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7:46 오후 128호(2022.04)

나 이렇게 산다
사랑! 그 눈부신 아름다움이여! ​

사랑! 그 눈부신 아름다움이여! ​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2015년 가을 어느 날 새벽이었다. 계간지 ‘문학의 강’ 여름호를 본 나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사랑!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눈물이 주체 못 하도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책에 실린 박목월 시인의 사랑 이야기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의 3절인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라는 대목에서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어버린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시인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기에 목월이 너무 불쌍해서 나온 눈물이었다.

30대 후반인 목월은 이미 가장이 되어 아이 셋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한데 피난시절 대구에서 만난 자매가 동시에 그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니는 결혼했는데 동생은 계속 목월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목월의 제자이기도 한 이 여성(이대생)은 자신의 운명을 걸고 목월을 사랑했다. 어린 자녀가 셋이나 있는 중년의 시인은 그 사랑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다. 그녀에게 목월은 친구를 통하여 이미 가정을 가진 그를 포기해줄 것을 설득시킨다. 이에 그녀는 자신을 설득하는 목월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 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여 사랑의 도피를 시도했다. 목월은 서울대 교수, 남편, 세 아이의 아버지, 사회적인 명성 등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게 된다.

그들이 ‘사랑의 도피’를 한지 몇 개월이 지난 늦가을이었다.

수소문해 그들이 사는 곳을 찾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목월의 아내 유익순 여사였다. 그녀는 두툼한 옷 보따리와 함께 생활비가 든 봉투를 방바닥에 두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앞으로 닥쳐올 겨울을 대비해서 하나는 남편 목월의 옷을 하나는 목월의 연인인 그녀의 옷을 솜을 두툼히 넣어서 지은 옷이었다. 이에 목월과 이대생은 그들의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펑펑 울었다. 그들은 아내의 헌신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에 백기를 들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의 몇 개월의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후 목월은 다시 가장의 자리로 돌아와서 20여 년을 살게 된다. 어느덧 60이 넘은 목월은 수소문해서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간다. 그런 며칠 후 목월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제주도에서의 사랑을 끝내고 연인과 이별을 하게 된 목월은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한 편의 시를 지어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는데, 이때 목월이 연인에게 써준 시가 바로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이별의 노래’라 한다.

이별의 노래/박목월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 이야기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서초문화원에서 내 수필 창작의 지도교수님이었던 신길우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문학의 강’에 박목월 시인의 사랑 이야기를 적은 의도는 시인의 아내인 유익순 여사의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알리고자 함이었다고. 하나 나는 시인이 불쌍해서 펑펑 울어버린 것이다. 그는 내가 평생에 걸쳐서 사랑하는 ‘나그네’, ‘4월의 노래’ 등의 시를 지은 시인이다.​

결혼 전 은행원이었던 유익순 여사는 한 미모 하며 지혜로우며 헌신적인 아내였다. 아내가 남편을 내조하는 방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녀는 단칸방에서 목월이 시상을 다듬을 수 있도록 배려하곤 했다. 한 겨울에도 아이들을 들쳐업고 걸리고 하여 여러 아이를 남편에게서 분리해서 목월 시인이 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곤 했다. 추운 겨울밤을 그렇게 밖에서 몇 시간을 추위에 떨며 서성거렸다. 박목월 시인의 아내 유익순 여사는 평생을 시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친 천사표 아내였다. 목월 시의 토양에는 애오라지 남편의 시가 빛나도록 기름진 거름이 된 아내의 숭고한 사랑이 깊게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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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