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자유케 하라
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점심식사 후 나른한 오후를 느끼며 사무실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보니 밖에서 “까르르까르르” “나 잡아봐라~~” 하며 즐거운 꼬마 목소리가 난다. 3층 사무실의 창 밖을 내다보니 앞마당 꼬부랑길을 대여섯 살 먹은 꼬마 아이가 앞서서 뛰어가고 그 뒤를 엄마가 느린 걸음으로 쫓아간다. 꼬마 아이의 행복한 총총 발걸음을 바라보다 보니 나도 행복하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일제고사로 불렸던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사실상 되살리겠다고 한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별 밀착 맞춤형 교육을 통해 국가가 책임지고 기초학력 안전망을 만들겠다”라고 말하면서 “줄 세우기라는 비판 뒤에 숨어 아이들의 교육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라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는 그야말로 ‘줄 세우기’의 대표적인 수혜자였으니까. 오직 입시 성적만으로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한국 사회에서 그의 출신학교이기도 하고 필자의 모교인 충암고등학교는 수시로 예비고사 유형의(당시에 대입전형은 예비고사+본고사를 통해서 학생들을 선발했다) 모의고사를 보고 전교생 720여 명을 대상으로 전교 100등까지만 순서대로 등수와 이름을 과거급제의 방을 붙이듯이 게시했다. 그가 서울대 법대를 진학한 것을 보면 그의 이름은 맨 앞자리 5~6위 권 안에는 늘 포함되었으리라.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덕에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의 반열에 들고 고액 과외의 혜택을 누렸던 그에게 ‘한 줄 세우기’는 투입 대비 산출의 정당한 보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권리는 오로지 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소탈함(?)과 솔직함(?)도 자신감의 다른 표현임에 틀림없다. 열차의 좌석에 구둣발을 올리며 거들먹거리는 그의 모습이나, “RE100이 뭐예요?”(필자도 몰랐다. 그걸 과연 알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 얼마나 됐겠는가?)라는 질문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의 말처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해서 쓸 줄 알면 된다. 100% 동의한다. 그러나 등용한 인재가 제안하는 정책을 시행할 것인가의 판단의 몫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더욱 대통령은 국민의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백날 “민생 우선”을 외치면 뭐하나! ‘아나바다’가 뭔지도 모르고, “난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서만 있는 줄 알았다”는 반응을 바라보면서, 그의 경험의 부족과 우리 사회의 이해에 대한 천박함에 놀라울 뿐이다. 그가 과거처럼 飯酒 한잔에 흡족해하는 필부일 때는 모르는 것에 대한 솔직함이 소탈함으로 평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대통령이 된 후에 대통령의 무식함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나마 한동안 한국 사회의 교육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잣대로 한 서열화, 성취, 효율성을 강조하는 능력주의적 평등화 정책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개선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더욱 은밀히 잠복해있던 교육 불평등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상적인 삶의 불평등과 더불어 오히려 더욱 확대되어 왔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따라서 더욱 강화하고 지속해야 할 경쟁 교육에 대한 제도적 극복을 후퇴시키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신교육 정책은 아무리 해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4가지의 리더 유형, ‘멍게形’(멍청한데 게으름), ‘멍부形’(멍청한데 부지런함), ‘똑게形’(똑똑하고 게으름), ‘똑부形’(똑똑하고 부지런함)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멍게形에 가깝다.
부탁컨대, 제발 이제는 술 좀 그만 먹고 공부 좀 해주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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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