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반만 믿어라
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강한우, 그의 과거를 알고 싶다.’
난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의 성장과정을 찾아봤다. 그가 만일 희대의 사기꾼이 맞다면, 성장과정 어딘가에 비슷한 뭔가 있을 것이다. 왜 ‘연쇄살인마는 어느 날 갑자기 덤불 속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거짓은 더 큰 거짓으로 배양되는 법. 그런 흔적을 찾아 나는 강한우의 과거를 검색했다. 그런데…. 뭔가 한 건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자꾸 미담만 검색됐다. ‘허…. 이게 사실이라면 이런 사람이 조작을?’ 이런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이야기들 말이다.
‘저는 강한우 교수와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학과는 다르지만)를 다녔습니다. 그가 있지도 않은 줄기세포를 11개나 만들었다고 사기칠만큼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왜냐구요? 저희 동창들 사이에서는 강한우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1970년 겨울 대전고등학교. 그가 고3 수험생으로서 대학 입학원서를 쓸 때였죠. 충남지역 영재들로 구성된 학교특성상 교무실은 고3 담임샘들이 학생들과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희망대학을 정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 ‘짜악’ 하고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의 놀란 눈이 한 곳으로 쏠렸어요. 강한우 쪽이었어요. 사람 좋기로 유명한 강한우의 고3 담임샘께서 어쩐 일인지 강한우의 뺨을 후려치면서 호통치고 계신 거예요.
“야 이눔아, 홀어머니에 찢어지게 가난한 놈이 한국대 의대만 가면 부잣집 색시들이 시집오려고 줄을 쫙 설 텐데, 뭔 놈의 수의과여?”
동기들 사이에서 전교권으로 통하던 강한우가 충분히 한국대 의대에 가고도 남을 성적으로 수의과를 고집하자 담임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겁니다.
“너 수의과 가면 뭐 되는줄 알어? 소 똥구녁에 침한방 박고 돈 몇 푼 챙겨가는 쇠침장이 되는겨, 쇠침장이”
어르고 달래고 혼도 내면서 어떻게든 의대에 보내려는 선생님의 마음. 단지 실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고학생 한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의대 중에 제일 등록금이 싸고 장학금도 많던 한국대 의대에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린 알고 있었죠. 강한우는 끝내 수의과에 가리라는 것을. 녀석은 전교 2백등 바깥에 있던 1학년 때부터 ‘내 목표는 소박사가 되는거’라며 한국대 수의과를 목표로 ‘(방바닥에) 등 안대기 클럽’을 만들어 죽어라 공부하며 끝내 전교권이 된 독한 놈이었으니까요. 확신범. 동기들이 부르던 강한우의 별명입니다. 그런 황소고집이 담임샘의 따귀 한방에 무너질 리 없었죠.
“강한우, 내가 너 나중에 커서 뭐가 되는지 똑똑히 볼거니께 잘혀 임마, 열심히 혀”
결국 선생님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수의과 입학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내 친구 강한우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의 소 대신 키워주면서 소처럼 일해 네 자녀 공부시켜온 자기 어머니 같은 농부들한테 새끼 숭숭 낳는 우량 소 만들어드리는 소박사가 되겠다며 수의과에 진학한 그런 녀석이 강한우예요. 그런 녀석이 논문을 조작했다구요? 왜? 하늘이 내려준다는 한국대 교수가 된 그 녀석이 왜? 뭐가 아쉬워서? 나는 그를 믿습니다.’
2005년 12월 18일 한국대 졸업생 게시판에 올라온 글쓴이 ‘진실은 눈이 없다’는 글이었다. 허참…. 나는 이 글의 사실여부를 의심하면서도 어딘지 끌리는 감정을 느꼈다. 나도 치열한 입시지옥을 겪어온 세대로서, 솔직히 한국대 의대를 포기하고 수의과를 가는 꼴통이 몇이나 될까? 지금이야 수의과가 잘 나가지 그 옛날 수의과는…. 사실 이런 꼴통들이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야 그게 선진국일 거라는 믿음을 가져온 세대로서 나는, 강한우의 과거를 검색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의 팬이 되어가는 나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선배님, 소문 들으셨어요?”
아침 생방송에 출연한 시사평론가 민 씨가 내게 슬쩍 귀띔해줬다. 강한우에 대한 최신 의혹이었다.
