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과 브람스의 뮤즈! 클라라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2010년 무렵이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풍월당’에서 영화 ‘클라라’ 시사회가 있었다.
풍월당은 정신과 의사 박종호 선생님이 운영하는 문화복합공간이다. 이곳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한 장소로 이곳에 갈 때마다 박 대표님께 고마운 생각이 든다. 4층에는 클래식 음악 CD와 레코드판과 책을 판매하고 있다. 5층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를 초청해서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때로는 영화 시사회도 열리곤 한다.
영화 ‘클라라’를 본 후 나는 그녀의 너무도 힘든 삶에 공감이 되어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클라라는 음악 교사인 비크 교수의 딸로 태어난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예쁘고 영특하게 태어난 클라라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하셨다.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으로 그녀는 집중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0세 전후 어린 나이에 유럽에 연주 여행을 다니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클라라와 슈만이 만나다
그녀는 14살 때 그녀보다 9살이 많은 작곡가 슈만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나 아버지 비크 교수는 제자 슈만에게 사랑하는 딸을 절대로 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공을 들여온 너무나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난 보석 같은 딸을 앞날이 불투명한 23세의 슈만에게 줄 수 없었다. 장장 6년 동안 슈만과 클라라는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한 재판을 아버지와 하게 된다. 이들은 클라라가 21세가 되어 더는 부모의 허락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 이 부부는 금슬이 너무 좋아 일곱 명의 자녀를 낳아서 기른다. 그 자신이 훌륭한 작곡가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많은 자녀를 키우면서도 세계 각지로 연주 여행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가문의 병력인 신경쇠약증에 시달리는 남편 슈만은 그녀를 여러모로 괴롭혔다.
클라라와 브람스가 만나다
정신병으로 인해 죽으려고 라인강에 뛰어든 슈만은 결국 2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46세 젊은 나이였다. 그때 이후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곁에서 그녀를 돌봐준 이는 또 다른 작곡가 브람스였다. 브람스는 슈만의 제자였다. 그녀보다 14네 살이나 어린 브람스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에게 ‘퐁당’ 빠졌다. 브람스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했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재능을 존경했기에 몇 번이나 사랑을 고백했다. 하나 그녀는 꿋꿋하게 그의 연정을 외면하고 슈만과의 사랑을 굳건히 지켰다. 그와 그녀의 관계는 ‘모정 같은 우정’이었다 한다. 브람스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그녀의 연주 여행에 동행하며 도왔으며 그녀의 많은 자녀를 그녀와 함께 키운 이도 브람스였다. 브람스는 시간과 에너지와 재정적인 지원까지 기꺼이 해주며 너무도 사랑하는, 소중한 그녀의 어려움을 적극 도와주려고 늘 애를 썼다. 그녀의 남편이 떠난 자리를 오직 희생과 헌신으로 일관한 브람스의 사랑은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는 그녀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 1896년 클라라 슈만에게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 그녀는 슈만과 브람스의 영원한 뮤즈였다.
.
.
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