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15 오후 116호(2019.04)

오정삼의 人 in 人

도시의 시농제(始農祭)

오정삼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 농경제 79)

지난 4월 6일 토요일에 강북구 수유동의 북한산 산자락 아랫녘 2천여 평의 공터에서 강북마을텃밭공동체의 시농제(始農祭)가 열렸다. 풍물패가 이끄는 길놀이는 어림잡아만 봐도 100여명의 주민들을 이끌며 텃밭 입구에서부터 텃밭 전체를 30여 분간 한 바퀴 돌았다. 흥에 겨운 발걸음으로 새로 마련한 텃밭과 둠벙, 논둑을 다지며 하늘신, 땅신, 바람신, 구름신, 비의 신, 그리고 산신에게까지 한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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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러했다. 4.19민주묘지 위쪽 둘레길 인근의 2천여 평의 땅에는 오래전부터 개인이 운영하고 있던 주말농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말농장의 한쪽을 자연이 있는 도시를 꿈꾸던 학부모들(주로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가꾸고 있었다. 채 200평도 안 되는 작은 텃밭에 밭작물뿐만 아니라 생태 논도 만들고 쪽밭을 가꿔서 쪽물 염색도 했다.

그런데 지난 2018년 농장주가 갑작스레 텃밭 전체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매각해버렸다. 결국 친환경 도시농업 생태학습의 체험현장인 마을텃밭을 가꾸던 이들은 졸지에 소박하게나마 녹색지구의 꿈을 키우던 땅이 사라져버린 꼴이 돼버렸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머니들은 혹시나 하며 LH에 2천여 평에 달하는 주말농장 전체를 임대해줄 것을 의뢰했고, 놀랍게도 LH는 매입한 땅에 별도의 사용계획이 없으니 지역 공동체 명의로 텃밭을 가꾸고자 한다면 유상임대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동안 일구던 밭의 10배도 넘는 땅을 얻을 수 있게 된 이들은 마침내 일을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의 여러 공동체 활동 조직들에게 소위 ‘강북마을텃밭공동체’의 참여를 호소하는 설명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에 지역의 여러 공동체 조직들은 제각기의 목적에 따라 참여를 신청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삼양주민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저소득 독거 중장년의 자립능력향상’ 프로그램 대상자들의 일자리 참여의지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텃밭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9개의 강북구 지역 내 단체(한살림 북부지부, 재미난마을, 재미난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 북부두레 생협, 수유1동도시재생지원센터, 강북구도시양봉 협동조합, 강북혁신교육, 삼양주민연대 등)들과 도시농부학교에 참여한 개인들이 함께하는 강북마을텃밭공동체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 농장주가 텃밭을 매각하며 주말농장의 주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그사이에 텃밭 전체는 목재 폐기물, 비닐, 유리 등 각종 쓰레기가 쌓여서 폐허처럼 방치된 상태였다. 그리고 함께 모인 공동체들은 모두가 도시농업에 낯선 이들 뿐이었다.

그래서 우선 운영팀은 강북마을텃밭의 운영 가치와 방향을 세우기로 했다. 그것은 첫째, 자연과 더불어 농사짓는 생태 텃밭, 둘째, 구성원 모두가 함께 운영하는 공동체 텃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3무(비닐, 화학비료, 농약 없는) 텃밭을 만들기로 하고 참여 구성원 모두에게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텃밭의 필요성을 교육하며 퇴비, 생태뒷간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 공동체 전체가 주체가 되어 함께 가꾸고 책임지는 공동체 텃밭으로서 자율적인 운영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동체별로 텃밭지기를 세우고 최소 월 1회 이상 텃밭 조성, 관리, 농사, 공동체 활동 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도시농업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여 강북마을텃밭공동체를 작은 농촌 마을의 완성태로 구성하기로 했다. 1980년~90년대 도시농업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농업에서 발생하는 하천 오염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했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산자락의 경사면에 위치한 밭의 특성상 비가 올 때마다 쓸려 내려가는 영양분을 잡아주고, 밭에서 발생하는 물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텃밭의 맨 아랫녘에는 논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필요한 농업용수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텃밭의 맨 위쪽에는 생태연못과 둠벙을 조성하고 물길을 만들어서 논에 물을 대기로 했다. 운영팀은 수차례의 회의와 소통을 바탕으로 텃밭 조성계획과 추진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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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조성 계획담당 및 추진 내용
마을텃밭 입구 안내판‘마을목공소’ 제작(느티)
주차장차량 제한 안내입구
청소, 폐기물 처리강북지역자활센터 연계
용수(계곡물-호스, 밸브, 양수기)용수 연결 완료, 양수기 전기이후 작업
용수저장고물탱크 설치
전기(한전 신청, 전주, 설비)한국전력 / LH 설치 허가
농기구함 설치북부시민회 열린사회, 해뜨는집
농기구호미 100, 삽 50, 써래, 쇠스랑, 물통, 수레 등 구매
공동공간(평상)열린사회 해뜨는집, 5개 설치
토질검사대안학교 ‘재미난마을’에서 농업기술센터에 의뢰
논, 둠벙포크레인 작업으로 조성후 볏집, 쌀겨 뿌리기
정원 조성‘서울시민정원사회’와 정원 사업 연계
퇴비간대안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가 선진사례 연계
생태뒷간아름다운마을학교
모험놀이터재미난마을

마침내 주민 200여 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흥겨운 시농제 한마당을 펼쳤다. 마침 그날은 절기 상 ‘부지깽이를 꼽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이었다. 모든 공동체 회원이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제사장이 읊는 축문(祝文)을 시작으로 시농제를 진행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太白山)의 신단수(神壇樹)로 내려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렸듯이, 우리는 바람과 비와 구름의 신, 그리고 땅신과 산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하며 삼배(三拜)를 올리고 푸짐한 음식을 나누었다.

예로부터 ‘농사는 사람의 정성에 감복하여 하늘이 짓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의 정성이 분명히 하늘을 감복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늘 신(神) 이전에 이번 텃밭공동체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이 서로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 또한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헌신적인 노력에 감복하여 다른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엉덩이 쭉 빼고’ 있으려는 속된 마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강북마을텃밭공동체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낀 것은 ‘사람이 모이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작은 경험이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아울러 모든 분들이 뛰고 있는 각자의 일이 그 연결 고리를 확대하여 김상진기념사업회 안에서 협력과 연대의 장을 활발히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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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pine@chol.com)

Last modified: 2022-08-04