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27 오후 130호(2022.10)

살아가는 이야기
일생의 버킷리스트 밤 줍기 이야기

일생의 버킷리스트 밤 줍기 이야기

이정양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 농학 86

일생의 버킷리스트인 밤 줍기. 그러나 사실 얼마 전까지 감히 버킷리스트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순천시 송광면 소재지에서 1인당 3천 원인지 5천 원 정도를 지불하고 체험을 해보기는 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밤 재배농장에서 일꾼으로 하루 종일 내일처럼 해야 진정한 밤 줍기라는 생각이었으므로 그런 기회는 저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런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2022년 7월 17일 점심을 세종시 장군면 용암리 52에서 10여 명의 친구들과 먹었습니다. 이곳은 그날 처음 보게 된 한 친구의 수만 평에 달하는 밤 농장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친구들은 조금 이상한 인연의 친구들입니다. 어떤 친구는 그날 처음 보는 친구이고, 어떤 친구는 2019년 여름 언제쯤부터 보아온 친구이고, 어떤 친구들은 그 사이에 한두 명씩 보아온 친구들입니다. 명색이 86학번 동기모임이기는 한데, 37년 전에 본 친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여 중고등학교 때부터 절에 다녔던 인연으로 농대 불교학생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90년에 복학하여 다시 농불회 활동을 하였는데, 수원 및 수원 인근에 소재한 대학에 불교동아리가 있었고, 그 불교동아리는 대학생 불교연합회, 즉 대불련이라는 이름 아래 가끔 활동을 같이 하곤 하였습니다. 그때 86학번도 몇 명이 함께 했던 것 같기는 한데, 특히 생각나거나 연락이 되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대불련이라는 모임이 특별히 애타게 그립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동문회 모임의 한 선배님께서 2019년 여름 언제쯤에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대불련 동문행사가 있다며 참여를 권유하여 여행 삼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앳된 아이들까지 있어서 무료하기 그지없었는데, 밤 10시쯤부터 학번별 모임이 있어서 강원도에서 온 친구, 제주도에서 온 친구, 서울에서 온 친구, 광주에서 온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술을 몇 잔 마시다 보니 순식간에 86년도부터 93년도까지의 시절로 돌아간 듯하였습니다.

밤새 추억을 나누며 추억을 쌓으며,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졌는데, 그 몹쓸 코로나로 인하여 2020년, 2021년에는 전체가 모이는 행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86학번만 따로 몇 번 만나기는 하였습니다. 과천 서울대공원, 고흥 마복산 한옥마을, 천안 등등 몇 번의 모임이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세종에서 만나게 된 것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가 굳이 자기가 밤농장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바빠서 다른 곳에 가지는 못하는 대신에 자기 농장으로 오면 대접을 하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누구는 오리를 보내 주어 오리백숙을 준비하게 하고, 누구는 장아찌 반찬을 들고 오고, 누구(이정양 본인)는 깍두기를 들고 와서 진수성찬으로 점심을 먹었답니다. 아뿔싸! 그런데 그곳에서 말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세종시의 랜드마크인 카페 매타45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추석 전후로 일손이 너무나 부족하여 큰 걱정을 하는 친구에게 시간이 되는대로 도우러 오겠다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밤 줍기가 내 어린 시절의 버킷리스트였다는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어렴풋이 어렸을 때에 밤에 한이 맺혔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외갓집에 가다가 산길에서 떨어진 밤을 주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주인아저씨에게 도둑놈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많이 무섭기도 하였고, 창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막연히 원 없이 밤을 주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위한 오리백숙 2마리
여기저기에서 모인 10여 명의 친구들
여러 친구들이 모은 진수성찬 – 제가 만든 깍두기도 있습니다.

세종에서 친구들을 만난 이후에 저도 시간이 넉넉히 나지 않고, 친구도 특별히 일손이 필요하지 않아서 잊고 있던 중에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물난리가 나더니 급기야 친구의 밤 농장에서 집 뒤로 방천이 났다고 하기에 8월 14일에 급히 가서 급한 대로 하루 도와주고 왔습니다.

막막한 상태에서 깜깜하였는데 채 하루도 다 못 도와주었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마워하여 조금은 뿌듯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조치원읍에서 다른 약속이 있어서 오후 4시쯤에 먼저 일을 마무리하고 나왔습니다.

세종시 장군면사무소에서 포클레인 0.5일 지원해줌
시멘트 블록으로 갈무리하는 이정양
톤백마대로 복구

올해 추석은 9월 10일로 다른 해에 비하여 매우 빨랐습니다. 친구도 추석 전에 공급하여야할 물량이 있는데, 밤은 떨어지지 않아서 마음만 바쁘게 세월을 보내다가 9월 3일부터 밤을 줍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9월 3일에 약속이 있어서 9월 4일에 합류하여 밤을 줍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은 친구와 나와 동네의 정신지체인 한분과 함께 셋이서 주웠습니다. 아직 시기적으로 일러서 많이 줍지는 못 했습니다. 주울 것도 많지 않고 나도 다른 일이 있어서 그날만 줍고 집으로 갔고, 9월 7일에 다시 주우러 갔습니다. 그날은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와 셋이서 주웠습니다. 그날은 제법 많이 떨어져 있어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줍느라 허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외로운 밤 줍기
풍성하고 탐스런 밤송이
이게 얼말까요? – 작은 것은 100원, 보통은 300원, 큰 것은 500
친구는 오리고기를 굽고 친구 어머니와 점심식사

밤이 땅에 많이 떨어져서 주울 것은 많았지만 추석 전에 판매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날만 줍고, 선별을 하고 추석을 쇠고 다시 주우러 오기로 하고, 고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올해 밤 줍기는 끝이 나고 말았답니다. 갑자기 2년 전에 했던 버스교통량조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9월 25일 무주 구천동 백련사 계곡을 오르다가 넘어져서 새끼손가락이 부러져서 9월 25일부터 10월 11일까지 전주 수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해 있느라고 세월을 보내서 올해는 밤 줍기를 더 이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가을에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제대로 된 밤줍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올 가을에는 2년 전처럼 해본 버스교통량조사 아르바이트를 또 해 보았고, 무주구천동 계곡을 오르다가 넘어져 오른쪽 새끼손가락 새번째 마디가 탈골되고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하고 2주 동안 입원하였습니다.

따로 기회가 되면 이들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날마다 새롭고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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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였고 중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으로 일하고 있다.(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