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새 정부가 출범하고 100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난호에서 자그마한 바람을 적어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바람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미래보다는 과거로의 퇴행을 일삼고 있다. ‘반도체 인력 양성’,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두 가지 기치 목표가 전부인 교육정책이 의미하는 바는 명징하다. 지난 정권은 뜬금없이 정시 확대를 추진하여 10년 넘게 좌우를 넘어 일관되게 진행해오던 평가혁신을 무위로 돌리더니, 이번 정권은 시간을 더 뒤로 돌려 70년대 산업역군 육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교육의 결과로서 인재 양성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높은 교육의 질 만이 훌륭한 인재를 담보할 수 있다. 다만, 과연 그것만이 공교육의 목표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질문해왔고, 이번 정부는 그 결과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번 정부가 대저 그렇듯 명확한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용되는 메시지의 기저에 깔린 익숙한 철학의 기시감이 있기 때문에 우려를 말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는 인재 양성은 기본으로 깔아두고, 인재가 되지 못한 아이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더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인재 양성 담론을 다시 전면에 내건 이번 정부는 소수의 인재만을 챙기고 나머지를 버리던 과거의 선별 위주 무한경쟁으로 시계를 되돌릴 우려가 매우 크다.
거기에 장관 인사가 화룡점정으로 우려를 대폭 확대시켰다. 여러 논란 끝에 임명 강행한 박순애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교육 관련된 경력이 없다. 행정학 전문가일 뿐이다. 먼저 임명된 장상윤 차관 또한 교육 관련 경력이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번 장/차관 인사의 역할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들은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에서 ‘교육부 해체’ 국면으로 초기 인수위를 이끌었던 그 기조를 이어가 산업부, 기재부, 중기부의 하위 카테고리로서 교육을 위치시킬 것이다.
전임 정권은 유은혜 부총리를 통해 교육을 ‘관리’의 영역으로 두고 그 어떤 혁신이나 발전도 거부했다. 정시 확대라는 시대적 퇴행 하나만 수행하고 나머지를 막은 것이 다행이라고 위안 삼아야 할 정도이다. 반면 이번 정부는 과감한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행정관료 차관과 행정학자 장관을 전방에 내세워 교육적인 일을 벌일 리는 만무하다. 진짜 진심으로 교육부를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할 것만 같다. 세월호 직후 ‘해경 해체’ 국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7월 21일에 출범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는 아직 구성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국가적 중장기 교육 의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논할 준비를 하기엔 이번 정부의 실력이 모자란 것일 수도 있다. 당연직 위원 몇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실제 논의가 진행되기까진 하세월이다.
와중에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처음으로 나온 교육 이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축소’이다. 유초중고에 쓰는 예산을 덜어서 대학으로 옮기겠다는 발상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겠다는 논리인데,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당장 쓸 예산이 모자라니 교육계 내부에서 뺏어오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근시안적이고 즉자적인 발상이다. 기재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많으니 조금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매번 과소 추계로 본예산을 잘못 산정하고 사후 추경으로 폭탄을 떠넘긴 자신들의 과오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태도다. 게다가 올해 경기침체로 내년 세수는 확연히 줄어들어 교부금도 줄어들 텐데, 이것을 보전하는 방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유초중등 공교육만이 무언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특색에 맞추어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는 내고 들어야 하지 않나. 그게 우리의 민주공화적 가치가 아닌가. 취임사에서 그렇게 언급했던 ‘자유’는 오직 검찰과 기재부만의 자유였던 것인가. 지금의 우려가 부디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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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