신생아의 출생 숫자가 5년 후의 학령인구의 감소를 결정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향후 5년 후의 초등학교는 통폐합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금년도 대학입시에서 교육대학의 경쟁률이 일제히 급락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한때 공무원과 함께 선망의 직업으로 꼽혔던 초등학교 교사의 인기가 갈수록 시들해지는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반드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발표하고, “교육개혁은 미래세대가 그야말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 된다는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다.
즉, 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이 현 정부의 정책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정책이 교육정책으로, ‘잘하고 있다’가 0.8%에 머물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22일 확정해 고시한 ‘2022 개정 고등학교 교육과정’ 한국사2의 ‘대한민국의 발전’ 대목의 성취기준에 현행 교육과정에 있는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표현을 아예 삭제해 버렸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동안 교육과정에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의 가장 큰 역할에 민주주의의 발전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서열을 해체하고 입시경쟁을 완화하고자 해왔던 모든 노력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는 ‘거꾸로 사는’ 진짜 재미가 어디에 있는지 들려주고 싶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교장선생님’으로 불리던 이오덕 선생님께서 쓰셨던 수필집 가운데 『거꾸로 사는 재미』라는 수필집이 있다. 그 수필집에 수록된 1965년 7월의 선생님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서 가져온다.
“생명을 키워가고, 그것이 커 가는 이치는 나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포플러는 포플러같이 키워야 하고 소나무는 소나무로 키워야 한다. 어린 생명을 천성 그대로 죽죽 뻗어나게 하라. 개성이 살아나게 하라. 가위질을 하지 말고 제멋대로 호령하여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지 말라. 한 사람의 명령만으로 인간을 기계화하지 말라.”(『거꾸로 사는 재미』 李五德, 1983년, 汎友社, p96)
60년 전의 이오덕 선생님의 외침이었다.
.
.
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