“강한우 첫 작품이 복제소 영롱이잖아요? 그거부터 가짜였대요?”
“엥? 설마”
“처음부터 거짓이였다는 거죠. 지금껏 자랑해온 거의 모든 업적이 다….”
“헐….”
“아마 오늘 밤이나 내일쯤 터뜨리려나 봐요.”
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날 밤 9시 뉴스, NBC 단독으로 강한우에 대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영롱이 복제, 논문도 없다’라는 제목과 함께….

기자 : 지난 1999년 2월에 한국 최초의 체세포 복제 젖소 영롱이가 태어납니다. 강한우 교수는 영롱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한우 영상) “애들말로 짱났습니다.”
기자 : 그러나 영롱이가 복제된 게 아닌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제보자 : 영롱이 논문을 찾다 찾다 안돼서 선배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소팀장한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어서…. ‘영롱이, 진이는 논문이 없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소팀장이.
기자 : 실험실에서 소복제를 담당한 소팀장은, 논문이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보자를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제보자 : 그럼 ‘논문이 없으면 어떻게 과학적으로 입증됩니까?’ 하고 물으니까 소팀장이 저를 데리고 나와서 음료수 사주고 담배 피우시고…. 무언의 양해를 그때부터 하시는 거죠.
기자 :실제로 저희 취재팀이 검증해보니 영롱이에 대한 학술논문은 없었습니다.
(검색창에서 ‘소 복제’ 치자 검색 0)
기자 : 기술만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강한우 교수, 과연 그의 기술도 진실일까? 이제 그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강한우 얼굴영상에 미스터리 음악 흐른다)
‘처음부터 가짜였다구?’
뉴스를 본 뒤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팩트가 너무 단단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사람들인데 논문이 없다니, 언플만 했다는 건가, 더구나 데리고 나가서 담배 피우며 회유하는 실험실 분위기는 또 뭐지…. .
‘역시 범인은 강한우?’
의심 지수가 다시 솟구쳤다. 한 때나마 강한우 미담에 흔들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깟 출처불명 익명글에 흔들리다니…. 명색이 언론 밥 먹은 내가…. ’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아내가 해놓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곳곳에 숨겨진 새알들이 먹는 재미까지 안겨 줬다. 팥죽을 먹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잠들기 전, 주문처럼 그 문장을 웅얼거리고 잤다.
‘뉴스는 반만 믿어라’
진실과 거짓이 헷갈릴 때마다 루틴처럼 외워온 그 주문…. 신기하게도 ‘뉴스는 반만 믿어라’를 외우면 24시간 이내에 실마리가 잡히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아침, 주문의 효력은 역시 이번에도 24시간 내에 나타났다. 친구 원봉이의 전화였다.
“나다.”
“응, 원봉.”
“일전에 네가 부탁했던 거 말야…. ”
“아, 연락처…. ”
마당발로 통하는 그에게 나는 강한우 박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수의대 선배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알아보니까, 너네 방송국 코앞에서 동물병원 하는 선배가 계시더라.”
“어 진짜? 누군데?”
“너 석이형 알지? 수의과 87학번….”
“알지, 아니 그 형님이?”
“그 형 완전 강빠야 강빠…. 강한우 누명 벗긴다고 인터넷 논객이래.”
“헐, 진짜? 연락처 좀 불러 봐봐.”
“010….”
연락처를 받아적은 나는 즉시 선배님께 전화를 했고,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그의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응, 왔어? 오랜만….”
선배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를 맞았다. 그 시간에도 강한우 관련 글을 어디론가 전송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석이형의 동물병원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살아있는 경험담들 말이다.
“형님, 언론에서 영롱이도 가짜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지.”
“예?”
“확인을 안 한다고 확인을…. 동물복제 전문가들한테 확인만 했어도 그런 소리 못한다구. 자 봐봐라.”
이런 식이었다. 석이형은 내가 품고 있는 의문들에 대해 조목조목 과학적 사실관계들을 설명해줬다. 영롱이의 복제 원리부터 국제 연구 흐름과 제기된 의혹에 대한 반박까지. 그림을 그려가면서 자세히 설명해줬다. 문제는 나였다. 배아가 뭐고 배반포는 또 뭔지 수시로 튀어나오는 생물학적 용어들이 머리를 멍하게 했다.
“아니 배아도 몰라?”
