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라는 교육정책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새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인수위에서 여러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겠으나, 유독 교육 영역에 대해서는 논의가 실종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도 교육을 단순 ‘관리’의 영역으로 두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에 주력하여 산적한 문제를 곪도록 방치했다. 이번 새 정부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교육도 함께 변화되어야 함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에 국가 단위에서 교육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진보 교육이 주류를 차지한 지 10년이 흘렀다. 당연히 여러 변화가 있었고, 명암이 갈렸다. 무한경쟁에 신음하던 아이들이 한시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그간 소외 당해 관심받지 못하던 많은 영역이 주목받게 되었다는 성과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실책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경쟁을 죄악시하여 모든 경쟁 요소를 배제하려다 보니, 기존의 진단평가 마저 배제하게 되었다. 상징적인 사건은, 전교조가 기초학력 진단검사에 반대하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을 점거한 사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에 기초학력 증진을 위해, 초3과 중1 대상 진단검사를 시행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도입한 일제고사가 모든 아이를 한 줄로 나열하여 차별하는 데 악용됐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표집 검사로 바꾸었으나, 표집만으로는 지원이 더 필요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알아내기 힘들었고, 집중적 학습지원이 필요한 초3과 중1에 진단검사를 하여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발표되고, 전교조가 교육감실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진보’ 교육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처럼 경쟁을 죄악시했다. 허나, 이것이 기초학력 진단을 무마하는 귀결로 나타났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경쟁을 배제할 수는 없다.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선진국으로서 글로벌 경쟁을 통한 초격차를 실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취 지향의 경쟁이 선순환되어야 할 필요성은 지속하여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국 공교육은 지난 10년간 지우려 했던 경쟁을 다시 살려야 한다.
1) 절대평가 도입을 통한 긍정적 경쟁의 선순환 정착
‘공정’한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정부이니 만큼, 긍정적 경쟁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다만, 이 경쟁의 목표가 ‘선별’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교육에서의 모든 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선별과 배제를 통한 일부 엘리트를 키우는 교육 방식은 후진국에서 적은 자원을 집중하여야 할 때 활용되던 방식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서, 모든 아이를 위한 지원에 나서도 충분히 가용할만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단위에서, 교육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투자하겠다고 선언하고 조직해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기존에는 학교에서 치러지는 대부분의 평가가 상대평가였기에 평가는 그 자체로 경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의 선별과 배제가 중요하지 않은 이 시점에, 상대평가를 계속해서 유지할 이유가 없다. 교내 평가는 전부 절대평가로 전환하여, 학생들의 성취 수준을 확인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일정 성취 수준 이상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추가 수월성 교육이 시행되어야 하고, 일정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미달 학생을 위한 추가 보충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
중간, 기말 등의 정해진 기간에만 치러지는 한 방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평가가 아닌, 단원별-주제별 상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모든 평가는 학생들의 현재 수준을 확인하여 어떤 추가적 처방이 이뤄져야 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 공교육을 마친 학생은 일정 수준 이상의 기본학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가 기본학력 보장’을 추진해야 한다.
2) 교사의 역할과 책임 강화
앞서 말한 내용으로 수업과 평가가 변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2020년대 들어, 교사는 하나의 이익단체가 되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집단이기 이전에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화하고 있다. 지속하여 업무경감을 외치고 있으나, 경감된 업무시간에 어떤 것을 학생들을 위해 더 하고 있는지는 모호한 상황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주요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이 아는 학생들을 길러내어 산업역군을 길러냈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단순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효용이 다했다고 여겨진다. 지식 그 자체는 정보화 혁명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한 습득이 더 용이하고 방대하며 체계적이게 되었다. 이제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현재 수준을 진단하고, 필요한 처방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제공하는 개인 코치로서 학생의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길잡이로서 기능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제, 집에 있는 학부모도 교사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부이지만, 아직도 단순 지식 전달에만 치중하던 변화 없는 교사는 학원 강사보다도 못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반면,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한 교사는 학원 강사가 따라오지 못한 고유한 영역을 개척해 두기도 했다. 열정적인 이들을 더 지원하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들은 과감히 쳐낼 인사 정책이 필요하다.
판사들은 10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받는다. 교사도 판사에 못지않은 전문가로서 대우받길 원하는데, 이에 준하는 재임용 심사가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는 아이들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대신, 변화의 기회를 위해 교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연수를 강화하고 역량이 강화된 만큼 수당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긍정적 경쟁을 함께해야 한다.
3)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의 통합
없애야 하는 경쟁도 있다. 바로 행정조직 간의 경쟁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을 분리해 두었다. 이로 인해 교육감과 시도지사를 다른 체계로 분리해놓고 별도로 선출하고 있다. 유독 교육행정만이 별도 기구로 분류되어 그 체계를 갖고 있으나, 많은 영역에서 일반행정 지방자치와 중복되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2020년대 들어 그 중첩 지대에서 많은 일이 발생하여 지속해서 협력체계 구축을 강요당하고 있다.
굳이 이렇게 조직을 나눈 데에는 한국적 특수성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지난 산업화 시기에 교육의 역할을 크게 강조해 왔고, 이를 뒷받침할 조직으로써 교육부-교육청-지원청-학교 조직을 강화해 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 고유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의 재편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일반행정의 요구가 늘어나며 업무가 늘어난다고 아우성치지만, 행정실도, 교무실도, 공무직도 그 늘어난 업무에 대응하고 싶지 않아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기존에 하고 있던 일들이 많이 있다. 지속해서 사람을 추가하고 조직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통합의 시발점으로서 교육감을 시도지사의 부시장(부지사)급의 별도 직위로 통합하되, 시장(도지사)과의 러닝메이트 형식으로 선출 형식은 유지하는 방안이 있다. 교육 전문가(경력 5년 이상)가 교육을 다룬다는 현재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조직의 통합을 강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산하 기구는 자연스레 일반행정과 중복을 해소하고 별도 기획 영역만을 재편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현재 행정실의 업무를 동사무소로 이관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동사무소가 현재 행정팀과 복지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교육팀을 신설하여 행정실의 기능을 이관할 수 있다. 혹은 팀 증설 없이 기존의 행정팀과 복지팀에 행정실 인원만큼을 증원하여 중복업무를 음영 지대 없이 처리하게 할 수 있다. 끝없이 비대해지는 행정조직을 재편하는데 이보다 더 큰 국가적 과업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인간 사회는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구성원이 올바로 서지 못한 사회는 절대 건강할 수 없다. 교육의 역할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다음 정부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첫 정부이다. 선진국의 역할은 기존 개발도상국의 역할과는 확연하게 달라야 할 것이다. 짧게나마 방향성으로 제시한 항목들 모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진보 보수 그 어느 쪽에서도 쉽게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초입에서 100년을 바라보는 교육지대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시련을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가 교육의 새 기틀을 세우는데 조금이나마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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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