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어편(‘어쩌다 대통령’의 친구가 쓴 ‘어쩌다 편지’)
오정삼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친구야, 네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
하기야 뭐 내가 너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지. 고등학교 때 잠깐 같은 반이었다는 것과 대학 들어가서는 학생회관에서 몇 번 지나치며 얼굴 본 적밖에 없는데. 그래도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은 네가 검찰총장 된 이후부터는 술자리에 모이면 네 얘기가 단골 메뉴란다.
내가 알고 있는 너도 자신이 언젠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애초에 너는 대통령에 대한 꿈도, 정치에 대한 꿈도 없었을 테니까. 30년간 특수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뒷구멍으로 얼마나 추잡한 짓들을 하는지 누구보다도 많이 경험했을 네게 정치는 안중에도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게다가 검사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과 권력기관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렸을 터이니 무엇이 부족해서 그 시궁창에 빠져들 생각을 했겠냐?
그래서 그런지 요즘 네가 보이는 언행이 충분히 너답다는 생각이 든다.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시꺼멓기만 한 정치꾼들이 마치 자기는 순결한 척하며 상대방의 작은 비위를 마구 물어뜯는 것을 바라보며 얼마나 가소롭겠냐? 어찌 보면 네 입장에서는 너의 발가락의 때에도 못 미치는 놈들일 테니. 그러니 어느 날 새벽 어쩌다 대통령이 돼버린 너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발언들은 가히 위태로울 정도의 자신감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하기야 언제는 너를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될만한 강직하고도 정의로운 검사로 한없이 추켜올리며 검찰총장으로까지 추대하던, 이제는 너의 정적이 돼버린 현재의 야당이나 그 지지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죽일 듯이 달겨들며 온갖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험담을 지어내는 것을 잘도 참아내고 있는 걸 보면 너도 이제 정치인 자격이 있는 듯하다. 오직 자기편만이 옳아야 한다는 엄청난 사명의식과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소위 오지랖 퍼(?)들에 의해서 너는 어느새 쓰레기로 전락했지. 그리고 네 아내도 콜걸이 되어버렸고.
그래도 내가 놀란 것은 그 아사리판에 홀연 등장해서 山戰, 水戰, 空中戰까지 다 치른 닳고 닳은 정치꾼들과의 놀음판에서 다 털리지 않고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너를 보고, 옛말에 “시골 면장을 하려 해도 논두렁 정기를 타고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형편없는 정치인들도 그렇게 우스운 것만은 아니지. 정치꾼들도 몇몇 금수저가 아니고서는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 가정이 파괴될 정도의 백수건달 생활을 견딜 만큼 인내심이 없으면 될 수 없거든. 그래서 나는 그들의 내공을 존경해.
근데 네가 대통령이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부터는 제법 정치꾼들의 만년 수사어 “민생 우선”을 입에 달고 다니더라. 어찌 보면 정치하면서 깨달은 면도 있겠지만, “민생”이라는 단어가 네 입에는 아직도 어색한 듯하다. 하기야 네가 살았던 60 평생 속에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할 기회가 있었겠냐.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믿는 법이어서, 어려서부터 금수저에 법관이 돼서도 민생사범이나 강력범보다는 재벌이나 부패한 정치인들만 다뤄온 네가 서민들의 설움을 어찌 알겠어.
하지만 나는 지금 진심으로 네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뭐 대단한 건 아니고(너는 “뭐”라는 표현으로 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 요즘 사람들 툭하면 “뭐냐 하면”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 어절 또한 순간적인 상황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긴 하지.) 네가 소위 ‘도어 스테핑’이라는 기자들과의 즉석 문답식 회견을 하면서 꼬투리 잡힐 말들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근에 이전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우리가 지난 5년 동안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확신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뭐(이 표현은 너를 따라 하는 거임) 원전 정책에 관해서는 가치의 차이가 있으니까 네가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는 것에 뭐라 할 바는 없지만, 내가 주목하는 표현은 “확신”이라는 단어야. 이 “확신”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인류사에 큰 비극을 초래했는지 잘 알 테지. 중세시대의 마녀사냥도,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전쟁도, 가까이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의 민중에 대한 폭압도 모두 이 “확신”에서 나온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이거늘 네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사실 나는 네가 정치 입문 초기에 낮이건 밤이건 반주 한잔씩 하면서 식사 회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우리 나이가 그럴 나이이긴 하지. 나도 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반주 한잔씩 하는 게 일종의 낙이라서 아내에게 온갖 구박을 받곤 하니까 너는 얼마나 더했겠어. 너야 30년간 영감님, 영감님 하면서 대접만 받았을 테니 그게 습관이고 생활인 것을.
그러나 이제 우리 나이가 60이 넘어서 소위 耳順의 나이라니, 내 얘기는 줄이고 남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게 아닐까? 아마 네가 이렇게 귀를 열고 좀 더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너는 분명히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야. 내가 알고 있는 한, 너는 분명히 지금 네 주위에 붙어먹는 꾼들보다 훨씬 멋진 녀석이니까. 그리고 네가 성공한다는 것은 곧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다는 얘기니까 국민들도 너를 분명히 좋아하게 될거고.
그나저나 이 편지를 받는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지?
아하, 한여름밤의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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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여 년 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현재는 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으로 ‘더불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여는 청소년’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체, 참여, 성장,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roaca@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