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21 오후 129호(2022.07)

실화소설 ‘사막의 과학자’4

사막의과학자 4

여행의 시작

노광준 전 경기방송 피디, ‘방송이 사라지던 날’ 저자, 농화학 88

그날 그의 기자회견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결국 보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17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날은 2005년 12월 16일이었다.

금요일 아침, 주말을 준비하며 가볍게 출근하는 날, 그러나 사람들은 온통 한 가지 이슈에 몰두해있었다. 강한우 박사와 줄기세포 이야기였다.

“설마 하나도 없으면서 그렇게 속였을까?”

“어제 <피디추적>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요. 처음부터 사기….”

“글세….”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강한우, 모닝커피 자리에서도 강한우, TV와 라디오에서도 온통 강한우, 강한우, 강한우…. 그럴 수밖에. 엊그제까지 국민 영웅이던 줄기세포 과학자가 졸지에 사기꾼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책상에 앉자마자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전개됐다. 편성국장이 아래 것들 다 들으라는 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한우 이 자식 이거…. 이혼을 두 번씩이나 했구먼. 집에서도 하도 구라를 많이 치니까 마누라들이 다 도망갔대요. 에유 이런 걸 서울대 교수라고….”

강한우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비난…. 실은 자신이 그동안 해온 말들을 덮으려는 물타기 전술이다. 국장은 불과 한 달 전까지도 이렇게 말을 했던 사람이다.

“요즘 대통령 말은 믿지 않아도 강한우 교수 말은 믿는다는 사람들이 참 많죠. 저도 그렇습니다만….”

워낙 센 발언이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대통령보다 신뢰했던 사람을 국장은 하루아침 사이에 ‘이혼 두 번 한 구라장이’라며 침을 튀겨가며 욕하고 있었다. 알리바이…. 자신이 과거에 강한우를 추켜세운 것은 자신이 멍청하거나 사람을 잘 못 봐서가 아니라 그만큼 강한우가 사악한 사기꾼이라서 당한 것이라는 것을 만방에 피력하기 위해 그는 더 세게 강한우를 짓밟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어느 순간 강한우를 지독하리만큼 짓밟기 시작한 것도 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서가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자신들도 당했다는 식의 ‘봉숭아 학당’. 푸훗,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국장한테 나의 비웃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 뒤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킥킥댔다. 그러다가 모니터 안에 뭔가 떠있는 큰 글씨를 보게 되었다. 뉴스 검색어였다.

‘강한우 오늘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한다고? 강한우가? 봐야지…. 나는 싸움판에 구경꾼의 신분으로 그의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 대형 TV가 설치된 방송국 주조정실 안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나만 올라온 게 아니었다. 부장님들부터 말단 사원들까지 줄잡아 십여 명이 주르륵 앉아 있었다. 다들 일을 잠시 놓고 강한우의 기자회견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마치 야구 한일전 수준이었다.

오후 2시, 강한우 교수가 등장했다.

“사죄와 함께 진실을 규명코자 합니다.”

엥? 진실 규명? 그의 첫마디는 내 예상을 깨뜨려버렸다. 손수건을 들고 펑펑 울면서 고개를 숙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실규명이라고? 실제로 그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은 분명히 줄기세포를 만들었는데 누군가 배양 단계에서 세포를 바꿔 쳤다는 것이다. 잠깐, 바꿔치기? 바꿔치기라고?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배양 첫 단계에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다른 줄기세포로 뒤바뀐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거 제대로 재미있어졌다. 딱딱한 과학자들의 논란 속에 이런 꿀잼 요소가…. 나는 그렇게 팔짱을 껸 채 고개를 점점 앞으로 당겼다. CSI 줄기세포랄까?

“곧이어 정병일 이사장의 기자회견”

자리를 뜨려 하는데 자막이 흘러나왔다. 강한우의 기자회견에 곧바로 반박하는 기자회견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강한우와 함께 줄기세포를 발표한 공동 연구자이자 <피디추적>팀에 강한우에 대해 폭로한 정병일 이사장. 이거 이거 싸움이 제대로 붙었다. 이 나라 최고 명문 대학 교수(강한우)와 최고 산부인과 병원장(정병일) 간의 치고받는 백병전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털썩. 다시 앉아 TV를 봤다.

“(강 교수는) 책임자로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정 이사장은 대한민국 상위 1% 답게 기자회견도 정석대로 했다. 우선 나 같은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일상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왜 모든 걸 다 가진 서울대 교수(강한우)가 힘없는 자기 병원 출신 연구원에게 ‘바꿔치기’의 책임을 떠넘기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 다음 손수건을 들고 눈시울을 붉히며 감정에 호소했다. 정석이었다.

“강 교수가 궁지에 처하자 결국은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동고동락한 연구원을 우리 병원 소속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보면서, 교수로서나 과학자로서나 지도자로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참담했습니다. (눈물 글썽) 저는 미국에 있던 김선재 연구원이 <피디추적>과의 인터뷰 맨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이제 과학자로서 끝난 게 아니냐’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국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울음) 내가 형이 되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의 회견은 완벽했다. 줄기세포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에게 그의 눈물은 ‘얼마나 억울하면 저렇게 높은 사람이 저렇게 나와 눈물까지 쏟을까’ 하는 생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렸다. 바꿔치기가 맞을지도 모른다고 의심 가던 생각이 사라지고 역시 강한우는 힘없는 공동연구자에게 꼬리 자르기로 책임을 전가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기자회견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아이고 난 모르겄다. 이 사람 말 들으면 이거 같고 저 사람 말 들으면 저거 같고.”

“난 정병일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강한우 처음부터 이상했어. 과학자가 말을 너무 잘해.”

“진실은 곧 밝혀지겠지. 일이나 하자.”

필자가 촬영한 복제 강아지 순산 현장, 2018년 7월 29일 오후 2시 13분

그날 저녁.

고등어를 발라먹으면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기자회견 봤느냐고. 봤단다. 나는 언제나 지혜롭고 현명한 그녀의 직관이 궁금했다. 그날도 그녀의 대답이 궁금했다. 어땠어?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난 정병일 이사장 쪽이 이상해.”

“왜?”

“너무 자주 울잖아.”

“엥, 진짜 억울하니까 울 수도 있지. 우는 거야말로 여성들의 특기 아닌가?”

“아니야. 여자들도 정말 억울하면 이 악물고 눈물 참으면서 또박또박 말을 해. 자꾸 운다는 것은 뭔가…. 스스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하는 행동이야. 자기가 생각해도 좀 모자란 데 아무튼 이해받고 싶을 때 하는….”

“그런가? (긁적긁적)”

“난 이상하던데. 아니 그 병원처럼 큰 병원 이사장이 뭐가 꿀린다고 그렇게 울어? 말로 하면 되지. 자긴 안 이상해?”

“…. (긁적긁적)”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날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강 교수는 입술을 깨문 굳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반면 정 이사장은 손수건을 들고 눈물 또 눈물. 어쨌든 아내의 직관 앞에서 내가 품고 있던 양비론은 깨졌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이 나쁜 놈들일 거라는 양비론 말이다. 양비론과 무관심이 지나간 자리에 호기심이 돋아났다. 사람의 진정성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인간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

“강한우, 그는 누구인가.”

어느새 나는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있었다. 검색창이 열렸다. 그 검색창이 17년간의 취재여행으로 향하는 지옥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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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농화학과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파던중 BBC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유튜브 기획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경기방송 PD로 재직당시 ‘현장의정포커스 –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대책편’으로 제38회 한국방송대상 지역시사보도제작(라디오) 부문 작품상 수상했다.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