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농약 살포 드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정철훈 ((주)이노드 대표이사, 농학 82)
이태 전 드론을 배워 보겠다고 나주에 있는 드론 교육원을 방문했습니다.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원인데 한참 가수 김건모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론 자격증을 선전할 때였죠. 교육원 원장과 자주 교류했던 터라 이런 저런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드론 산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는데, 산업용 또한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부터 수입되는 부품들을 심지어 뽑기라고 하더라고요. 뽑기가 무슨 말인지 의아 하시죠? 중국에서 들여오는 부품 중 FC(Flight controller)는 안정적으로 비행하게 하는 필수 부품(두뇌에 해당하는)인데 10%정도 비행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기능상 반품할 정도는 아닌데 해당 부품을 사용하면 비행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네요. 이런 부품은 교환하기도 어렵다고 해요. 거의 독점적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농업용 드론을 판매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산 드론을 사용하고 있고, 영세한 규모 때문에 개발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더군요. 개발할 생각이 있더라도 방대한 지식 기반의 비행체 제어도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문득 라즈베리파이, 아두이노 등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론 관련한 오픈 소스가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요. 꽤 많이 진행된 서 너 개의 오픈소스 진영이 검색되더군요. 하드웨어 설계나 펌웨어 제작 등에 경험이 있던 터라, 기본적인 설명을 보니 가능성이 있어보였습니다.
비행과 관련된 지식은 오픈소스 진영의 집단지성에 기대고, 공개된 소프트웨어에 우리가 필요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면 충분히 드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드론이 어떤 부품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지도 몰랐고 어떻게 동작시키는 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부품을 구매하여 처음으로 드론을 날리기 까지 두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가능성을 보고자 했기에 인터넷에 게시되어 있는 문서에만 의존하다 보니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해결하는데 오래 걸린 것들을 교육원 교관이나 다른 전문가에게 물어 봤다면 한나절 만에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었죠. 혼자 만들어 본 드론이 나는 것을 보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에 지금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김대성 회원과 교육원 원장과 의견을 나누었고,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참 용감하죠?
개발계획을 세우고 초기 개발자금을 확보하고 일 저지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세 명이 사고를 친 거죠. 개발 일을 하기에는 버거운 신체적인 노화(ㅠ) 때문에 일을 대신해 줄 젊은(제가 보기에만 젊었지 결코 젊지 않은) 개발자들을 섭외하여 본격적으로 작년 5월에 개발을 시작했죠.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뜻대로 안되더라고요. 사실 개발하는 것이 이제는 쉽지 않고 후배들이 계속해서 발전시키려면 비슷한 또래의 개발자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전혀 모르는 친구들에게 개발을 맡겼는데 이게 순조롭게 진행이 안됐어요. 용역 형태로 일을 진행했는데 석 달이 지났음에도 전혀 진척이 되질 않는 겁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했던 옛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개발팀을 새로 꾸려야만 했어요. 처음부터 옛 동료들하고 일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이미 3개월을 까먹고 다시 시작한 것이 연말에 발표하기로 한 일정을 놓치게 된 원인이죠. 많이 아쉽지만 이것도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 선구자에 소개된 김선무 후배가 참여한 것이 이 즈음일 거예요.
처음엔 FC를 먼저 개발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농약 살포 모듈을 먼저 개발하기로 했어요. 최악의 경우 FC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개발된 것이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면 대안으로 가져가기로 하고요. 농약 살포에 경험이 있는 교관의 의견과 이런 저런 의견을 정리해서 농약 살포 모듈의 기능을 정했죠.
그동안 하드웨어 기반 펌웨어를 개발해 본 경험으로 고난도의 일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농업 현장 경험이 부족해서 더 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죠. 앞으로 현장의 의견을 더 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머릿속에만 있는 내용으로만 정리를 했다면 정말 현장에 꼭 필요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한발은 내딛어야 하니 다른 기능은 물음표로 남겨두고 하드웨어적인 확장성만 고려해서 설계했어요. AMU(Agricultural Management Unit)라는 제품입니다. 이때부터 혼자 고민하던 개발 일을 나눠 줄 젊은(?) 동료가 합류했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던 몇 달간의 고통을 분담할 동료가 생긴 거죠. 이때 이후 많은 부분을 그가 해결했고 지금도 해결해 주고 있어요.
이제는 전자회로 기판(PCB)만 잘 나와 주면 되는데, 여러 일을 한사람이 하다 보니 일 진행에 정체가 생겨 일정이 지연되었죠. 자그마한 실수로 PCB 제작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부품을 구하지 못해 난감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드론의 주요 구성품들이 하나하나 사무실로 모이고 있을 때조차 마음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잘못된 곳이라도 있으면 새로 제작을 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또 드론 특성상 간이 시험만 해서는 불량을 판단하기가 어려워 비행 시험을 해 봐야 해요. 소프트웨어 담당하시는 분, 하드웨어 담당하시는 분, 기체 설계하시는 분, 비행 교관 이렇게 모여 드론을 띄워 눈에 보이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개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수정하고 테스트하고를 반복하니 점차 비행이 안정화되어 갔습니다.
드디어 3월 28일, 나주에서 그간 만들어 온 드론을 많은 분께 보여드리는 행사를 했어요. 나름 준비는 많이 했지만 당일 상황이 어찌 될지 걱정이 되더군요. 흔히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지요. 외부인의 우발적 개입으로 시간과 동선이 꼬여 자그마한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비행 시연을 마쳤습니다. 드론을 조종했던 교관의 만족스러운 평가가 지난 시간을 보상해 주는 것 같았답니다.
시연회를 마치고 나니 눈에 새로이 들어오는 게 많아지네요. 당연히 판매에 대한 걱정이 제일 먼저구요. 지금까지의 일이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 작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할 일이 남았네요. 기술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활용 범위를 확장하는 일을 진행하려면 현재 인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일의 선후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드론을 시작했을까’였죠. 4차 산업? 시장성? 개발자로서의 관심? 모두 당연한 것인데 무언가 똑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4월 7일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묘소 참배를 다녀오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어찌 보면 김상진기념사업회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 자리가 해석이 되더라고요.
기념사업회에 자주 참석하다 보니 IT 일을 하면서도 농업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질 수 있었고 항상 현재의 일을 농업과 연결시켜 보려 했었던 것 같아요. 딱히 기념사업회가 구체적으로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지는 않지만 구성원들이 농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 지 31년 만에 ‘저도 농업에 종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네요. 김상진기념사업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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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