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 밖 시민의 역할
김수현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농경제사회학부 08
대학시절 몇몇 선배들은 참 많이도 뭔가를 같이 하자고, 어디를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엄청난 숫자의 전경과 대치하는 곳이라는 설명은 생략한 채) 문화제에 가자, 농활을 가자, 세미나를 하자, 여름에는 원래 실천단을 하는 거다, 이 문제를 세상에 더 크게 알리기 위해서는 미대사관 앞으로, 청와대로. 그래서 결국은 경찰에 연행되어 유치장으로 가자…. 선배들마다 제안하는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던 것 같지만 보통은 술을 사주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제정세는 어떠하고 이 실천은 어떤 의미인지 일장연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용히 술을 먹으며 듣다가 ‘그래, 그렇지’하고 따라나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보며 떠오른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국정공약 270여 개, 윤석열 후보는 200여 개를 제시했고 소요 재원은 각각 300조 원, 266조 원으로 추산됐다고 합니다. 뉴스와 공보물, 공약집들을 통해서 공약을 접했습니다. 공약들은 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몇 백만 호의 신규주택을 공급해주겠다, GTX 노선을 연장해주겠다, 농업직불금을 확충해주겠다 등등. 누군가 호응할 만한 것이기에 공약으로 제시되었을 것이고 각자의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검증받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3월 9일 단 하루 투표장에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해주겠다는 말은 달콤한 약속같기보다는 홈쇼핑에서 판매에 열을 올리는 쇼호스트의 멘트 같습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구매한다고 해서 내 삶이 몰라보게 달라지지는 않을 상품들. 하지만 쇼호스트의 말을 계속 듣고 있노라면 저렇게 꼭 필요한 물건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홈쇼핑.
어차피 선거란 뭘 같이 해보자는 제안보다 이걸 해 줄테니 나를 뽑아달라고 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대통령은 그 무언가를 결정하고 해 줄 수 있는 자리일 것이고요. 그래도 저는 예전 선배들처럼 시민이자 주인으로서 내 역할을 조금이라도 말해주었으면 싶습니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정부에서는 이런 제도적 기반을 만들 테니 시민들은 이렇게 참여해 달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다양한 공론장을 만들고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테니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달라.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어떤 권한을 주겠다. 노동조합 활동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게 정비할 테니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해 달라.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 원천기술 선도국가 따위를 약속한 후보가 당선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저 그가 하는, 해주는 일을 지켜볼 일만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지역에서, 제 생활 반경에서는 여전히 서로 제안을 주고받고 자치 활동을 이어나가겠지요. 여전히 제 주변에는 식용유지 자급 운동을 위한 협동조합을 같이하자,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위해 연구활동을 같이하자라고 제안하는 그 시절 선배들이 있고 함께 청년 인터뷰집 출판을 같이하자고 제안할 동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사회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과 역할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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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_ 농경제사회학부 08학번.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뭘 하면 좋을까 새로운 꿍꿍이에 골몰하며 내성적인 주제에 계속 사람들을 모으고 커뮤니티, 공동체를 꿈꿉니다. 청년, 사회적 경제, 지역, 마을자치 오만가지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