“형님 사실 제가 고3 때 생물이 너무 싫어서 물리, 화학 선택한 아이라서….”
“아니 그래도 기본상식이잖아. 수정란이 첫 번째 세포분열을 해서 태아가 되기 전 단계까지를 배아라고 하잖아.”
“수정란은 또 뭐예요?”
“하아….”
이런 식이었으니…. 시간은 시간대로 흘렀고, 동물병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의 기다림도 길어졌다. 석이형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무지몽매한 나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주며 나를 보냈다.
“전화번호네요.”
“그 사람이 바로 뉴스에서 제보자가 언급한 그 사람이야. 제보자한테 담배 권하면서 복제소 같은건 없다고 말했다는….”
“오~ 그 소팀장!”
“그 친구한테 물어봐봐. 나 한테 전화받았다고 하면서. 걔가 소복제 팀장이었으니까 잘 알려줄꺼야.”
“고맙습니다. 형님~”
“고맙긴…. 담엔 공부 좀 하고 오고….”
“네^^”
나는 뭔가 신세계를 접한 기분으로 동물병원을 나섰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날 그 동물병원이 까무룩한 진실로 통하는 비밀 통로였던 것 같다.
“여보세요?”
나는 곧바로 소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이나 전화를 받지 않던 그는 네 번째 시도끝에 연결됐다. 뭔가에 지쳐있는 목소리였다.
“네.”
“안녕하세요? 석이 형님께 전화번호 받아서 연락 올립니다.”
“네에…. ”
“저는 경기방송 프로듀서 노진구라고 합니다.”
“저기 죄송한데요….”
내 소개를 하자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제가 언론사에 계신 분들이랑 통화하기 좀 그렇습니다.”
“아뇨 선생님 제가 취재하려는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이만 끊습니다.”
“저기 선생님? 선생님?”
뚜뚜뚜뚜…. 뭔가 언론사 기자나 피디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내는 응답이었다. 소팀장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적극적으로 항변을 해도 시원치 않을 시기에 회피하고 마는 걸까…. 더 궁금해졌다.
나는 퇴근시간 이후에도 소팀장에게 내 진심이 담긴 문자 여러 통을 보냈다. 나는 취재목적도 아니고 통화 녹음도 안 하며 그저 진실이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을 뿐이니 정 그렇게 힘드시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자료나 출처를 문자로 찍어주시면 감사드리겠다고.
‘뉴스는 반만 믿어라’
그날 밤도 주문을 나지막이 외우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휴대폰을 켜면서 깜짝 놀랐다. 밤새 소팀장으로부터의 답신 문자가 와있었던 거다. 세상에….
문자는 한 장의 사진과 다섯 줄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사진.

그리고 다섯 줄의 문장….
“영롱이 태어난 다음 해에 제가 복제한 소예요. 가곡의 한우농장에서 태어났고요. 영롱이가 가짜라면 저 소도 가짜겠죠? 근데 논문이 있네요. 논문 검색어는 강한우 scnt”
영롱이는 복제소가 맞으니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서 찾아봤다. Pub Med. 의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논문을 검색하는 논문검색엔진에서, SCNT는 체세포 핵이식을 뜻하는 복제전문 학술용어였다. 주루륵, 주루륵, 강한우 연구팀의 논문이 검색됐다. 영롱이를 만든 기반기술에 관한 논문들부터 영롱이 이후 복제 효율성을 높여낸 논물들까지. 그리고 영롱이와 진이 복제 그 자체에 대한 해외 학회 포스터 발표자료까지 수두룩하게 나왔다.
‘아니 나같은 초심자도 찾아내는 논문인데, 왜 거대 방송국에선 하나도 없다고 한 거지?’
오히려 NBC에 대한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또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강한우 박사의 미담 말이다. 의대 대신 수의과를 간다고 고집했다가 뺨 맞았다는 이야기…. 그때 강한우의 뺨을 때렸던 고3 담임선생님의 최근 근황이 전해졌다. 선생님은 강한우 교수와 연구원들이 먹을 순대며 김밥들을 한가득 싸 갖고 연구실로 찾아가셨다고 한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들지 못하는 제자 강한우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강한우 힘내라. 넌 내가 가르친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가 보고 있는 뉴스들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본격적으로 더 깊이 이 기묘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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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에서 2023년 상반기 개국 예정인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전문 프로그램 준비중, 별명 기후보좌관.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